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만이 하는 것, CEO 밥 아이거의 선택을 다시 본다 [북앤북]
디즈니는 대단찮은 영화만 내놓고 있었다. 2006년 <토이 스토리>의 픽사를 인수했을 때도, 기자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힘을 잃었다는 방증으로 해석했다. 2008년 9월, 디즈니 스튜디오 회장 딕 쿡은 코닥 극장에서 전세계 취재진들을 대상으로 <라이온 킹> 등을 3D로 리메이크하겠다고 야심차게 발표했다. 현장에선 ‘적당한 비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쿡이 2009년 9월 18일,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디즈니 CEO 밥 아이거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디즈니가 벌인 일은 적당한 게 없었다. ‘터무니없는 일’ 뿐이었다. 2009년 12월 31일, <아이언맨> 시리즈의 모회사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다. 2012년에는 <스타워즈>의 루카스필름을, 2019년에는 <아바타>의 이십세기폭스를 인수했다. 2005년 홍콩 디즈니랜드를 개장해놓고 11년만인 2016년에는 상하이 디즈니 리조트를 개장했다.
디즈니는 인피니티 스톤을 전부 모은 타노스가 되었다. 미키 마우스가 아이언맨·스타워즈·아바타·판다와 동시에 손을 잡는 풍경은 창조주 월트 디즈니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모든 건 2005년 6대 CEO에 취임한 밥 아이거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디즈니는 큰 위기에 처해있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초대형 인수합병들이었다. 이후 디즈니는 역대 최고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 전방위적으로 우리에게 가까워졌다. <겨울왕국>과 <어벤져스>는 시대의 상징이다.
2019년 아이언맨이 죽고,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다. 2020년 2월 아이거가 사임하고, 디즈니는 부침이 시작됐다. 2022년, 그는 8대 CEO로 다시 선임됐다.
그의 공과가 재평가되고 있는 지금, 그의 자서전을 읽을 이유가 있다. 2020년 출간 당시에는 성공의 전개만 보였지만, 지금은 판단의 균열까지 행간에서 드러난다.
그는 인수합병을 추진한 배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스티브 잡스, 아이크 펄머터, 조지 루카스 등 주요 인물과 진행된 협상 과정도 공개된다. 특히 그가 소개한 디즈니+ 구축 과정, Hulu 전략, 스트리밍 경쟁 환경 분석 등 장기 전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도 유용하다.
그는 한결같이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비즈니스에 몸담고 있다면, 그것을 최고로 위대하게 만들어라.”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창작에 관한 프로세스 관리는, 먼저 그것이 과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계산기만으론 위대한 스토리를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그의 임기와 별개로 그의 시대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홍콩 ‘디즈니+ 오리지널 프리뷰 2025’에서 에릭 슈라이어 디즈니 텔레비전 스튜디오 및 전략 부문 사장도 “제작은 제조업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이거의 철학이 디즈니 내에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