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인사 단행한 삼성전자, 행간 읽어보니
기술 인재 전진 배치로 초격차 승부수
삼성전자가 사장단 인사에 이어 임원 인사까지 마무리하며 2026년을 향한 새로운 진용 구축을 완료했다.
인사의 핵심은 '기술 리더십의 복원'과 '미래 성장 동력 확보'로 요약된다. 불확실한 대내외 경영 환경 속에서도 승진 규모를 5년 만에 확대하며 성과주의 원칙을 재확인했고 인공지능(AI)과 로봇, 반도체 등 핵심 미래 기술 분야의 인재를 대거 발탁하며 기술 기업으로서의 본질을 강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전영현 부회장과 노태문 사장의 투톱 체제 확립부터 3040 젊은 리더의 파격 등용까지 관전 포인트가 많다.
투톱 체제와 기초과학의 결합, 안정을 넘어선 도약
삼성전자는 지난 21일 사장단 인사를 통해 노태문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직무대행(사장)을 정식 부문장으로 선임하며 '전영현-노태문' 공동 대표이사 체제를 공식화했다.
노태문 사장은 그동안 DX부문장 직무대행 꼬리표를 떼고 명실상부한 삼성전자의 세트(완제품) 사업 수장으로서 입지를 굳혔다. 모바일경험(MX) 사업부장직을 유임하면서 갤럭시 AI 생태계 확장이라는 기존 성과를 인정받음과 동시에 TV와 가전, 네트워크를 아우르는 DX부문 전체의 시너지를 창출해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삼성전자가 모바일에서 보여준 혁신 DNA를 가전과 전장 등 세트 사업 전반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전영현 부회장은 겸임하던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직을 내려놓고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에 오롯이 집중하게 됐다. 이는 반도체 위기론을 불식시키고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차세대 메모리 전쟁에서 주도권을 확실히 잡겠다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1인 4역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어낸 전 부회장은 반도체 초격차 회복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전력투구할 수 있는 환경을 확보했다.
한편 주목할 점은 SAIT 원장에 하버드대 교수 출신인 박홍근 사장을 영입한 것이다. 박 신임 원장은 25년 이상 기초 과학과 공학 연구를 이끌어온 석학으로, 양자컴퓨팅과 뉴로모픽 반도체 등 당장의 실적보다는 10년 뒤 삼성의 먹거리가 될 미래 디바이스 연구를 주도하게 된다. 이는 당면한 과제 해결(전영현)과 미래 원천 기술 확보(박홍근)라는 투 트랙 전략을 명확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5년 만의 승진 확대, '기술'과 '젊음'의 대약진
사장단 인사가 큰 그림을 그렸다면 25일 발표된 정기 임원 인사는 그 그림을 실행할 구체적인 '전사들'을 배치한 결과다.
이번 임원 인사의 가장 큰 특징은 지난 5년간 이어진 승진 축소 기조를 깨고 승진 폭을 확대했다는 점이다.
먼저 승진 규모의 반등이다. 삼성전자 임원 승진자는 2021년 214명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5년에는 137명까지 줄었으나, 이번 2026년 인사에서는 총 161명(부사장 51명, 상무 93명 등)으로 반등했다. 실적 회복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자, 위기일수록 인재에 투자해야 한다는 이재용 회장의 경영 철학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반도체(DS) 부문의 약진과 엔지니어 중용도 눈길을 끈다.
DS부문 부사장 승진자는 지난해 12명에서 올해 25명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실적 부진에 따른 문책성 인사가 예상되기도 했으나, 삼성은 오히려 HBM, 파운드리 공정 등에서 기술적 성과를 낸 엔지니어들을 대거 승진시키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홍희일 메모리사업부 D램 PE팀장 부사장, 김영대 파운드리사업부 제품기술팀장 부사장 등 현장 기술 전문가들의 승진은 "기술만이 살길"이라는 메시지를 조직 전체에 던지고 있다.
미래 기술 분야(AI, 로봇) 인재의 전면 배치도 흥미롭다. 이번 인사에서는 삼성리서치 소속 연구개발진의 승진이 두드러졌다. 이윤수 부사장(데이터 인텔리전스), 권정현 부사장(로봇 인텔리전스), 최고은 상무(로봇플랫폼) 등 AI와 로봇 분야의 R&D 인력들이 별을 달았다.
삼성이 하드웨어 제조사를 넘어 AI와 로봇을 중심축으로 하는 소프트웨어 및 플랫폼 기업으로의 체질 개선을 가속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0대 상무, 40대 부사장의 과감한 발탁을 통한 세대교체도 선명하다. 39세의 김철민 상무와 이강욱 상무가 임원 대열에 합류했고, 40대 부사장도 11명이나 배출됐다.
특히 강민석(49) 부사장은 갤럭시 AI를 적용한 최초의 AI폰과 차세대 폼팩터 기획을 주도한 공로를, 이성진(46) 부사장은 LLM(거대언어모델) 기반 생성형 AI 기술 개발 성과를 인정받았다. 연공서열을 파괴한 이러한 인사는 조직에 건전한 긴장감을 불어넣고 역동성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술 본원 경쟁력으로의 회귀
이번 사장단 인사와 임원 인사를 관통하는 핵심 철학은 '기술 본원 경쟁력 강화'와 '성과주의'다.
두 인사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은 관리형 리더보다는 현장형 기술 리더가 중용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장단에서 엔지니어 출신의 전영현 부회장 체제를 유지하고 과학자 출신 박홍근 사장을 영입한 맥락은 임원 인사에서 R&D 및 제조 공정 전문가들을 대거 승진시킨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재무적 수치 관리보다는 기술적 초격차 달성이 현재 삼성전자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유일한 해법이라는 경영진의 인식을 반영한다.
'미래 준비'라는 키워드 역시 공통적이다. 사장단 인사에서 SAIT의 위상을 재정립하여 기초과학 연구를 강화한 것은, 임원 인사에서 AI와 로봇 분야의 젊은 인재들을 발탁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는 단기적인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 대응을 넘어, 10년 후 삼성전자의 먹거리가 될 차세대 기술 선점을 위해 인적 자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다.
시사점은 명확하다. 삼성전자는 이제 '관리의 삼성'에서 '기술의 삼성'으로 회귀하고 있다. 불확실한 매크로 환경과 지정학적 리스크 속에서도 기술 인재를 우대하고 R&D 투자를 확대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이는 조직 내부에 "기술적 성과를 내면 확실히 보상받는다"는 강력한 동기부여를 제공함과 동시에, 외부 투자자와 시장에는 삼성의 기술 리더십 부활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이번 인사를 통해 전열을 재정비한 삼성전자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전망된다. 증권가와 산업계는 2026년 삼성전자가 기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실적의 '퀀텀 점프'를 이뤄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KB증권 등 주요 증권사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내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호황과 HBM 시장 진입 가속화에 힘입어 영업이익 100조 원 시대를 열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범용 메모리 가격 상승이 4분기 실적부터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시장의 우려를 낳았던 HBM4(6세대 고대역폭메모리)의 품질 인증 조기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다시금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절대 강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하고, 반도체 업사이클의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이번 인사에서 중용된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분야의 임원들이 2나노/3나노 등 선단 공정의 수율 안정화와 엑시노스 등 시스템 반도체의 경쟁력 회복을 이끌어낸다면, 삼성전자의 밸류에이션은 재평가받을 전망이다.
여기에 강력한 주주환원 정책이 더해진다. 삼성전자는 최근 10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으며, 향후 상법 개정안 등 정책적 변화와 맞물려 대규모 자사주 소각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적 호조로 인한 잉여현금흐름 증가는 추가적인 주주환원 여력을 확대시킬 것이며, 이는 주가 10만 원 안착을 넘어 16만 원대까지 바라보는 긍정적인 전망의 근거가 되고 있다.
나아가 인사에서 드러난 로봇과 AI 사업의 본격화는 삼성전자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여 단순 하드웨어 제조 기업 대비 높은 멀티플(주가수익비율)을 부여받는 근거가 될 것이다. 가전과 모바일에 AI가 결합된 '온디바이스 AI' 생태계의 완성은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며 시장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