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회상(靈山會相)을 들어보자 [정진용의 우리 음악 쉽게 듣기]

2025-11-22     정진용 선릉아트홀 무대감독
※ 정진용은 대금연주자이자 선릉아트홀의 무대감독이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우리 음악 쉽게 듣기’에서는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초심자가 국악을 더 쉽게 즐기는 방법을 소개하고 감상할만한 곡을 추천한다.

영산회상(靈山會相)을 들어보자.

영산회상은 한국 전통 기악곡의 대들보이자, 현재까지도 가장 중요하게 연주되는 대곡(大曲)이다.

이 악곡은 본래 불교 성악곡에서 시작하여, 조선 초기 궁중으로 수용되었다. 이후 가사를 잃고 기악곡으로 변모하여 궁중에서는 정재의 반주로, 민간에서는 선비들의 줄풍류(현악 중심의 소규모 합주) 음악으로 널리 향유되어 현재에도 사랑받고 있는 악곡이다.

영산회상은 8개에서 12개에 달하는 악곡을 이어 연주하는 모음곡이며, 느린 곡에서 시작하여 점차 빨라지는 구조이다.

첫 곡 <상령산(上靈山)>은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相佛菩薩)’이라는 가사를 노래하던 불교 성악곡이 기악곡으로 편곡되어 전승된 것으로, 매우 느린 20박 장단이다. 이후 살짝 빨라지는 <중령산>을 거쳐 10박 장단의 <세령산>과 <가락덜이>로 이어지며, 6박인 <상현도드리>, <하현도드리>, <염불도드리>, 이후 <타령>, <군악>에 <뒷풍류>까지도 덧붙여져 장대한 모음곡을 이룬다.

일반적으로 영산회상이라 하면 낮은 음역대의 현악영산회상(중광지곡, 줄풍류)을 지칭하는데, 여기서 조옮김을 한 후 옥타브를 올리는 등 변주한 중간 음역대의 평조회상(유초신지곡), 관악기 위주이며 높은 음역대의 관악영산회상(표정만방지곡, 대풍류) 등 다양한 형태로 파생되었다. 이들을 전곡 연주할 시 짧게는 35분에서 길게는 1시간 20분까지 소요될 정도로 많은 모습으로 변모하였고,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영산회상을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

오늘은 이중 현악영산회상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영산회상은 단순한 듣기를 넘어 인내와 집중을 요구하는 악곡이다. 그만큼 감상이 쉽지 않다는 뜻이기에, 이 칼럼의 10회차까지 악곡 소개 및 감상법 추천을 견뎌낸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악곡이며, 중급자로의 승급을 축하하는 바이다.

첫째, 느림에서 시작해 빨라지는 '템포의 여정'을 따라가며 감상하길 바란다.

영산회상은 그 자체가 장대한 음악적 서사로, 깊은 인내와 사색의 시간이 요구되는 20박 장단으로 시작하여, 10박, 6박 등 점차 빠른 장단으로 진행된다. 느린 시작이 주는 종교적 장중함에서 풍류의 흥으로 몰아치는 가속의 과정을 차분히 따라가야 영산회상의 진정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섬세한 앙상블에 귀 기울여보자.

우리음악은 서양의 화성음악(하모니)과는 달리, 주선율을 각자 조금씩 다르게 연주하는 헤테로포니의 형태를 띄고 있다. 가야금과 거문고가 한 음을 뜯고 여운을 즐기는 동안 대금, 피리, 해금이 이 여운을 어떻게 감싸고 꾸미는지 집중해 들어보면 좋겠다. 여러 악기가 하나의 선율을 어떻게 서로 다른 가락으로 연주하며 장시간 조화로운 흐름을 유지하는지, 한국 전통 합주 음악의 아름다움을 즐겨보자.

마지막으로, ‘변주(變奏)’를 생각해보며 들어보면 좋겠다.

국악에서 변주라 함은 편곡의 개념으로, 영산회상은 영산회상불보살에서 변주된 상령산, 이를 변주한 중령산, 그리고 이후 곡들 또한 이를 변주하고 외부의 음악을 차용해 와서 만들어진 모음곡이다. 한 선율을 바탕으로 속도를 높이고, 음을 더하고 빼는 변주 기법을 반복하여 새로운 곡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선에서 시작하여 면이 되고, 공간이 되며 이 공간이 채워지는듯한 전통 음악의 변주를 느끼며 감상한다면, 긴 영산회상이 지루한 음악이 아닌 치밀한 짜임의 작품으로 다가올 것이다.

오늘의 추천 음반은 명반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SKC의 국악 제3집, <영산회상>이다. 큰 스승님이셨던 김응서 명인이 대금을 연주하였고, 가야금 최충웅, 거문고 이오규, 단소 김중섭, 양금 임재심, 장구 김태섭, 피리 정재국, 해금 양경숙과 같이 국립국악원에 모여있던 당대 최고의 명인들의 연주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