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다이어트 "문어발 오명 벗고 AI 올인"

최대 규모 구조개편 단행

2025-11-22     최진홍 기자

카카오가 창사 이래 가장 강력한 수준의 ‘군살 빼기’에 돌입했다. 지난 수년간 ‘골목상권 침해’와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비판에 시달렸으나 핵심 계열사의 경영권을 외부에 넘기고 적자 사업부를 대거 정리하는 고강도 쇄신안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22일 재계와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최근 헬스케어 자회사의 경영권을 차바이오그룹에 이양하는 ‘빅딜’을 성사시킨 데 이어 지난 3개월간 게임 관련 계열사 17곳을 정리했다. 

단순히 비용을 절감하는 차원을 넘어 그룹의 생존 본능이 발동된 결과로 해석된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내걸었던 ‘선택과 집중’ 전략이 임기 중반을 지나며 구체적인 성과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카카오·차바이오 ‘혈맹’의 이면
구조개편의 하이라이트는 카카오헬스케어와 차바이오그룹 간의 지분 교환이다. 

카카오는 자회사인 카카오헬스케어의 경영권을 차바이오그룹에 넘기면서 2대 주주로 물러나는 결단을 내렸다. 플랫폼 기업이 미래 먹거리로 점찍었던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의 주도권을 병원·바이오 그룹에 넘긴 것은 이례적인 행보다.

이번 거래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으로 설계됐다. 거래 구조는 ‘감자→구주 매각→유상증자→지분 교환’으로 이어지는 4단계 프로세스를 따른다. 우선 카카오헬스케어는 누적된 결손금을 털어내기 위해 90% 무상감자를 단행한다. 자본금을 10분의 1로 줄여 장부상 손실을 지우고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깨끗해진 장부 위에 카카오는 보유 지분 81.7%를 차바이오그룹 계열사인 차케어스와 차AI헬스케어에 약 700억 원에 매각한다.

주목할 점은 카카오가 이 매각 대금을 현금화해 들고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차바이오그룹에 재투자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카카오는 매각 대금 중 300억 원을 차바이오텍 유상증자에 투입해 차바이오텍의 지분을 확보한다. 나머지 400억 원은 카카오헬스케어의 유상증자에 다시 투입한다.

IB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는 적자가 지속되던 헬스케어 자회사를 연결 재무제표에서 떼어내면서도 향후 기업가치 상승에 따른 이익은 공유할 수 있는 구조를 짰다”며 “차바이오그룹은 초기 투자 비용 부담을 줄이면서 카카오의 IT DNA를 이식받게 돼 양측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딜”이라고 분석했다.

내년 상반기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면 카카오헬스케어는 카카오의 품을 떠나 차바이오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된다. 차바이오그룹 측 지분율이 43.08%로 최대주주가 되며 카카오는 29.99%의 지분을 보유한 전략적 파트너로 남게 된다. 이를 통해 카카오헬스케어는 1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실탄을 확보하게 됐으며 ‘비의료기관’이라는 한계를 넘어 차병원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사업 확장이 가능해졌다.

‘게임왕국’의 해체… 3개월 새 17개 계열사 정리

헬스케어 분야가 전략적 제휴라면 게임 분야는 공격적 구조조정에 가깝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1일 발표한 대규모기업집단 소속회사 변동 현황을 보면 카카오의 다이어트가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불과 3개월 사이 카카오에서 제외된 계열사는 총 17개에 달한다. 이는 92개 대기업 집단 중 가장 많은 수치다. 정리된 계열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게임 개발사다.

카카오게임즈의 자회사인 넵튠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이 핵심이었다. 넥스포츠 님블뉴런 엔크로키 온마인드 이케이게임즈 등 다수의 게임 개발사가 지분 매각이나 흡수합병 등을 통해 정리됐다. 파산선고를 받은 엔플루토와 골프와친구 같은 부실 계열사도 과감히 털어냈다.

그동안 카카오는 유망한 중소 게임사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시킨 뒤 상장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덩치를 키워왔다. 이른바 ‘쪼개기 상장’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방식이다. 그러나 엔데믹 이후 게임 산업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카카오게임즈의 실적 부진이 겹치면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카카오는 연말까지 계열사 수를 현재 99개에서 80개 수준까지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전년 대비 30% 이상 축소된 규모다. 방만 경영이라는 외부의 비판을 수용하는 동시에 수익성이 나지 않는 사업을 정리해 현금 흐름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군살 빼고 AI 근육 키운다”

광폭 행보의 중심에는 정신아 대표가 있다. 정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CA협의체를 중심으로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지휘해왔다.

정 대표는 지난달 주주서한을 통해 “지난 1년 반 동안 그룹 지배구조를 속도감 있게 개편하고 전사적인 비용 효율화를 진행했다”며 “미래 성장에 집중할 수 있는 재무 구조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미래 성장’은 인공지능(AI)을 가리킨다. 카카오는 계열사 정리로 확보한 자금과 인력을 AI 사업에 쏟아붓고 있다. 최근 공개한 자체 AI 모델 ‘카나나’가 그 시작점이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이라는 강력한 플랫폼에 AI를 결합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오픈AI 등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과거처럼 모든 것을 자체 개발해 내재화하려는 폐쇄적인 전략에서 벗어나 외부의 우수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업계에서는 카카오의 체질 개선 작업은 8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시장의 우려가 완전히 불식된 것은 아니다. 핵심은 AI 사업의 성패다.

카카오가 야심 차게 내놓은 ‘카나나’가 구글의 제미나이나 오픈AI의 챗GPT와 비교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또한 게임과 헬스케어에서 손을 뗀 빈자리를 AI 기반의 신규 서비스가 얼마나 빠르게 메워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사법 리스크 해소도 여전히 무거운 과제다. 김범수 창업자의 구속 기소 등 경영진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과감한 투자 결정이나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의 이번 구조조정은 창업 이래 계속되어 온 팽창 정책의 종언을 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계열사 정리가 마무리되고 AI 사업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온다면 카카오는 ‘국민 메신저’ 기업에서 ‘AI 테크 기업’으로 재평가받는 변곡점을 맞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카카오발 구조조정은 현재 대한민국 재계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고금리 장기화와 글로벌 경기 침체 그리고 중국의 거센 추격 속에서 국내 대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리밸런싱(사업 재편)’에 한창이다.

SK그룹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대응해 배터리 및 소재 사업의 효율화에 나섰다. SK는 최근 3개월간 실리콘 음극재 사업을 하던 얼티머스와 SK머티리얼즈그룹포틴을 정리하고 전기차 충전 사업자인 SK일렉링크 지분을 매각하는 등 9개 계열사를 줄였다.

반면 새로운 기회를 찾아나서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포착됐다. 삼성은 초고령화 사회 진입에 맞춰 시니어 케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삼성노블라이프’를 설립했다. 포스코는 반도체 특수가스 시장 확대를 위해 켐가스코리아를 인수했고 CJ는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을 앞두고 콘텐츠웨이브를 계열사로 편입하며 미디어 공룡의 탄생을 예고했다.

한화, 신세계, GS 등은 부동산 개발 및 투자 회사를 잇달아 설립하며 자산 운용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본업의 성장 정체를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캐시카우 발굴 시도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