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에서의 또 한해를 정리합니다 [오각진의 숲길에서 만난 생각들]
11월 말로 올해 일을 마칩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하는 틈틈히 금년 사업(?)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업이라 표현했지만 뭐 대단한 거는 아닙니다. 올해 몇 분이나 와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했는가가 핵심입니다. 이를 프로그램별로, 지역별로, 연령별로, 또 월별로.. 분석을 해보고 있습니다. 내년에 참고가 되라고 말이죠.
작업을 하면서 속으로 올해 산림 치유 현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고,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이게 참된 정리겠지요.
먼저 재미있는 순간부터 생각납니다. 산림치유 온 분들에게 뇌근력, 그러니까 인지활동에 도움을 주려 간단한 암송 게임을 합니다. 걱정에 먹이 주지말기 게임. 요령은 간단합니다. 수목원을 투어하다 잠시 앉아 내가 말하는 문장을 따라하게 합니다. ‘걱정을 해서/걱정이 없어진다면/걱정할 일이 없어서/ 걱정이 없겠네’이를 두 번 정도 같이 하고 자원하는 분이 문장 그대로를 암송하는 겁니다. 말뜻은 다 알지만, 인지 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그대로 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두 번째에 맞추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세 번째로 갑니다. 이때도 잘 안되면 거기서 멈추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전환합니다.
이때 잘 안된 분들이 며칠이 지나서도 그 호기심을 못 이겨 문장을 알려달라고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오거나 문자를 보내오는 겁니다. 물론 친절하게 알려드립니다. 걱정을 좀 줄이자는 의도였는데 걱정을 늘려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말이죠.
다른 하나는 참여자들이 인생 경험이었다고 감동했던 순간들의 장면입니다.
숲속 나무 스탠드에 앉어서 광화문 글판에 등장한 시 구절을 낭독하도록 합니다. 얼마 전 바람부는 날 나무 밑 스탠드에 앉아서 참여한 젊은이들에게 내가 준비한 짧은 시 한 구절씩을 낭송하게 하고 다들 침잠해 잘 듣기를 권했습니다. ‘이상하지 살아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최승자)’‘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정현종)’‘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그대가 피는 것인데/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김선우)’... 참여자 만큼의 시들을 생각에 잠겨 듣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시의 감동과 느낌이 그대로 와서 꽂혔다고 감동한 젊음들이 있었습니다.
또 ‘처음’을 얘기한 사람들도 생각납니다. 요가 매트에 누워서 나무 사이로 구름이 흘러가는 걸 보고, 지구가 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는 분. 또 자기가 찜한 나무의 낙엽이 바람에 하늘하늘 떨어지는 것도 처음. 눈높이서 나무만 보다가 땅에서 나무를 올려다보니 거대하고 아름답다며 이제사 처음 세상을 제대로 본 듯하다는 분. 다들 인생 처음에 제대로 인생 경험을 했다고 좋아했습니다.
더 많은 장면들이 스쳐 갑니다. 오늘 오전도 한기를 느끼며 시작했는데, 쉬 따듯해졌습니다. 햇빛의 귀함을 더 알게 되며 같이 한 분들의 온기로 더 따듯해졌음도 새삼 알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