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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회오리에 피말린 건설사 CFO 직격 인터뷰
“조정위원회는
청와대 수족에 불과”

발문
대기업들 중에서도 B등급이 좀 있을 겁니다. 업계에서는 지금 C·D 등급으로 분류할 경우에
은행들의 BIS비율에 타격이 심하니, 어느 정도 개선의 여지를 주자는 것으로 풀이
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19일 건설사 1차 구조조정 대상이 발표됐다. 김진욱(가명) CFO가 다니는 C건설사는 다행히 퇴출이나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채권은행들에게 구조조정 대상을 더 늘리라고 압박을 가하는 상황이어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B등급이 나올 경우에는 주채권은행의 경영간섭이 심해지고 최악의 경우 C등급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상무는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정보를 알아야 자사 등급이 어떻게 매겨질지, 최악의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A등급이 기정사실화 아니냐는 질문에 김 상무는 “B등급 명단이 아직 발표가 되지 않았다”며 “명단을 찾으러 돌아다니고 있지만 설 이후(2월)에 보자는 말만 되돌아올 뿐이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채권은행에 하루 수십 번씩 전화
C건설사 자금팀 사무실 분위기는 적막하다. 마치 폭풍전야 같다. 김 상무는 “어쩔 수 없다”며 “회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김 상무를 따라 그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책상에는 서류파일이 쌓여 있는데, 김 상무는 그 중 하나를 빼왔다. 건설회사 신용위험평가표와 건설·조선업체 구조조정 일정과 평가대상자,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회 구조, 주채권은행인 G은행의 행장과 부행장, 심사역들의 명단이 적혀 있는 서류뭉치였다.
채권은행의 임직원 명단을 갖고 있는 이유를 묻자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채권은행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 할 것 아닌가”라며 “요즘은 하루에 몇 번씩 채권은행 심사역들에게 전화해 회사 등급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일과”라고 말했다.
워크아웃 등급인 C등급을 받지 않았으면 이제 괜찮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 상무는 “B등급을 받은 회사도 장기적으로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라며 “채권은행이 경영간섭하는 것은 둘째 치고 경영 환경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C등급으로 재분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B등급은 향후 경영개선이 어떠냐에 따라 C등급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경영개선을 어떤 지표로 어떻게 따질지는 모르겠지만, B등급이 A등급으로 격상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김 상무는 말했다. 특히 비재무 항목 중 ‘회사 업력과 경영진의 평판’, ‘소유 및 지배구조 투명성’ 등을 어떻게 지표로 나타낼지가 김 상무에게 있어 가장 난감하다. 가중치와 평점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하나, 1점으로 C등급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비재무항목평가가 100점 중 60점으로 배정한 것은 미래를 측정하는 항목이기 때문이다. 신용위험평가표를 만들었던 구조조정 작업반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현재 기업이 아니라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들을 선별하겠다는 의미”라며 “결국 비재무항목평가 점수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무항목평가 배점이 높지 않은 이유도 이미 현재 상황이 반영된 재무제표로는 미래를 측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재무제표는 공개된 자료이기 때문에 점수 매기는 것이 수월하지만, 미래를 측정하는 비재무 항목평가는 은행자료를 기준으로 삼는다. 은행의 주관적 의견이 들어갈 소지가 있다는 것이 중견 건설사들의 입장이다.
건설사들이 B등급을 꺼려하는 이유 중 또 하나는 ‘실사’ 때문이다. 추가적 부실이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실사를 해야 하는데, 건설사들의 장부상 문제점이 노출된다. 그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이 ‘분양’이다. 김 상무에 따르면 비재무항목평가 중 ‘평균분양율’ 점수에서 많이 갈라질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분양율이 70%에 달하는데, 아파트 입주비가 들어온 것은 20%밖에 되지 않을 경우가 있다. 실사하는 주채권은행 입장에서는 이를 유동성 위기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C건설사도 현재 스스로 점수를 매겨본 결과 총점 100점 중 A등급 점수에 약간 미달한다. 비재무항목 점수에 C건설사의 목숨이 달려 있는 것이다. 비재무항목평가의 점수가 어떤지 채권은행에 전화를 걸지만 매번 “알 수 없다. 기다려라”라는 말만 듣는다. 주관적인 의사가 들어갈 수 있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김 상무는 채권은행과 건설업계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얻는다. 김 상무의 하루일과는 외근의 나날인 셈이다.
또 구조조정의 주채권은행이 주거래은행이 아닌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주채권은행과 주거래은행은 같은 의미로 통하지만, 김 상무에 따르면 PF대출 보증을 부채로 넣다보니 주거래은행이 아닌 타 은행이 주채권은행이 됐다는 것이다.
“주거래은행이 아닌 타 은행이 주채권은행일 경우, 건설사에 대해 부담이 많지 않죠. 이번 1차 구조조정에서 대주건설이 그 피해자라고 할 수 있죠. 주거래은행은 솔로몬저축은행인데, 솔로몬저축은행이 제2금융권이라는 이유로, 주채권은행 명단에서 빠졌어요. 경남은행이 대주에게 대출해준 것도 별로 되지 않아 부담도 없어 퇴출시켰다는 이야기는 업계에서 기정사실화하고 있습니다.”
그는 경쟁 건설사나 대형 건설사들의 상황은 어떤지, 비재무항목평가 점수가 잘 나올 것 같은지 정보를 수집한다. 그는 “최악의 경우 누구에게 가서 매달릴지까지 생각해야 한다”며 “그렇다면 누가 가장 구조조정 작업에서 영향을 많이 미치는지를 알아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채권금융기관 조정위원장인 김병주 교수가 모두 총괄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우리가 알기로는 조정위원회은 청와대의 수족에 불과하고 청와대에 따로 조언을 해주는 인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김 상무가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현대건설 출신인 MB 측근(현재 현대건설 근무 중이라는 풍문이다.)이 현재 건설사 구조조정에 조언을 해주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H건설 모 인사가 막후 영향력 행사” 설
“해볼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봐야죠. 최악의 경우에는 채권은행만이 아닌 구조조정에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도 찾아가야지 않겠어요. 손 놓고 앉아서 마라톤 회의를 하기보다는 한 번이라도 채권은행 심사역들에게 전화하고, 업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야죠.”
구조조정 명단이 돌기 전, 김 상무가 지목한 중견 건설사들은 C·D등급을 받았다. 퇴출 건설사 중 지인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련 건설사 지인들은 채권은행과 구조조정위원회에 찾아가느라 전화통화도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B등급 기업들은 어디일까. 김 상무는 A등급 건설사들은 그룹사에 속한 건설사 중 매출 1조원 이상을 기록하는 기업들이라고 말한다. 그룹사의 유동성이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전제도 깔았다.
“대기업들 중에서도 B등급이 좀 있을 겁니다. 업계에서는 지금 C·D 등급으로 분류할 경우에 은행들의 BIS비율에 타격이 심하니, 어느 정도 개선의 여지를 주자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도 개선이 안 되면 C등급으로 분류가 되겠죠. B등급에는 D건설과 G건설, D산업, K산업, K건설 등이 포함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 상무가 말한 대형 건설사들은 대부분 그룹사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곳들이다. S물산과 H건설 등 그룹사들의 유동성이 안정적이고 매출이 1조원 이상인 대형 건설사들은 A등급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중견 건설사들 중 B등급이 많을 것”이라며 “결국 중견 건설사 내치기로 변질될 것 같다”고 말했다.
2월 2차 구조조정이 시작된다. 1차가 100위권 내의 건설사였다면, 2차는 100위권 외의 중견 건설사들이다.
현재 2008년 연말결산이 아직 나오지 않았고, 결국 3월 말 결산으로 퇴출기업을 가려내야 한다. 김 상무는 “2008년 상반기 결산으로 점수를 매길 수도 없고, 분기로 보면 부실이 심각하다”며 “정부에서는 2차 구조조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고민 중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희 기자 (wooang13@ermedia.net)

김현희 기자 wooang13@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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