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인간의 협업, 그리고 금융의 혁신… 미리 보는 '2026 물류의 미래'

한국해양수산개발원·미래물류기술포럼, 2026년 물류 전망서 '물류트렌드 2026' 출간 에이전틱 AI부터 휴머노이드 로봇, 공급망 금융까지… 기술과 상생의 융합 비전 제시

2025-11-19     최진홍 기자

2026년의 물류 현장은 단순한 운송과 보관의 공간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에이전틱 AI가 공급망 전체를 지휘하고, 인간의 신체 능력을 강화하는 웨어러블 로봇이 노동의 강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혁신의 공간이다. 미래의 공상과학 소설이 아닌,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과 미래물류기술포럼이 제시한 2026년 물류산업의 청사진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과 미래물류기술포럼은 11월 1일 다가올 2026년 물류산업의 기술 혁신과 시장 변화를 심도 있게 전망하는 신간 '물류트렌드 2026-지능형 물류'를 출간했다. 지난 2022년부터 매년 발간되어 온 이 시리즈는 올해로 5년째를 맞이하며 국내 물류산업의 나침반 역할을 해오고 있다.

신간에는 KAIST, 인하대, 쿠팡, LG CNS, LX Pantos, 한화오션, HD현대 등 학계와 산업계를 아우르는 최고 전문가 16인이 필진으로 참여해 물류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단순 자동화를 넘어 지능형 자율화의 시대로
책이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지능형 물류'로의 대전환이다. 책은 2026년 물류산업이 AI와 자동화 기술의 융합을 통해 근본적인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기존의 수동적인 자동화를 넘어선 '에이전틱 AI(Agentic AI)'의 등장이다.

1부 기술혁신 챕터에서 KAIST 박진규 교수(오믈렛 대표)는 '에이전틱 AI, 물류의 판을 바꾼다'라는 글을 통해 AI의 진화를 설명한다. 에이전틱 AI는 단순히 인간이 입력한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환경을 인식하며,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적인 존재다. 

박 교수는 책을 통해 "물류센터에서 에이전틱 AI는 수요 예측, 재고 관리, 피킹 경로 최적화, 배송 스케줄링까지 전 과정을 자율적으로 관리한다"며 "이는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지능형 자율화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26년 현재, 국내 주요 물류기업들은 이러한 에이전틱 AI 도입을 통해 운영 효율을 40% 이상 향상시켰으며, 인간 관리자는 예외 상황 처리와 전략적 의사결정에 집중하는 등 업무의 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로봇 기술의 발전 또한 눈부시다. LG CNS 이준호 상무는 '물류센터에 등장한 휴머노이드 로봇들'을 통해 피지컬 AI(Physical AI)가 탑재된 로봇과 인간의 협업 모델을 제시한다. 과거 격리된 공간에서 단순 반복 작업만을 수행하던 로봇들이 이제는 인간과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며 복잡한 업무를 수행한다.

KAIST 공경철 교수와 김승환 연구원은 '자동화의 한계를 넘어 인간증강의 시대'에서 웨어러블 로봇의 효용성을 분석했다. 책에 따르면 웨어러블 로봇은 물류 현장 작업자의 신체 부담을 약 30% 감소시키며, 노동 집약적이었던 물류 현장을 '인간증강'의 새로운 무대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AGV(무인운반차), AMR(자율이동로봇), 자율주행 트럭, 드론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물류의 전 과정을 하나의 지능형 흐름으로 자동화하는 모습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1시간 배송의 일상화와 예측적 배송의 실현
기술의 발전은 시장의 변화로 직결된다. 그리고 2부 시장변화 챕터에서는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류 서비스의 혁신을 다룬다. 도심형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MFC)의 확산으로 인해 '1시간 배송'은 이제 특별한 서비스가 아닌 일상이 되었다. 더 나아가 빅데이터와 AI가 소비자가 주문하기도 전에 상품을 미리 인근 물류 거점에 배치하는 '예측적 배송'이 실현되고 있다.

쿠팡 고기덕 상무는 '초고속 물류 혁명, 세상을 바꾼다' 챕터에서 이러한 현장의 생생한 변화를 전한다. 그는 물리적 네트워크와 데이터 기술의 결합이 어떻게 배송 시간을 단축시키고 고객 경험을 혁신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비욘드엑스 김철민 대표 또한 '라스트마일 빅뱅, 플랫폼은 어떻게 우리 동네를 바꾸었나'를 통해 라스트마일 물류의 혁신이 우리 주거 환경과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조명했다. 이는 물류가 단순한 산업 영역을 넘어 사회적 인프라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인하대학교 민정웅 교수는 'AI가 진화시키는 공급망 관리'를 통해 기업 관점에서의 변화를 짚었다. AI 기반의 공급망 최적화 전략은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글로벌 시장 환경에서 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되었다.

중소 운송업체의 구원투수, 공급망 금융(SCF)
이번 신간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3부 글로벌 이슈에서 다루는 '공급망 금융(SCF, Supply Chain Finance)'이다. 이는 물류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중소 운송업체의 자금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이마고웍스 이승엽 사업전략 담당은 '공급망 금융의 게임체인저' 챕터에서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SCF의 효용을 입증한다. 책에 따르면 국내 운송업체의 99.9%는 중소기업이며, 이들이 운송 대금을 회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67일에 달한다. 두 달 넘게 현금이 묶이는 이러한 구조는 영세한 운송업체들에게 치명적인 경영 위협 요인이 되어 왔다.

그러나 SCF 모델이 도입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SCF는 화주 기업의 우수한 신용등급을 활용해 금융기관이 운송업체에게 대금을 선지급하는 구조다. 책은 "운송 서비스 완료 후 3일 내에 금융기관이 운송업체에게 대금의 97%를 먼저 지급하고, 60일 후 화주 기업이 금융기관에 원금을 상환하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가장 큰 혜택은 금융 비용의 절감이다. 기존에 운송업체들이 급전을 융통하기 위해 사용하던 고금리 대출(연평균 8.7%) 대신, SCF를 이용하면 연 3.5% 수준의 합리적인 비용으로 즉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2025년 기준, 국내 주요 물류기업 15개사가 이미 이 프로그램을 도입했으며, 약 8,000여 개의 중소 운송업체가 혜택을 받고 있다. 이는 물류와 금융의 결합이 산업 생태계의 건전성을 어떻게 강화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LX Pantos 어재혁 부사장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물류 대응전략'에서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공급망 다변화가 갖는 중요성을 역설하며, 한화오션 최중효 책임연구원은 '조선업계의 기회와 도전'을 통해 친환경 선박 기술과 시장 전망을 다뤘다.

지속가능한 미래와 지능형 상생 생태계
마지막 4부 지속가능성 챕터에서는 환경과 기술의 조화를 모색한다. HD현대 아비커스 임도형 대표는 '바다 위의 자율주행 혁명'을 통해 해상 자율운항 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한국항공대학교 이헌수 명예교수는 '하늘을 친환경으로 물들이다'에서 드론과 UAM(도심항공교통)을 활용한 친환경 항공물류의 비전을 제시했다. (주)피트인 김세권 대표이사는 '5분 충전이 바꾸는 배송 생태계'에서 전기차 초고속 충전 기술이 물류 배송의 효율성을 어떻게 높이는지 분석했다.

이 모든 논의를 관통하는 결론은 결국 '상생'이다. 이 책은 기술 발전의 최종 목표가 '지능형 상생 생태계' 구축에 있음을 강조한다. AI와 자동화 기술, 그리고 플랫폼의 혜택이 대기업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플랫폼이 통합되고 데이터가 공유됨으로써 중소 물류기업까지 첨단 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공급망 금융을 통해 재무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미래. 이것이 책이 그리는 2026년의 진정한 물류 혁명이다.

사진=비욘드엑스

조정희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은 펴낸글을 통해 "청색경제 시대, 바다가 여는 물류 혁명"을 언급하며 해양물류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김성진 미래물류기술포럼 의장 역시 "연결에서 융합으로, 물류의 진화가 시작된다"며 물류산업이 단순한 연결을 넘어 융합을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의 단계로 진입했음을 선언했다.

한편 책은 총 386쪽 분량으로 비욘드엑스에서 출간되었으며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날 수 있다. 2026년을 목전에 둔 지금, 물류의 거대한 파도에 올라타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