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00개 하청과 매일 협상하라고?"… 노란봉투법 시행 앞둔 산업현장 '혼돈의 카오스'

당분간 논란 커질 듯

2025-11-25     최진홍 기자

내년 3월 시행되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앞두고 관가와 서울 여의도, 그리고 울산의 산업현장이 말 그대로 폭풍전야다.

고용노동부가 25일 하청 노조의 교섭권 보장을 위한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내 교섭단위 분리’라는 중재안을 내놨지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격앙된 분위기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혼란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항변하나 노사 양측 모두로부터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는 십자포화를 맞는 형국이다.

사진=연합뉴스

고용노동부의 셈법은 복잡했다. 먼저 김영훈 장관이 “노사 자치를 살리되 안정적인 틀을 만들겠다”고 강조한 배경에는 이미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 하에서 하청 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길이 열린 이상 무질서한 교섭 요구를 방치할 수는 없다는 현실적 고민이 깔려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꺼내 든 카드는 ‘교섭단위 분리제도’의 적극적 활용이다. 기존에는 노조 간 근로조건의 ‘현격한 차이’가 있어야만 예외적으로 인정해주던 교섭단위 분리를, 이제는 ‘직무’, ‘이해관계’, ‘갈등 가능성’만 있어도 노동위원회의 판단 하에 쪼개줄 수 있도록 시행령을 대폭 손질한 것이다. 

원청 정규직 노조와 하청 노조를 억지로 한 묶음으로 묶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별도 교섭 테이블을 차리게 해주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현장의 분위기다. 정부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제조업 현장의 한 직원은 “정부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1~3차 협력사만 8500곳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시행령대로라면 수백, 수천 개의 하청 노조가 제각각 ‘우리는 직무가 다르니 따로 교섭하자’고 달려들 텐데 원청이 1년 365일 교섭만 하다가 문을 닫으라는 이야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하청 노조들이 임금 인상을 넘어 원청의 생산 라인 속도 조절이나 물량 배정 같은 경영 고유 권한까지 교섭 테이블에 올릴 경우 국내 제조업 생태계가 마비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즉각 성명을 내고 “15년간 유지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사실상 형해화하는 조치”라며 강력히 반발한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혼란의 ‘심판’을 노동위원회라는 행정기관이 전담하게 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개정된 시행령에 따르면 노동위는 불과 20일 남짓한 기간 안에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 유무와 교섭 단위 분리의 적절성을 판단해야 한다. 

법조계에서조차 수년이 걸리는 사용자성 판단을 비상설 기구인 노동위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원청과 하청의 관계는 사업장마다 천차만별인데, 노동위가 서류만 보고 기계적으로 판단할 공산이 크다”며 “결국 노동위 판정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이 폭주하며 법적 분쟁 비용만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과거 ‘CJ대한통운 판정’을 통해 원청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했던 박수근 교수가 중앙노동위원장으로 내정된 상황이라 경영계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그렇다고 노동계가 정부 안을 반기는 것도 아니다. 민주노총과 진보 정당들은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시행령을 “노조법 개정 취지를 무력화하는 개악”으로 규정했다. 

노동계는 하청 노조가 원하면 조건 없이 원청과 교섭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부가 복잡한 ‘분리 절차’를 만들어 노동위의 승인을 받게 함으로써 사실상 교섭권을 통제하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원청 사장을 만나게 해달라는데 왜 노동위의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는 것이 이들의 항변이다.

여의도의 정치적 전선도 가파르다. 국민의힘은 “기업 활동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법”이라며 내년 예산안 처리 후 여야 민생경제협의체를 통해 노란봉투법 폐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벼르고 있다. 반면 야당은 법 시행을 고수하며 맞서고 있어, 국회발 강 대 강 대치가 예고된 상태다.

정부는 연내에 ‘사용자성 판단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사용자성 판단 지원 위원회’를 꾸려 현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노사 양측의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정부의 중재안은 오히려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내년 3월, 벚꽃이 피기도 전에 대한민국 산업현장은 수천 개의 하청 노조와 원청 기업이 뒤엉킨 전례 없는 ‘교섭의 홍수’ 속에 거대한 파열음을 낼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