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벅스 길레스피(John Birks Gillespie)의 트럼펫 연주를 보고 깜짝 놀랐다. 1980년대 중반 신촌 재즈바에서 처음 본 그의 연주장면에서 길레스피는 나팔꽃처럼 벌어진 부분, 즉 ‘벨’이 하늘을 향해 꺾인 별난 트럼펫을 불고 있었는데, 입술이 닿는 마우스피스의 위치도 정상보다 위로 올라가 있었고 특히 그의 양 볼은 개구리처럼 한껏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연주법이었다.

1970년대 초 중학교 밴드부 시절 코치 선생님은 마우스피스의 중앙 가로선과 입술 중앙을 반드시 일치시키라고 가르쳤다. 한글판 트럼펫 교본에도 그런 도해(圖解)가 있었다. 고교시절 구해 본 이 책의 원본인  장 밥티스트 아르방의 트럼펫 교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코치 선생님은 치열이 고르지 못해 입술을 마우스피스 중앙에 밀착시킬 수 없거나, 2cm 남짓한 마우스피스를 뒤덮을 정도로 입술이 두툼한 학생에게는 트럼펫을 배정해주지 않았다.

양 볼에 바람을 넣는 것은 금기였다. 볼이 볼록해지면 볼 안의 공기압력 때문에 입이 쉬 피로해져 오래 연주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볼을 홀쭉하게 만들고 마우스피스로만 날숨을 불 수 없는 것도 트럼펫터로서는 결격사유였다. 당시 인기 연주곡이던 ‘밤하늘의 트럼펫’을 직접 불고 싶었던 적잖은 지원자들이 이런 부동의 잣대에 걸려 마우스피스가 큰 트럼본이나 튜바를 부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1940년대 모던재즈의 기반인 비밥(Bebop)의 창시자 길레스피가 교칙본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듣는 이로 하여금 현기증을 느끼게 한다고 ‘디지’(Dizzy)라는 별명까지 붙게 했던 그의 하이노트(고음)와 애드리브 속주(速奏)가 그런 ‘엉터리’ 주법에서 나온 것이었다니 고지식했던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뉴스에서 본 박인비의 스윙도 충격이었다. 그녀의 스윙은 교과서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원래 테이크백을 할 때 오른손 손목은 꺾여 ‘코킹’ 상태여야 하고, 꼬였던 몸통을 풀며 다운스윙할 때는 클럽헤드가 볼을 임팩트하는 순간까지 공을 쳐다보면서 절대로 헤드업을 하면 안 된다고 배운다. 자칫 클럽페이스가 열려 스윙 궤도가 어긋나 미스샷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초보 골퍼라면 ‘머리를 공의 뒤 끝에 남기라’는 격언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게 된다.

하지만 박인비는 스윙은 느리며, 코킹 각도는 적고, 클럽은 백스윙 탑에서 수평이 아니라 수직에 가까웠다. 타격 후 공을 끝까지 쳐다보지도 않는 이른바 룩업 스윙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비정통타법으로 올 시즌 나비스코 챔피언십,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에 이어 US여자오픈까지 3개 메이저 대회를 석권한 것이다. 더욱이 여자 골프에서 한 시즌 3개 메이저 대회 우승기록은 1950년 미국 선수 베이브 자하리아스 이후 63년 만이라니 참으로 놀랍다.

돌이켜보자. 길레스피는 원래 트롬본 연주자였다. 마우스피스가 큰 트롬본은 트럼펫보다 한 번에 내쉬는 날숨이 커야 하고, 그래서 연주 시 볼이 볼록한 것에 대하여 너그럽다. 그런 탓에 길레스피는 뒤늦게 트럼펫으로 악기를 바꾸면서 잘 고쳐지지 않는 기존 주법을 오히려 고음을 내는 데 활용한 것 같다. 박인비는 손목 유연성이 떨어지니 다운스윙할 때만 코킹을 하며, 임팩트 시 허리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미리 머리를 드는 것으로 보인다.

길레스피나 박인비는 교본이나 정통기법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에 맞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생생한 교훈을 준다. 무릇 인생살이가 다 그렇지 아니한가. 세상의 모든 분야에 이론과 학설 그리고 교본이나 교과서가 있지만, 과문한 탓인지 경영학 박사라서 기업경영에 성공했다든가 정치학자였기에 위대한 지도자가 됐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극단적이긴 해도 주식시장을 잘 안다던 최고의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나 어빙 피셔가 주식투자로 빈털터리가 된 것은 교과서대로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정도로 세상이 그리 녹록한 것은 아님을 반증한다.

물론 길레스피처럼 개구리주법을 쓰거나 박인비의 어색한 폼을 따라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어리석다. ‘경영학의 아인슈타인’이라는 클레이턴 크리스턴슨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의 말처럼 성공 스토리의 비결은 특정 시간이나 상황에서만 맞아떨어질 뿐 범용성이 낮기 때문이다. 날이 덥다. 오늘은 ‘디지’ 길레스피의 ‘A Night in Tunisia’를 유튜브에서 찾아 들으면서 박인비의 US오픈 경기장면을 느긋하게 감상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