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커뮤니티 영향력

누구보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누구보다 정보력이 뛰어난 사람, 바로 ‘아줌마’다. 이들이 온라인에서 뭉치니 그 파급력은 예상대로 세다. 고민을 나누고, 살림 정보를 공유하는 데에서 나아가 상생경제 실현, 정치 참여 등으로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아줌마들이 모이고 있다. 하는 일이나 사는 지역은 상관없다. 인터넷이라는 수단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전국의 아줌마들이 운집한 커뮤니티에서는 육아, 부동산, 재테크, 맛집, 요리, 살림 등에 관한 정보가 쏟아진다. 정보가 검증되거나 재가공되는 일도 모두 그 안에서 이뤄진다. 공유하는 정보들의 힘은 막대하다. 커뮤니티 안에서 교류된 의견의 향방에 따라 작게는 동네 상권이, 크게는 나라 전체가 들썩인다. 옆집 순이네서 삼삼오오 모여 나누던 수다가 온라인에서는 수십만 명이 만들어내는 ‘여론’이 된다. 2000년대 초반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아줌마 커뮤니티가 만든 결과다.

이영 한국인터넷콘텐츠협회 사무국장은 “주부들은 육아, 시댁, 남편, 스스로의 정체성 등 크게 네 가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이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기에는 한계가 있다. 친한 사람일 경우 오히려 더 그렇다”며 “이를 온라인 사이트에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위안과 활력을 얻었고, 자연스레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유’ 자체에 대한 의식이 높아진 것도 커뮤니티 활성화에 한몫했다. 나만 알고 있는 걸 누군가와 공유해야겠다는 의식은 특히 시간적 여유가 많은 아줌마들을 온라인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인터넷 마케팅 전문업체 ‘코리안클릭(koreanclick)’은 ‘여성 회원 비중이 높은 인터넷 사이트가 높은 페이지뷰(PV)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영 사무국장은 “아줌마들이 커뮤니티 사이트에 머무는 시간은 다른 층보다 더 긴 편”이라고 했다. 단순히 오래 머물기만 하는 건 아니다. 사이트 내 정보에 대한 믿음도 주부들 사이에서 더욱 굳건하다. 황인영 아줌마닷컴 대표는 “우리 아낙네들은 예로부터 우물가에 모여 빨래하면서 소통했기 때문에 ‘내’가 아니라 ‘우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그 우물가 문화가 현대적으로 변화한 게 바로 온라인 커뮤니티”라고 말했다. 정보와 구성원들 간의 신뢰가 더 끈끈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수다쟁이 모임에서 파워 클럽으로

아줌마 수십만 명이 모이면, 수다가 권력이 되기도 한다. 황인영 아줌마닷컴 대표는 “예전에 모 우유회사가 연예인 모델료로 8억을 줬다는 이슈가 있었는데, 사이트 회원들이 ‘그 8억 때문에 우리 아이 분유 값이 비싸다’며 들고 일어난 적이 있었다”면서 “그 얘기가 회사 대표 귀에까지 들어갔고, 결국 모델이 바뀌게 됐다”고 회상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아줌마들의 영향력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감시자’ 역할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평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한 커뮤니티에서 특정 제품의 약점이 발견되면 그 제품은 이내 도마 위에 오른다. 식당, 학원, 병원, 어린이집 등도 아줌마들의 ‘매의 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미용실 원장 김모 씨는 “머리를 했던 동네 인근 주부와 약간의 마찰이 있었는데, 이후 매장을 찾는 손님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김 씨는 “나중에 알고 보니, ‘서초 엄마들의 모임’이라는 게시판에 그 에피소드가 올라와 있더라”고 말했다.

지난 2012년 디지털 미디어랩 전문업체 ‘나스미디어’가 30~40대 전업주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제품이나 서비스 구매 시 주부들이 신뢰하는 인터넷 정보는 쇼핑몰 구매후기(33.3%), 관련 커뮤니티(17.4%) 등의 순이다. 이는 검색광고(2.9%), 기업운영 블로그(1.4%) 등에 비해 현저히 높은 수치. 응답자의 39.9%가 ‘인터넷 사이트에서 확인한 실사용자의 후기와 평가가 구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는 전체 대상(30~40대 주부 포함)의 응답 33.7%를 웃도는 것으로, 커뮤니티 정보에 대한 충성도가 다른 계층보다 높은 주부들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이나 지역 상권도 주부 커뮤니티를 허투루 볼 수 없다. 커뮤니티의 영향력 때문에 눈치를 살피고, 영향력을 활용하기 위해 할인이나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부지기수다.

한 여성 포털 사이트 관계자는 “경제활동에 관여하는 아줌마 계층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아줌마 커뮤니티’도 신흥 파워그룹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기존처럼 제품이나 서비스를 평가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개념의 생산자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정보 공유부터 정치 참여까지, 무대의 제약 없다

지난해 9월, 20여 명의 주부들이 서울 명동 거리에 모여들었다. 양손에는 다양한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려 있다. 이들은 주부 포털 사이트인 ‘82쿡닷컴’ 회원들로 성범죄자 사형 집행 및 강력범죄 처벌을 촉구하는 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석했다. 요리 정보 사이트의 성격을 지닌 이 커뮤니티는 지난 2008년에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이영 한국인터넷콘텐츠협회 사무국장은 “촛불시위 참가는 주부가 집단으로 정치색을 띠었던 의미 있는 사건으로, 당시 굉장한 이슈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줌마들로 구성된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사가 깊어지고, 영향력도 커지면서 활동 무대도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남성의 전유물로 통했던 정치 참여도 그중 하나다. 여성 정책 분야의 한 관계자는 “주부 커뮤니티가 발전하면서 여성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직접 생활정치 활동에 나서는 기회가 생겼다”고 했다.

최근에는 ‘착한 경제’로도 시야를 넓혔다. 지난 5월, ‘한국파워블로거협동조합’은 중소기업유통센터와 ‘중소기업제품 홍보 및 공동구매사업’에 대한 협약을 체결했다. 한국파워블로거협동조합은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서 공인된 30~50대 주부 파워블로거들이 만든 조직. 이들은 향후 각자의 블로그에 ‘파워블로거스토리마켓’을 개설해 우수 중소기업제품을 주변 이웃들에게 소개하는 등 생산자와 소비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상생경제’ 구현에 앞장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