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블·HBM’ 투톱…노태문·전영현 체제 삼성전자 "기술 중심으로 간다"
삼성, MX·DS 투톱 완성… 노태문·전영현 체제로 2026년 대표 라인업 꾸려 MX·DX 동시 지휘… ‘AI 드리븐 컴퍼니’ 전면에 선 노태문 ‘최대 적자’에서 ‘7조 영업이익’까지… 전영현의 턴어라운드
삼성전자가 2인 대표 시대를 열어간다. 한종희 부회장을 가슴속에 묻은 지 4개월 만이다. 텍사스 오스틴 팹과 테슬라와의 협업, 이재용과 뉴 삼성, 박학규 사장 등 미래전략실의 부활까지 삼성의 2026년이 예열을 마쳤다는 평가다.
21일 삼성전자는 노태문 사장을 삼성전자 대표로 승진시키는 것을 포함해 사장 승진 1명, 위촉 업무 변경 3명 등 총 4명 규모로 ‘2026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노태문 대표 내정자와 전영현 대표 체제로 2026년을 맞이하며 핵심 사업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하에서 경영 안정을 도모할 것으로 기대했다.
개척자에서 삼성 대표로… 노태문, 맨 위에 오르다
노 대표 내정자의 어깨가 무거워진다. 직무대행 시절을 끝내고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모바일 경험(MX) 사업부장으로 동시 위촉됐기 때문이다.
기존 무선 사업부에서 승진해 지난 2020년부터 MX사업 부장으로 활동 중인 노 대표는 무선사업부(현재의 MX사업부) 개발실장 등 핵심 보직을 맡으며 오랜 기간 모바일 사업에 집중한 바 있다.
2018년 12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노 대표 내정자는 폴더블폰 ‘갤럭시 폴드’ 출시를 주도하며 폼팩터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이자 ‘대장’이다. 향후 삼성전자가 폴더블에 얼마나 힘을 줄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면서도 지난 7월 출시한 ‘갤럭시Z 폴드7’ 커버 디스플레이로는 너비 약 64.9㎜의 6.5형 다이내믹 아몰레드 2X를 적용했고 ‘갤럭시Z 플립7’에도 펼치면 보이는 메인 디스플레이에 6.9형 다이내믹 아몰레드 2X를 장착했다. 슈퍼 아몰레드 디스플레이가 모바일에 적용된건 처음이다.
과감한 인공지능(AI) 탑재도 앞서간다. 경쟁사 애플의 ‘애플 인텔리전스’가 혼란을 겪고 있는 틈을 타 우월한 기술로 보여주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9월 노 대표 내정자는 “작년 갤럭시 S24를 출시하며 AI 폰 시대를 열었고, 2억대의 갤럭시에 AI를 적용했다”며 “올해 AI 적용을 더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독자 AI 모델(가우스)을 계속 발전시키고 있고 그것을 제품에 적용하고 있다”며 “협력 파트너의 AI 기술도 적극 도입해 고객들의 선택에 따라 최적의 AI 모델이나 플랫폼을 제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갤럭시 AI는 온디바이스 형태가 아닌 클라우드 형태로 사진 편집 등에서 더 깔끔한 지우개와 AI를 제공한다. 애플 ‘클린업’이 온디바이스 형태로 지저분하게 편집되고 원하는 대로 지워지지 않을 뿐더러 인텔리전스에 마땅한 기능이 없는 걸 감안하면 좀 더 열린 개발 환경인 안드로이드 활용을 극대화하는 셈이다.
현재 애플의 AI 이미지 제작 어플인 ‘플레이그라운드’도 한국에서는 아직 미제공 중이다. 오디오 지우개라는 이름으로 음악 편집까지 제공하는 삼성전자와 비교하면 큰 차이다. 2010년대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애플 생태계’에 빠져든 이들이 최근 압도적 기술로 무장한 갤럭시와 삼성전자의 대약진에 인정과 동시에 혼란을 느끼는 이유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AI폰 시대로 오며 아이폰·아이패드 유저들 중 AI 기능에 불만을 품고 갤럭시로 오는 분들이 상당해진 것이 내·외부의 분석”이라며 “카메라도 인물 사진 등에서 갤럭시가 밀리지 않는 만큼 갤럭시, 아이폰 선택 기준이 최근 남녀를 막론하고 어르신이나 10대를 제외하면 단순한 취향 차이가 돼 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DX 측면에서도 빠르게 공백을 메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갑작스럽게 한종희 부회장이 떠나 조직이 자칫 와해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조직 안정화 ▲MX(모바일) 사업부 실적 반등 ▲DX부문 내 시너지 전략 등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고 평가받았다. 직무대행을 뗀 주효한 이유다.
지난 9월 노 대표 내정자는 “2030년까지 DX 업무 영역의 90%를 인공지능(AI)으로 전환해 사업 현장에서도 AI가 결정하도록 하겠다”며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회사, AI로 일하고 성장해나가는 ‘AI 드리븐 컴퍼니’로 빠르게 전환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검증·안정 ‘애니콜’ 전영현…또 한 번 삼성을 구했다
전영현 부회장의 입지도 확고하다. DS부문장과 메모리사업부장은 그대로 맡고 겸직해온 SAIT(삼성종합기술원) 원장 자리에서는 물러난다. 업무가 덜어진다는 평가다.
지난 2000년 상무로 삼성전자에 몸담기 시작한 뒤 2014년 DS부문 메모리사업부장을 역임했고 2023년 미래사업기획단장, 2024년 DS부문장, 올해 삼성전자 대표까지 올라온 전 대표는 과거 왕조 시절 삼성 라이온즈 불펜 투수처럼 단순 구원 투수 이상의 이미지인 ‘애니콜’이다. 위기 국면마다 복귀하거나 중책을 맡으면서 ‘새 인재 대신 검증된 베테랑’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전 대표는 지난해 5월 DS부문장 취임 당시 “메모리사업부장 이후 7년 만에 다시 돌아와보니 우리가 처한 반도체 사업이 과거와 비교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느꼈다”며 “2023년 반도체 부문은 회사 설립 후 최대 적자를 기록했고 부동의 1위 메모리 사업은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었다.
덕분일까. DS부문은 메모리 사업에서 HBM3E, 고용량 DDR5, LPDDR5X 등 AI 서버용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매출과 경쟁력을 강화했고 엔비디아에 HBM3E 12단 제품 공급을 확정했다. 기술력 회복에 자신감이 붙은 삼성은 내친김에 HBM4도 내년 2분기를 목표로 달리고 있다.
이번 3분기 DS부문은 HBM3E와 서버 SSD 판매 확대로 분기 최대 메모리 매출을 달성하며 전 분기 대비 매출이 19% 증가했다. 1분기 1.1조원, 2분기 4000억원의 영업이익에 그쳤던 DS는 이번 3분기 영업이익 7조원을 기록했다.
기술 측면에서는 LPDDR5X, DDR5 등 프리미엄 메모리와 고용량 D램 대량 양산 등 미래 지향적 기술 상용화에 직접적인 기여를 했으며 AI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개발과 상용화를 진두지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공급이 아직은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업계 내부에 있다”며 “삼성전자는 이에 비해 수요·공급 편차가 과도한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D램은 3분기 SK하이닉스를 0.4%포인트 차로 따돌리고 1위를 탈환했다.
19일 차이나플래시마켓(CFM)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 D램 매출액은 전 분기 대비 29.6%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다. 매출 기준도 139억4200만 달러(약 20조4347억8940만원)으로 1위다. D램을 고객사들이 요구하는 방향대로 맞춰 설계한 결과가 그대로 따라온 것이다.
1분기 약 91억 달러(약 13조3924억7000만원)로 추정되나 2분기 103억5000만 달러(약 15조2320억9500만 원)로 분위기를 끌어 올린 뒤 3분기 만개했다. 1~3분기 D램 매출은 삼성전자 333.9억 달러(약 49조1333억8500만원)로 SK하이닉스(약 338.7억 달러, 약 49조8397억500만원)를 바짝 추격 중이다.
김재준 삼성전자 부사장은 3분기 컨퍼런스 콜 당시 “응용처 전반에서 2026년 물량에 대한 메모리 수요도 예년 대비 훨씬 강하고 빠르게 접수되고 있다”며 “D램의 경우 HBM 판매 기반을 지속 늘려갈 예정이고 HBM4는 업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기반으로 하이엔드 제품군 위주로 판매를 집중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재고 수준도 점점 줄어드는 중이다.
강렬한 성과, 안정된 조직, 잡음 없는 리더십까지 전영현 체제는 더 굳건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첨단 파운드리 도약과 메모리·파운드리 병행 성장 등의 지향점도 아직 있는 만큼 ▲양산력·품질경영 ▲개방·속도 조직문화 ▲기초 역량 및 근본 경쟁력 강화 ▲미국·일본·유럽 등 해외 팹 투자 등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삼성전자는 최근 미래전략실 출신인 박학규 사업지원실장과 최윤호 사업지원실 전략팀장도 새로 임명하며 이재용·노태문·전영현 리더십을 더 강하게 구축 중이다. 박학규 사장은 2020년부터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내며 회사 살림살이를 맡아왔으며 최 사장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출신의 재무 전문가로 지난해 11월까지 삼성SDI 대표를 역임한 바 있는 인물이다. 그동안 삼성 싱크탱크였던 정현호 부회장이 최근 이재용 회장 부회장으로 용퇴한 만큼 2026년에 삼성이 거는 기대치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이 외에 삼성전자는 박홍근 하버드대 교수를 전 대표가 자리를 비우게 된 SAIT 원장으로 신규 위촉했다. 박 원장은 2026년 1월 1일자로 입사할 예정이다. 윤장현 삼성벤처투자 대표이사 부사장은 삼성전자 DX부문 CTO 사장 겸 삼성 리서치 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는 2인 대표이사 체제를 복원하고 핵심 사업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하에서 경영 안정을 도모하는 동시에 미래 기술을 선점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전영현 부회장과 노태문 사장의 경우 오는 2028년 3월까지가 임기만료이기 때문에 내년에도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노태문 사장을 대표로 선임해 투톱 체제를 좀더 견고히 했다고 볼 수 있다"며 "향후 단행될 필드 분야(R&D, 생산, 마케팅 등) 분야 부사장급 이하 인사에서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인재와 외부 영입 인재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