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에서 태양광·ESS까지…韓-UAE ‘에너지 믹스 동맹’ 가동
UAE, 한국 기술력 기반 SMR·AI 원전 협력 강화 재생e 결합도 추진…K에너지 기업 동반 수혜 기대 “국내 신규 원전 로드맵은 비어있어” 우려도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가 원전·AI·재생에너지로 이어지는 ‘확장형 에너지 동맹’을 공식화했다. 양국은 SMR(소형모듈원자로) 기술 교류와 AI(인공지능) 기반 원전 운영 고도화를 추진하는 한편, 태양광·ESS(에너지저장장치)를 결합한 초대형 에너지 프로젝트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며 중동 지역에서의 공동 시장 개척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다만 해외 수출 성과와 달리 국내 원전 생태계의 기초 체력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18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안 UAE 대통령은 아부다비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과 UAE 100년 동행을 위한 새로운 도약’이라는 명칭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양국은 원자력 신기술·AI·글로벌 시장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으며 후속 양해각서(MOU)에는 소형모듈원자로(SMR), AI 기반 원전 운영, 제3국 공동 진출 등이 구체화됐다.
SMR·AI·바라카 모델…차세대 원전 협력 전면 확대
한-UAE는 미래 원전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SMR(소형모듈원자로) 분야에서 기술 교류와 공동 투자를 추진하기로 했다. UAE 입장에선 바라카 원전을 통해 한국의 기술력과 운영 경험을 확인한 만큼 SMR 분야에서도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기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인터뷰에서 “SMR에 대한 글로벌 투자는 2050년까지 67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은 SMR을 비롯한 차세대 원자력 기술에서 UAE와의 협력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바라카 원전을 협력 모델로 명시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양국은 한국이 수주·건설한 바라카 원전을 ‘에너지 협력의 성과’로 평가하며 바라카 원전에 AI 기술을 적용·확장해 제3국 원전시장으로 공동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
바라카 원전은 한국이 2009년 수주한 중동 최초의 상업용 원전으로 총 4기(5600MW) 규모로 건설돼 한국 원전 수출의 대표 성공 사례로 꼽힌다. 시공과 운영 중심이었던 양국 협력이 첨단 기술 개발과 공동 시장 개척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대통령은 “바라카 원전은 양국 우정의 상징이자 성공의 역사”라며 “양국은 향후 에너지 분야에서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AI·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원전 운영 고도화도 포함됐다. 양국 정상회담 직후 한국전력공사와 UAE 원자력공사(ENEC)는 ‘원전 분야 원자력 신기술·AI 및 글로벌 시장 협력 파트너십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MOU에는 ▲바라카 원전 운영 고도화를 위한 AI·디지털 기반 예측 정비 ▲운전 환경 시뮬레이션·디지털 트윈 구축 ▲발전소 운영데이터 디지털화 및 사이버보안 강화 ▲원전 운전·정비·디지털 분야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묶어 해외에 패키지로 수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ENEC는 미국·영국 등에서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에 맞춰 원전·에너지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모색해 온 만큼 이번 협력을 기반으로 원전 운영 고도화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원전 넘어 태양광·ESS까지 ‘포괄적 에너지 믹스’로 확장
이번 협약은 원전 협력을 넘어 재생에너지·ESS(에너지저장장치)까지 확장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은 UAE가 추진 중인 초대형 AI 인프라 구축 사업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핵심 파트너로 참여하기로 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최대 5GW 규모의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사업으로 막대한 양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이에 양국은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결합한 ‘포괄적 에너지 믹스’ 전략을 공유하기로 했다. UAE의 풍부한 태양광 자원을 활용하되,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태양광의 간헐성을 한국의 ESS 기술로 보완한다는 구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UAE의 풍부한 태양광 발전 잠재력과 한국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배터리 기술력을 결합한 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 전환 및 ESS 협력은 양국이 친환경 신산업을 선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서부발전이 참여하고 있는 알 아즈반 1.5GW(기가와트) 태양광 프로젝트와 한국중부발전과 UAE 마스다르 간 제3국 재생에너지 협력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알 아즈반 프로젝트는 아부다비 북동쪽 약 70km 알 카즈나 지역에 건설되는 1.GW 규모의 초대형 태양광 발전 사업으로 EDF 리뉴어블스, 한국서부발전, 마스다르 컨소시엄이 사업자로 참여한다. 약 300만장의 양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16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공급하고 연간 240만톤 이상의 CO₂를 감축할 것으로 추정된다.
UAE 정부는 ‘에너지전략 2050’’을 통해 2050년까지 클린에너지 비중을 50%로 높이고 발전 부문 탄소배출을 7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상태다.
韓 기업엔 ‘중동 신시장’…전문가 “교두보 확보 기회”
원전부터 태양광, ESS, 전력망까지 양국의 ‘포괄적 에너지 믹스’ 협력 확대는 K에너지 기술력 확장 및 수출 확대 효과를 불러오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원전뿐만 아니라 ESS 배터리, 전력기기 등 탄탄한 기술력을 갖춰 글로벌 시장에서 유수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동반 수헤가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한국 배터리 및 에너지 기업들에 있어 중동 지역이 가장 유망한 잠재적 수요지기 때문에 긍정적인 신호탄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윤성훈 중앙대 융합공학부 교수는 “미국이나 유럽은 자국 기술 및 플레이어들이 있는 상태로 진입 장벽이 높지만,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아직 전환 초기 단계”라며 “원전, ESS 기술력 있는 한국 기업들이 전략적 교두보로 삼기 좋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사막 지형은 태양광 연계 ESS 구축에 최적의 환경”이라며 “구매력과 자본을 갖춘 UAE는 한국 기술을 실현할 최상의 파트너이며, 이는 나아가 전기차 시장 둔화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돌파구가 되기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외 수출만 하면 뭐 하나”…국내 원전에는 ‘소홀’ 지적도
다만 이 같은 해외 세일즈 성과와 달리 정작 국내 원전 생태계의 기초 체력 회복은 더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해외에선 SMR 협력 및 원전 수출을 강조하고 있으나, 국내 정책 지원과 구체적인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선 ‘감감 무소식’이라는 지적이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해외선 SMR 공동 개발과 수출을 외치며 MOU를 맺고 있지만, 정작 최근 발표된 국가 핵심 기술개발 과제 등에서는 SMR 관련 내용이 빠져 있었다”며 “국내에선 SMR 개발 지원이나 원전 기술 고도화 정책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업계는 특히 정부의 신규 원전 건설 의지에도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최근 대통령 기자회견에서도 원전 생태계 복원이나 신규 건설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가 부족했다는 평가다. 급증하는 AI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고리 2호기 등 노후 원전의 재가동(계속운전)은 현실적인 이유로 승인했겠지만,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선 점점 논외로 벗어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해당 관계자는 “해외에서 성공적인 협력을 추진하려면 국내 시장과 기술 기반이 우선적으로 받쳐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