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실질가치, 금융위기 이후 최저…환율 1500원 진입 전망도

10월 실질실효환율 89.09…뉴질랜드 이어 하락폭 2위 엔·위안 약세 겹치며 원화 ‘최약체’ 고착 우려…정부 개입에도 전망치 상단 1540원

2025-11-23     김호성 기자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원화 실질가치가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한 만큼 국제 교역에서 원화 구매력 하락 압력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한국의 실질실효환율(REER) 지수는 89.09(2020년=100)로 한 달 전보다 1.44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올해 3월 말 89.29보다도 낮으며, 금융위기였던 2009년 8월 말(88.88) 이후 16년 2개월 만의 최저치다.외환위기 당시 1998년 11월 말 86.63과 비교해도 크게 높지 않은 수준이다.

한국의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외환위기 당시 최저 68.1, 금융위기 당시 최저 78.7까지 떨어진 바 있다.

원화 실질가치는 2020년 10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100선을 웃돌았으나 이후 90 중반대에서 머물렀다.

미국 경기 호조에 따른 달러 강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가 동반 약세를 보이면서 원화 하락을 이끄는 흐름이 수년간 지속됐다. 지수는 지난해 하반기 95선 아래로 떨어졌고, 12월 계엄 사태를 계기로 90선까지 빠졌으며 최근까지 동일한 수준에서 횡보해왔다.

실질실효환율은 한 나라의 화폐가 상대국 통화 대비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갖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기준 시점 대비 100보다 낮으면 저평가로 간주된다. 현재 수치는 국제 교역에서 원화 실질 구매력이 주요국 대비 크게 떨어졌음을 뜻한다.

10월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BIS 통계에 포함된 64개국 중 일본(70.41), 중국(87.94)에 이어 세 번째로 낮았다. 같은 기간 하락 폭도 뉴질랜드(-1.54) 다음으로 큰 -1.44포인트였다. 한국만 놓고 보면 지난 3월(-1.66) 이후 7개월 만의 최대 하락 폭이었다.

이달 역시 원화 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달 22일까지 원화 가치는 2.62% 하락했다.

일본 확장 재정 정책 여파로 약세를 보인 엔화(-1.56%)와 비교해도 원화 하락률이 1%포인트 이상 컸다. 같은 기간 호주 달러(-1.31%), 캐나다 달러(-0.65%), 스위스 프랑(-0.51%), 영국 파운드(-0.41%), 유로(-0.19%) 등도 달러 대비 약세였으나 원화보다 하락 폭이 작았다. 주요국 통화 중에서는 중국 역외 위안(+0.24%)만 달러 대비 강세였다.

위험 회피 심리로 달러가 강세를 보인 데다 내국인의 미국 주식 투자로 달러 매수세가 몰려 원화약세가 유독 크게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점도 실질실효환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환율이 1500원대로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환율은 이미 21일 장중 1476.0원까지 상승해 미·중 무역 갈등 우려가 정점을 찍었던 올해 4월 9일(1,487.6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4월 급등은 일시적 성격이 강했으나 최근엔 소폭 등락을 반복하며 상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박형준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예상보다 매파적인 결정을 내릴 경우 달러 강세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며 "일본 정부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에 따른 엔화 약세도 환율 상단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요인이 동시에 진행될 경우 1500원 선도 방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아울러 정부 개입만으로 환율의 방향성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NH선물 리서치센터는 최근 외환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내년 원·달러 환율 상단을 1540원, 하단을 1410원으로 제시했다. 이는 1400원대가 사실상 '뉴노멀'이 될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