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미국 기술에 중독시켜라" 트럼프의 도박, 엔비디아 H200 풀리나

H200 중국 판매 가능성 급부상

2025-11-22     최진홍 기자

철옹성 같았던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전선에 미묘한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칩 H200을 중국에 판매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규제 완화를 넘어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셈법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며칠간 엔비디아 H200 칩의 대중국 선적 허용 여부를 놓고 초기 협의를 진행했다. 

H200은 엔비디아의 이전 세대인 '호퍼' 아키텍처 기반 제품이다. 현재 수출이 허용된 저사양 칩 H20보다는 성능이 월등하지만 최신 '블랙웰' 시리즈보다는 한 세대 뒤처진 모델이다.

이번 논의가 주목받는 이유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기술 안보 전략이 무조건적 차단에서 전략적 종속으로 선회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사진=연합뉴스

"차단만이 능사 아니다" 엔비디아의 설득 통했나
시장에서는 이번 기류 변화의 배후에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집요한 설득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젠슨 황은 올해 내내 백악관과 의회를 오가며 "지나친 규제가 오히려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깎아먹고 중국의 기술 자립만 부추긴다"고 주장해왔다.

현재 중국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화웨이 등 토종 기업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급성장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현 규제 환경에서는 중국 시장을 고스란히 외국 경쟁사에 내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을 피력해왔다. 이날 보도 직후 엔비디아 주가는 장중 한때 2% 이상 급등하며 184달러선을 터치해 시장의 기대감을 반영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는 입체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언급한 이른바 '기술 중독(Addiction)' 전략이 눈길을 끈다. 

중국에 최고 성능의 칩은 주지 않더라도 '쓸만한' 미국산 칩을 계속 공급해 중국이 독자 기술을 개발할 유인을 없애고 미국 기술 생태계에 묶어둬야 한다는 논리다.

H200은 이 전략에 부합하는 계륵 같은 존재다. 나아가 최첨단 블랙웰 칩은 여전히 통제 대상이지만 H200 정도는 중국에 팔아 실리를 챙기고 중국의 기술 자립 속도를 늦추는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역시 "블랙웰이 더 이상 최첨단이 아닌 시점에는 중국 수출도 상상할 수 있다"며 유연한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의회 강경파의 반발과 불확실한 미래

다만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특히 미 의회 내 대중 강경파들이 어떠한 형태의 고성능 칩 판매도 반대하고 있어 고민이 깊다. 

현재 상원에서는 현재 중국에 대한 모든 제한 칩의 수출 허가를 의무적으로 거부하도록 하는 법안이 추진 중이다. 그리고 이 법안이 통과되면 행정부의 H200 허용 논의는 원천 무효가 된다.

중국의 반응도 변수다. 베이징 당국은 이미 자국 기업들에게 H20 등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제품 구매를 자제하라고 권고하며 '탈미국'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이 문을 열어준다고 해서 중국이 덥석 그 미끼를 물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여름 "중국을 돕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동시에 조건부 판매 승인을 통해 미국 정부가 매출의 일부를 가져가는 실리적 접근을 취하기도 했다. 이번 H200 카드 역시 실제 판매 허용보다는 중국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블러핑(허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