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 직장인 설문조사…연금 고갈 공포가 밥그릇 싸움 잠재운다?

2025-11-19     최진홍 기자

'아버지 세대의 은퇴 연기는 곧 아들 세대의 취업난'이라는 고용 시장의 오랜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청년 취업난 속에서도 2030 세대가 기성세대의 정년 연장을 지지하는 기현상이 포착됐다. 국민연금 고갈 우려와 노후 빈곤에 대한 공포가 세대 간의 밥그릇 싸움마저 잠재우고 생존을 위한 암묵적 연대를 형성하게 만든 것으로 풀이된다.

비즈니스 네트워크 서비스 리멤버를 운영하는 리멤버앤컴퍼니는 직장인 103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년 연장 인식 조사 결과를 11월 19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는 통념을 뒤집었다. 직장인 4명 중 3명에 달하는 74%가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현행 유지(12.9%)나 정년 폐지(13.1%) 의견을 압도하는 수치다. 정년 연장 논의가 나올 때마다 세대 갈등의 뇌관으로 작용했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청년 세대의 태도 변화다. 통상 정년 연장의 수혜자인 50대(77.9%)와 60대(80.8%)의 찬성률이 높은 것은 예견된 결과지만 20대(67.9%)와 30대(70.4%)에서도 70%에 육박하는 찬성률이 나왔다. 청년들이 정년 연장을 더 이상 기성세대의 욕심이 아닌 자신의 미래 생존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인식 변화의 기저에는 경제적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 전 세대를 통틀어 정년 연장을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후 생활 안정(39.0%)과 국민연금 수급까지의 소득 공백(17.8%) 해결이었다. 정년은 60세인데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은 점차 65세로 늦춰지면서 발생하는 '소득 크레바스' 구간에 대한 공포가 2030 세대에게까지 전이된 셈이다. 다만 은퇴를 목전에 둔 60대 이상은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 활용(29.7%)을 1순위로 꼽아 경제적 이유 못지않게 사회적 기여 욕구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적인 정년 연령으로는 만 63~65세가 60.2%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현재의 60세 정년 시스템이 인구 구조 변화와 수명 연장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총론에는 합의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세대 간 해법은 엇갈렸다. 정년 연장의 선결 과제를 묻는 질문에 20대는 성과와 직무 중심의 임금 체계 개편(28.6%)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월급을 많이 주는 연공서열제를 타파하고 일한 만큼 보상받는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요구다. 반면 관리자급인 40대(27.2%)와 50대(27.4%)는 고령 인력의 생산성 유지를 위한 재교육을 1순위로 꼽으며 조직 전체의 효율성 저하를 우려하는 현실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주대웅 리멤버 리서치사업실장은 “이번 조사를 통해 정년 연장 논의의 초점이 세대 갈등이 아니라 기존의 인사·고용 시스템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개편할 것인가 하는 논의가 이뤄져야 함을 명확히 보여줬다”면서 “리멤버 리서치는 앞으로도 500만 직장인 프로필에 기반한 독보적인 조사 역량을 바탕으로 사회적 통념 이면에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정확하고 심도 있게 전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