그가 말하는 이상적인 中企환경

청년, 아줌마, 은퇴자할 것 없이 누구나 창업 아이디어를 개진할 수 있게 했다. 창업, 성장, 회수, 재투자가 원활하도록 창업 생태계도 구축해 놨다. 실패한 기업에게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적극적으로 모색 중이다. 해외 판로 개척, 시설 현대화 등 기존 기업 돌보기도 소홀하지 않는다.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기업 자발적인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면서도 그들을 위한 최선책이 뭔지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청년 한정화는 늘 고민이었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던 집에서 태어난 그는 학창시절, 부모님을 보며 항상 생각했다. 왜 어려울 수밖에 없는 건가. 기업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려면 대체 어떤 요인이 필요한 건가. 꽤 긴 시간 동안의 고뇌였다. 언제부터 그런 고민을 했느냐고 묻자, “부모님이 실패를 겪은 게 한두 차례가 아니라, 딱 꼬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고등학교 때부터였지 싶다”고 했다. 결국 그는 경영학도가 됐다. 그리고 교단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 약관(弱冠) 무렵부터 가진 중소기업에 대한 애착으로, 한국중소기업학회장을 지냈다. 그 후 코스닥상장심사위원장, 한국벤처산업연구원장도 두루 거쳤다. 약 20년간 중소·벤처기업은 물론이고 창업·경영전략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했다. 그리고 올해 3월, 중소기업청장이 됐다. 실패한 중소기업의 아들이, 훗날 중소기업 함대의 선장이 된 셈이다.

취임 4개월. 한 청장은 이미 큰 그림을 모두 완성했다. 그가 그린 중소기업 청사진은, 커다란 동그라미다. 우선 둥근 모양으로 균일한 타점을 찍고, 점들을 선으로 이었다. 타점은 기존의 중소기업이고, 점 사이사이를 메우는 선들은 창업자다. 둘은 서로 긴밀하게 엮어져 있어 빈틈이 없다. 기존 기업은 창업자들을 끌어주고, 성공 벤처는 새로운 창업자를 낳는다. 실패한 기업이라고 해도, 원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재도전’이라는 장치 때문이다. 이 동그라미는 이제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 구심점은 ‘기업가 정신’이다.

 

아줌마·은퇴자·청년, 모두가 미래 중기인

한번 물어보자. ‘중소기업’하면 뭐가 떠오르는지. 지난 2012년 6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대다수(33.2%)가 중소기업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성장(발전)’을 꼽았다. 반면 그다음으로 높은 수치는 ‘불안함(25.2%)’이었다.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바꿔서 생각해 보자. ‘도전은 불안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고. ‘경영 주체가 되려면, 혹은 성장하려면 도전할 수밖에 없다’고.

중소기업으로의 첫발은 아무래도 ‘창업’이다. “마크 주커버그와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 있었다면 과연 창업을 했을까요. 아니면 대기업 취직에 목을 맸을까요. 이들은 실패를 무릅쓰고 도전했습니다. 이런 열정이 있다면 중소·벤처기업은 기회의 장입니다.” 기회의 장은 청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줌마도, 은퇴자도 모두 누릴 수 있다. 실제로 한 청장은 ‘창업’에 관한 한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창업 마당’도 마련했다.

‘무한상상 국민 창업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한 청장은 이를 “아이디어만 있으면 사업화·창업화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한다는 취지의 범국가적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자본의 여부,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아이디어를 개진할 수 있다. “일종의 아이디어 오디션입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막상 사업을 하려고 하면 위험도 많고 어렵지 않습니까. 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라도, 사업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7월 2일 막을 올린 프로젝트에는 2주 만에 1500건의 아이디어가 올라왔다. 홈페이지에다 글을 올리면 심사위원단과 네티즌의 평가를 거친다. 높은 점수를 받으면 제안자 성격에 따라 사업화와 창업화로 나누어 지원한다. 사업화의 경우, 아이디어 제공자에게 매출액의 5%를 돌려주고, 창업을 하고자 하면, 최대 5000만원까지 지원한다. 이미 한 주부가 올린 아이디어는 사업화 단계에 있다. ‘곰발접시’다. 뷔페식당을 이용할 때 접시 위에 수프나 국을 담은 컵을 함께 놓으면 미끄러지기 일쑤라는 점에 착안했다. 한쪽 면에 곡선으로 홈을 파 컵을 걸칠 수 있게 한 접시다. 한 청장은 “특히 좋은 아이디어는 주부들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국민의 창의적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연결되고, 중소·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구조를 통해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면서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서는 창업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전하라, 그리고 성공하라

한 청장은 “과감하게 도전해서 성공하고,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선순환 기업가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정책이 지난 5월 15일 발표한 ‘벤처·창업 자금생태계 선순환 방안’이다.

“창업자금을 융자나 보증 의존형이 아닌 투자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겁니다. 이를 통해 실패 부담을 줄이고 우수 인력이 창업 시장에 참여하도록 하는 거죠.” 벤처·창업 육성의 핵심은 ‘엔젤투자’. 엔젤투자는 개인들이 창업자금에 투자하는 걸 의미한다. 창업자들에게 동아줄을 내려주므로, 그야말로 ‘엔젤’이다. 예컨대, 엔젤투자자가 창업회사에 1억원을 지원하면, 매칭펀드에서 똑같이 1억원을 투자한다. 매칭펀드는 중기청에서 지원하는 펀드다. 창업회사는 이에 따라 총 2억원을 투자 받는다.

투자자들이 평가하는 ‘성장가능성’이 보증수표이지만, 어느 정도 혜택이 있어야 투자 유치가 가능하다. 현재 엔젤투자에 대한 소득 공제 비율은 투자금의 30%인데, 한 청장은 이를 50%까지 늘릴 계획이다. 그는 “엔젤투자 활성화를 위해 경주 중”이라면서 “아직 법적 뒷받침은 되지 않았지만 내년께는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현재까지 진행된 투자 조성 사례도 있다. 카카오펀드와 스마일게이트펀드다. 중소기업청이 ‘카카오’사, ‘스마일게이트’사와 공동으로 조성한 펀드다. 각각 300억원 규모다. 카카오사와 스마일게이트사는 모두 성공 벤처. 벤처 선배가 신생 벤처에 재투자하는 구조다.

창업기업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구매 활성화도 중요하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조달청과 ‘중소기업 기반의 창조경제 조기 구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그는 “창조제품을 만들었다할지라도 초기시장을 만나지 못해서 100개 중 99개 정도는 사라진다”고 안타까워하며 “조달청과의 협력을 통해 공공시장에서 우수 창조기업 제품의 구매가 대폭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기존 기업 건강해야 신생기업 뿌리 내린다

창업 활성화도 중요하지만, 창업 기업의 지속 가능성 또한 그에 못지않다. 그러려면 밑그림인 ‘기존 기업’이 탄탄해야 한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기 위해서다. 한 청장이 ‘창업’과 더불어 ‘기존 기업의 개혁’을 강조한 이유다. 그는 “하드웨어인 설비나 기술적 혁신뿐만 아니라 경영 혁신에도 새로운 붐이 일어야 한다”면서 “동시에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75%가 B2B시장인데 현재 성장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 청장은 “과거 1000억 클럽에 대해 연구했는데 100개 중 90곳은 1000억원대에서 정체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1000억 블록’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한 돌파구로, 중소기업 전용 유통망 확대와 해외시장 개척을 들었다. 우선 홈앤쇼핑(중소기업 전용 TV 홈쇼핑), 히트500플라자(중소기업 전용 백화점) 등을 중심으로 판로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최근 발표한 ‘중소기업 해외진출 역량강화 방안’을 통해 해외 대형마트에 한국 중기 전용매장을 확보하는 등 온오프라인 해외 유통망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복안도 다지고 있다.

일반 기업뿐만 아니다.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에도 관심이 높다. “노후화된 전통시장의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시장에 ICT를 적용해 무료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가격비교를 할 수 있는 앱을 만들어 바로 주문이 가능하도록 하는 시범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혹자는 앱을 이용하는 젊은이들은 전통시장을 안 간다고 하는데, 우선 청년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여야 시장이 활기를 찾습니다.” 코레일과 협업해 전통시장 투어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 “전통시장마다 특색이 있습니다. 젓갈이 유명한 곳이 있는가 하면 소고기가 맛있는 곳도 있죠. 지역색을 띤 시장에서 쇼핑하고, 인근 지역을 관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빠른 시일 내 선보일 겁니다.” 온누리 상품권도 1조원 규모로 늘릴 예정이다. 이를 통해 골목상권과 대기업의 양극화뿐만 아니라 지역 불균형까지 타개할 방침이다. ‘소상공인 협업화 사업’도 기대를 거는 부분이다. 이 사업은 5인 이상의 동·이업종 간 협업체를 구성, 공동의 이익을 실현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올해 300개 업체 지원을 시작으로 2017년까지 2000개 협업체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 않는 ‘기업가 정신’ 필요 

한 청장은 기업이 탄탄해지려면 “결국 자생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끌고 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이를 테면, 전통시장의 현대화도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전통시장 스스로 고객만족을 위한 변화를 꾀해야 한다. 최근 상인회를 중심으로 이러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데, 상당히 고무적이다”라고 했다. 한 청장은 “창업, 시장, 소상공인 할 것 없이 모두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기존 기업의 경영 혁신 또한 자발적인 변화를 의미한다”고 했다.

그는 앞서 언급한 내용들은 결국 중소기업 ‘지원정책’이 아니라, ‘균형정책’에 가깝다고 했다. 대기업과의 불균형을 맞추며 동반성장함에 따라 하도급 기업의 수익성을 개선하고, 수익의 R&D 재투자 등을 통한 혁신과 성장의 발판을 구축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도 ‘자발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정부의 강요나 압박에 의해서가 아닌 대기업 자율의 신동반성장 실천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기업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차원을 넘어 공유가치를 창출하는 CSV(Creating Shared Value) 관점의 동반성장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한 청장은 대기업 스스로 ‘두리스트(Do list)’와 ‘돈리스트(Don’t list)’를 만들어 따르기만 해도 고용률, 일자리 문제, 양극화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기업-중소기업 또한 한 청장이 그려놓은 청사진에서는 둥글게 호흡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가 말한 중소기업 생태계는 ‘기업가 정신’을 구심점으로 움직인다. 기업가 정신은 창조, 도전, 혁신의 정신을 두루 일컫는다. 그는 “무언가 창조해내는 과정에는 불확실성과 위험이 있다. 이를 감내해낼 수 없으면 창조경제 구축이 힘들다. 창조경제를 실현하려면 모든 걸림돌을 치우고 정상에 올라야 한다. 창조경제는 기업가 정신의 또 다른 한 면”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실패를 두려워하면 도전은 있을 수 없다. 혹여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 청장이 ‘재도전 환경 구축’을 피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은 평균 2.8회 실패 후 성공했다”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에서의 실패란 사업화를 위한 투자를 받지 못했다는 의미로 파산을 뜻하는 우리의 실패 개념과 차이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경영위기 기업의 조기 발굴부터 회생, 재도전에 이르는 턴어라운드 종합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한 청장은 유난히 ‘도전’, ‘창조’와 같은 단어를 자주 썼다. 어쩌면 그의 삶에도 많은 도전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아탑에 몸담았던 그에게는 한때 학자형, 학자출신 청장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었다. 부임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이를 ‘현장을 잘 아는 청장’으로 바꾼 데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도전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은퇴 후에도 계속해서 중소기업 연구에 매진하며 살 것”이라며 또 다른 도전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한 청장이 그려논 생태계는 창업, 성장, 회수, 재투자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기존 기업이 버팀목이 되는 모습이다. 웬만해선 실패를 모르는 이 생태계는, 이제 힘차게 숨 쉴 일만 남겨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