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비 회수·손익분기점'…완성차 5사, 세단 라인업 쪼그라든다

현대차 아반떼·그랜저 제외하면 내수 세단 시장 크게 위축…수출도 아반떼·쏘나타만 분전 중고차만 눈길…제네시스 외 프리미엄 세단 부재 속 개발비 회수 가능한 SUV로 제작사 마음 돌려

2025-11-24     양정민 기자

‘누비라’, ‘프라이드’ 등 한국 도로를 주름잡던 세단의 시대가 끝나는 것일까. 트렌드의 변화 이상으로 세단의 ‘신차 소멸’이 진행 중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제네시스를 포함한 국내 완성차 5사의 2025년 현재 내수에서 판매 중인 세단은 전체 32종 중 11종에 불과하다. 

현대차 전통 세단인 아반떼, 그랜저, 쏘나타와 기아의 K5, K9를 제외하면 새로운 세단은 전기차인 기아 EV4(2025년 4월 출시), 현대 아이오닉 6(2022년 7월 출시), 지난 2021년 출시된 기아 K8이 전부이며 이조차도 K7의 차명 변경과 페이스리프트에 해당한다(확인). 중견 3사는 세단이 현재 내수에선 신차급 세단이 전무하다.

기아가 브랜드 최초 전동화 세단 ‘더 기아 EV4’의 외장 디자인을 17일 공개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올해 3분기 신차 분석 자료에서도 1위는 SUV, 세단은 2위를 기록했다. 올해 3분기까지 세단은 32만5571대 팔려 지난해 3분기 31만5687대보다 더 팔렸지만 1위 SUV(올해 3분기 누적 판매 66만1086대, 지난해 3분기 누적 판매 59만6668대)가 세단의 2배가 넘는 수치를 팔았다. 돈도 더 잘벌어주고, 세단보다 훨씬 더 잘팔리는 SUV 시대 속 세단은 완성차 제작사들에게 매력을 잃고 있다.

현대차 독주 속 구관이 명관된 세단 시장

24일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가 이코노믹리뷰에 제공한 데이터에 따르면 3분기 중고차 외형별 승용차 실거래 대수 중 1위는 세단이다. 2위가 SUV, 3위가 해치백으로 세단 자체의 인기가 사그라든 것은 아니었다.

1월부터 10월까지 그랜저 HG가 중고 거래 5위(2만9319대), 뉴 그랜저 IG가 7위(2만4447대), 그랜저 IG가 12위(1만8653대)를 기록했고 아반떼 MD와 AD도 두 라인업을 합쳐 3만6000대가 넘게 팔렸다. 르노코리아 SM6도 10월까지 1만2060대 팔려 전체 29위를 기록했다.

기아 K8.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업계는 내수에서는 견고한 세단 시장을 비집고 들어가기 어렵고 수출로 눈을 돌려도 투자 대비 개발비를 벌기 힘들다고 세단 판매 부진 이유를 조명한다. 내수 시장은 테슬라, BMW 등 수입차 세단이 주류로 자리 잡았고 현대차그룹의 세단 라인업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한국 미출시 차량으로 결정된 기아 K4를 제외하면 한국에선 견고한 ‘기존 세단 시장’을 뚫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현대자동차 IR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아반떼 6만7099대 ▲그랜저 5만3678대 ▲쏘나타 2만7994대로 아반떼가 현대차 전체 내수 판매 1위, 그랜저가 2위, 쏘나타가 6위로 견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네시스 라인업을 포함해도 아반떼와 그랜저는 1,2위를 유지하며 G80이 6위(3만4158대), 쏘나타가 7위가 된다.

아반떼 N이 훈련을 마친 뒤 서킷 주행 전 주차돼있다.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SUV 시장에선 팰리세이드(5만1834대, 3위), 싼타페(5만431대, 4위), 투싼(4만3594대, 5위), 코나(2만6988대, 8위)를 기록 중이고 제네시스에서도 GV70이 2만7963대, GV80이 2만6703대 팔리는 등 분전 중이지만 아반떼, 그랜저의 아성에 도전하기엔 아직 부족하다.

기아의 포지션은 더 SUV로 몰려 있다. 레이-모닝이라는 경차 라인업이 매우 강세인 가운데 ▲K5 2만9709대 ▲K7 & K8 2만3428대 ▲K9 1273대 ▲EV4 7691대로 쏘렌토(8만479대), 스포티지(5만9743대), 셀토스(4만6404대), 레이(3만9907대)에 못 미치는 수치다.

수출은 어떨까. 현대차 세단 수출은 아반떼(엘렌트라), 쏘나타뿐이었다. 10월까지의 통계에 따르면 아반떼가 15만8026대, 쏘나타 7만2566대뿐이다. 그랜저는 2228대로 수출이 매우 약하며 G70이 9008대, G80이 5505대, G90이 1632대에 불과했다. 엘렌트라와 쏘나타는 미국 현지 판매도 각각 12만6436대, 5만220대로 높은 수준이었고 G70이 9344대, G80이 3099대, G90이 1312대였다.

현대자동차 아반떼(미국명 엘란트라). 출처=현대자동차

기아 역시 K5가 미국에서 6만 대 넘게 현지 생산-판매되는 것 외에는 세단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EV3가 유럽에서 5만5000대 넘게 팔리고 스토닉, 쏘울 등 한국에서 힘을 잃은 차가 여전히 해외에서 인기 있는 점을 바라보아도 대조적이다.

국내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은 수입차와 현대차그룹의 세력이 너무 강해 비집고 들어가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고 현대차그룹도 아반떼, 그랜저가 막강하다 보니 굳이 돈을 물어다주는 SUV 대신 (신차 연구 여력을) 세단에 투입할 이유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며 “세단의 필요성을 느끼는 시장의 요구가 있으면 자동차사들이 세단에 투자를 하겠지만 이젠 그 시대가 지난 것”이라고 말했다.

손익분기점 위태… 다양성 포기하고 현실 택한 중견 3사

르노삼성 '아듀 SM5'. 사진=르노삼성자동차

르노삼성의 SM 시리즈, 쌍용의 체어맨, GM대우의 말리부, 크루즈를 비롯해 세단 라인업이 화려했던 시기를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 여전히 중고차 시장에서 세단의 거래는 적지 않은 편이고 자연스럽게 옛 세단을 중고차 단지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는 이유다. 당장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르노 SM6는 올해 10월까지 1만2060대(세단 중 11위) 거래됐고 뉴 SM3도 뒤이어 1만1684대(세단 중 12위), 뉴 SM5는 9146대(세단 중 21위) 거래됐다. 쉐보레 크루즈도 올해 상반기 기준 3959대 중고 거래돼 이 기간 세단 중 30위를 기록했다.

KB차차차가 조사한 중고차 거래에서도 SM5는 2023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5513대 거래돼 상위 20위를 차지했다. 지난 2020년 단종된 차량이지만 여전히 중고차 내 거래량은 상당한 수준이다. 이에 대해 르노코리아 측은 “SM5를 포함해 SM 시리즈는 자사에게 유산이자 앞으로 고민해 나가야 될 과제”라며 “세단 시장에서 한발 멀어진 만큼 다시 들어가려면 시장 분석을 많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쉐보레 중형 세단 '더 뉴 말리부 1.35 E-Turbo' 주행사진. 사진=한국GM

마찬가지로 단종된 말리부도 KB차차차에서 지난해에만 10만2000건 넘게 조회되는 등 적지 않은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재 한국GM은 모든 세단 라인업이 단종되고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만 국내 생산-판매 & 수출 중이다. KGM도 지난 6월 미래 계획 발표 행사인 ‘KGM 포워드’에서 2030년까지 신차 7종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으나 이 중 세단은 없다. 체어맨 브랜드를 넣어뒀다는 뉘앙스의 발언도 곳곳에서 묻어나왔다.

완성차 제작사가 세단을 접어둔 이유는 돈이다. 같은 플랫폼으로 세단과 SUV를 함께 개발해도 실제 판매는 SUV가 더 많이, 더 비싸게 팔리다 보니 개발비 배분·회수 면에서 SUV가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올해 3분기 기준 세단과 SUV의 판매 비중이 1:2로, 개발비용 회수로 접근하면 자연스럽게 세단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쌍용자동차 체어맨W. 사진= 쌍용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신차 1세대 개발 비용이 크고 고정비는 비슷한데 세단은 볼륨이 줄어들어 ‘대수당 개발비 부담’이 커지고 손익분기점 이슈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수출로 바라보려고 해도 세단 시장은 여러 국가에서 SUV·픽업에 밀려 점유율이 크게 낮아진 것이 화근”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생활이 변한 점도 한몫한다. 한국 사람들의 소득이 높아지고 챙겨야 할 부양가족, 짐이 늘어나며 SUV와 수입차 급 프리미엄 세단을 지향하는 시선이 많아졌단 게 전문가의 시선이다. 자동차 업계는 소득 수준이 2만 달러 이상인 국가에선 SUV가 늘어나고 3만 달러 이상일 때는 고급 브랜드 차량 구매 비중이 늘어난다고 조명했다.

아이오닉 6 페이스리프트.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한국은행에 따르면 1인당 국민총소득(GNI, 명목·달러 기준)은 2014년에 약 3만798달러에서 2024년에 약 3만6624달러로 약 19% 정도 상승했다.

권용주 국민대학교 자동차 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10년 전에 비해 소득 수준이 크게 증가하며 사람들이 제네시스, 벤츠 등 프리미엄 세단을 바라보게 된 것이고 그것을 지향하기 조금 아쉬운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저가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SUV를 노리게 된 것”이라며 “같은 플랫폼을 써도 덩치 원가가 세단에 비해 SUV가 더 좋고 SUV가 수익률이 훨씬 좋기 때문에 SUV 강세와 세단 약세가 단순 현상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