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보다 바쁜 엄마들] 달달한 오후를 바느질하는, 정진희 씨

2013-02-20     박지현기자

바느질하는 ‘타샤튜더’같은 삶 꿈꾸죠

단순히 취미로 시작했다고 하니 배신감이 들 정도였다. ‘보통 사람’처럼 실이 꿰진 바늘을 헝겊사이로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중세시대 공주님이 태어나고 피터팬이 신었을 법한 신발이 만들어진다. 천과 바늘, 그리고 실만 있으면 못 만들게 없어 보였다. 천으로 비누거품을 만든다 해도 믿음직하다. 정진희 씨가 말한다면.

정 씨는 괘씸하게도(?) 생활공예를 독학으로 터득했다. 지금은 중학교 2학년인 아이가 갓난아기 때쯤, 1998년께였다. 집에 외풍이 심해 커튼을 달아야겠다 싶었는데 너무 비싸더란다. “자카드 원단으로 맞추고 싶었는데 커튼 하나 당 40만원이 넘는 거예요. 방마다 단다고 생각해보세요. 100만원이 훌쩍 넘잖아요.” 그래서 커튼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시장에서 원단을 떼어다가 바느질만 쓱쓱했다. 그러고 나서 인터넷 카페에 올려봤단다. 무심코 올린 사진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3시간 만에 댓글이 100개가 달릴 정도였다.

“내가 솜씨가 있는 편인가하면서 블로그를 열어 작품을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어요. 당시만 해도 블로그는 그저 소일거리로 만든 장신구를 하나씩 올리고 일상적인 얘기를 하는 그런 공간일 뿐이었죠.” 그런데 심상찮았다. 소품하나 만들어 올릴 때마다 오는 그 즉각적인 반응이란. 즐겨 보는 이가 많다는 걸 안 후에는 단순히 작품을 올리는 게 아니라 만드는 과정까지 함께 올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파워블로거까지 됐다.

돌이켜 보니 정 씨는 어린 시절부터 손재주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도 꼼지락거리며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오래 입어 늘어난 메리야스가 있으면 그것 가지고 솜 인형을 만들기도 했으니까요.” 그 시절에도 머리카락은 털실로 일일이 붙여 달며 ‘디테일’을 챙겼다니 말 다했다.

그 후로는 적성을 살리지 못한 채 살았다. 결혼 전에는 은행에서 일했고 결혼 직후에는 전업주부로 충실했다. “남편이 직업군인이었던지라 관사에서 6년 동안 살았어요. 그 근처에 뭐가 있나요, 집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면서 조금씩 공예품을 만들기 시작한 거죠. 아이에게 핀 만들어 달아주고, 인형 만들어주고….”

‘지극히’ 엄마다움을 뽐냈던 정 씨에게 ‘엄마 자격 상실’이라는 위기가 닥친 적도 있다. 블로그에 한창 재미를 붙일 때였다. 돌린 빨래를 또 돌릴 만큼 정신을 빼앗겼다면 믿을까. 중독이 이런 건가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라면을 끓이면 컴퓨터 앞에 가져가서 먹고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딸 아이가 TV 앞에서 혼자 라면 먹는 모습을 보고 아차 싶었단다. 그 때부터 마음을 달리했다.

블로그를 끊었느냐? 아니다. 대신 블로그를 하기 위해 하루를 이틀처럼 살기 시작했다. “10년 전부터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요. 일어나자마자 화장을 하고요, 그 뒤에는 집 청소를 하고 밥하고 아이 학교 보내고, 남편 출근시키죠.” 예전보다 부지런해지고 나서는 이전에 입던 편한 복장은 다 갖다 버렸다. 한시라도 늘어져 있기 싫어서다. 블로그를 하면서도 소홀히 하는 게 없으니 남편도 볼멘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게 정 씨의 귀띔이다.

10년 가까이 작품을 요술처럼 만들어 내다보니, 집안에는 더 이상 놓을 공간이 없다. 그래서 작년 6월에는 아예 공방을 차렸다. 공방은 개인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 씨는 나이가 들어서도 바늘과 실을 놓지 않을 작정이다. “주변에서는 말해요. 파워블로거에다, 공방까지 차렸으니 참 부럽다고. 그런데 저는 아직까지 종착역에 다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저 계속 나아가고 있는 과정인 거죠.”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타샤튜더처럼 나이 들고 싶어요. 퀼트를 하면서 정원에서 풀을 따 요리하고, 아이들한테 빵도 구워주는 그런 노년을 보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