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칼럼

1년 전, 아베 내각은 “20년 동안 지속된 일본의 디플레이션과 엔고 현상을 뿌리째 뽑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아베노믹스를 단행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엔고 현상이 더욱 심화됐고, 금리는 치솟았다. 아베노믹스에 ‘실패작’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하지만 지난 6월 19(현지 시각) 미국의 출구전략이 발표되면서 엔화 약세를 억제하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긍·부정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아베노믹스는 향후 어떤 방향으로 흐르게 될까.

중의원 총선거와 아베 정권의 수립이 확실해진 작년 11월 중순 1달러당 70엔대 후반대를 기록했던 엔화 가치가 지난달 22일에는 103엔까지 큰 폭으로 떨어졌다. 닛케이지수도 엔저와 함께 상승 행진을 이어갔으며, 같은 기간에 닛케이지수는 8664포인트에서 1만5627포인트까지 80% 넘게 상승하였다. 금년 1분기 일본의 실질GDP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연율로 4.1%를 기록해 우리나라를 능가하기도 했다. 대폭적인 금융 완화, 기동적인 재정 확대, 성장 촉진 전략 등 세 가지 축으로 이루어진 아베노믹스에 따른 기대와 함께 단기적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엔저의 가속화와 함께 일본 수출기업의 수익이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2013년 3월 결산 영업이익이 3배 정도 늘어나 1조엔을 돌파했다.  2014년 3월에는 2조엔을 넘을 가능성도 있다. 기업 수익의 급증세와 대폭적인 금융 완화에 힘입어 일본 주가도 상승세를 거듭해 일본을 떠났던 외국인 투자가들도 다급하게 일본 증시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 금융 완화 정책으로 ‘부작용’만 생겨

하지만 지난 5월 23일, 일본 경제 기조가 바뀌었다. 엔화는 급등하고 일본 주가는 급락했다. 아베노믹스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지폐 등의 현금과 시중은행의 중앙은행 계좌 예금을 합한 본원통화를 2년간 2배로 늘리고 2년 내에 소비자물가를 2%로 끌어올려 지속적인 물가 하락이라는 디플레이션 현상을 종식시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폭적인 금융 완화 정책의 부작용으로 금리가 상승하는 결과가 나타나 5월 말에서 6월에는 주가 하락, 엔고가 발생했다.

아베노믹스의 대폭적인 금융완화는 일본 사람들의 기대물가 수준을 끌어올리고 소비와 투자를 확대시킨다. 오늘보다 내일 물가가 더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환경 속에서는 소비자나 기업은 지출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해서 수요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이어져 경제를 위축시키고 디플레이션 갭(초과 공급)을 초래하여 물가를 더욱 떨어뜨리고 다시 소비자와 기업의 디플레이션 기대를 높이는 악순환이 이뤄진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아베노믹스는 예전에 없었던 규모로 대폭적으로 금융을 완화함으로써 사람들의 기대치를 바꾸려고 했다. 다만, 이러한 아베노믹스의 물가 상승 유도정책으로 인플레이션 기대가 고조될 경우 당연히 금리는 상승할 수밖에 없으며, 아무리 일본 중앙은행이 본원통화를 늘려 금리 상승을 억제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FRB의 출구전략 결단이 일본을 살리다

지난 5월 말에 발생한 일본 국채금리의 급등과 이 여파로 인한 주가 급락, 엔고 전환은 아베노믹스가 금리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경제가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상황에서의 금리 상승은 아베노믹스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일본 경제성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엔저 지속에도 제약을 줄 수 있다.

아베 내각 및 일본은행으로서는 국민의 인플레이션 기대를 고조시키면서 이에 상응하는 형태의 금리 상승을 상당기간 억제하고 엔저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다소 모순된 어려운 정책 과제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벤 버냉키 미국 FRB 의장이 6월 19일에 금년 중에 양적금융완화의 축소, 내년 중 양적금융완화 중단, 2015년 이후 금리 인상이라는 향후 금융정책의 방향을 제시하자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일본 엔화도 6월 중 계속 1달러당 90엔대 후반에 머물렀다.

일본은 세계 최대의 순채권국이며, 엔화는 안정통화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양적금융완화 축소에 따른 리스크 회피 경향 강화는 엔고 요인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미국의 양적금융완화는 미국 및 세계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는 가운데에서 계속 실시될 경우 지난번 리먼 쇼크 당시 미국 부동산 버블 형성과 같은 충격을 세계 경제에 가할 위험이 있다. 유럽이나 일본은 양적금융완화를 당분간 유지해야 할 형편이기 때문에 글로벌 유동성의 과잉 팽창을 사전에 억제하기 위해 미국 FRB의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의 후퇴와 함께 미국의 출구정책이 엔화의 지나친 약세를 억제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노믹스 성장전략, ‘엔고 추세 완화’ 기대돼

아베노믹스에 의한 엔저를 지나치게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일본 경제의 향방은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축인 성장전략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 축인 대폭적인 금융완화 정책이나 두 번째 축인 기동적인 재정정책의 경우 한계나 부작용을 가지면서 단기적인 효과에 그치기 때문에 결국, 근본적인 성장전략이 성과를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6월 14일에 내각에서 의결된 성장전략의 내용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일본 주가의 하락과 엔고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성장전략(정식명칭: 日本再興戰略)은 △ 일본 산업 재생 플랜 △ 전략시장 창조 플랜 △ 국제전개전략의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성장전략은 농업, 의료, 그린 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을 망라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 촉진 등 다양한 과제도 제시되었으나 과거 정권에서도 강조돼왔던 정책이나 각 부처의 기존 정책 메뉴를 잡다하게 담고 있어서 참신함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정권에서도 거듭 강조되고 고민해왔던 비슷한 성장전략이 아베 내각이라고 즉각적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는가’라는 의심이 제기될 수 있다.

성장전략에 힘입어서 일본 경제가 단기적으로 크게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성장률은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의 효과에 힘입어서 2%를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겠지만 소비세 인상이 예상되는 2014년에는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 경제의 완만한 회복과 함께 이미 결정된 대폭적인 양적금융완화 정책의 누적적인 효과에 힘입어서 일본 경제는 1% 내외의 완만한 소비자물가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2014년 3%p, 2015년 2%p의 소비세 인상의 효과도 고려하면 일시적으로는 2% 수준의 물가 상승세를 기록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일본 경제의 디플레이션 완화 및 탈출 조짐은 엔저를 가속화시키는 데에는 역부족이지만 기존의 엔고 추세를 완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일본 기업과의 경쟁에 대비하자

엔저 가속화에는 한계가 있지만 엔저 기조 자체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 기업으로서는 부활하고 있는 일본 기업과의 경쟁에 대비하는 자세가 중요한 시점이다. 리먼 쇼크 이후의 엔고기에 한국 기업은 LCD TV, 자동차, 리튬이온 2차전지 등에서 점유율을 높여 한일 기업 간 역전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이러한 한국 기업의 대일 경쟁력 강화 추세가 이번 엔저로 약해질 우려도 있는 것이다. 일본 기업으로서는 이번 엔저로 인한 수익 개선을 이용해서 가격 인하 및 마케팅 지출 확대ㆍ매출 확대 및 투자 확대ㆍ점유율 확대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 회복에 주력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환율은 경쟁력을 결정하는 하나의 요소이기 때문에 우리 기업으로서는 엔저를 활용해서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보이는 일본 기업에 맞서서 과거 일본 기업의 엔고 극복전략을 면밀히 검토하여 적용 가능한 전략을 활용하면서 경쟁력을 제고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약력]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 수석연구위원이자 격월간지 <Japan Insight>의 편집장이다. 1985년 일본 호세이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일본 및 해외 경제, 자원분야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볼륨 존 전략」,「일본식 파워경영」,「주5일 트렌드」,「일본과 독일」,「세계경제 전쟁의 승자」, 「일본경영의 힘」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