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기술만 바라본 외길 인...회생, 퀄컴 [스냅드래곤 X 딥다이브 2025]

모바일 파워를 PC로

2025-11-19     최진홍 기자

"퀄컴은 지난 40년간 모뎀·통신 회사로 출발해 전 세계 모든 소비자가 무선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로 성장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기술 DNA를 PC 시장에 이식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주하려 합니다."

스냅드래곤 X 시리즈 아키텍처 딥다이브 2025 무대에 선 케다르 콘답 수석 부사장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리고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은 퀄컴은 이번 행사를 통해 자신들이 단순한 칩셋 공급사가 아닌, 강력한 기술 철학을 가진 '엔지니어링 기업'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퀄컴이 제시한 PC의 미래는 기존 x86 진영의 문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퀄컴이 가장 잘하는 모바일의 방식으로 PC 생태계 자체를 재정의하는 것이었다.

케다르 콘답 수석 부사장. 사진=최진홍 기자

이종 컴퓨팅 아키텍처... 기술의 오케스트라
퀄컴 기술력의 핵심은 '이종(Heterogeneous) 컴퓨팅'이다. 

범용 CPU 하나가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각 작업에 가장 최적화된 전문 코어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콘답 수석 부사장은 이를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에 비유했다.

그는 "일반 연산은 CPU(Oryon), 그래픽은 GPU(Adreno), AI는 NPU(Hexagon), 이미지 처리는 ISP(Spectra)가 맡는다"며 "모든 악기가 각자의 역할에 최적화되어 지휘자의 통제하에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설계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콘답 수석 부사장은 "모뎀에서 스마트폰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강력한 성능과 저전력 설계, 끊김 없는 연결성을 하나의 작은 칩(SoC)에 집약시키는 기술력은 퀄컴의 독보적인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스마트폰이라는 극도로 제한된 공간과 배터리 환경에서 생존하며 체득한 '생존 본능'이 PC라는 더 넓은 무대를 만나 만개한 셈이다.

오라이온. 사진=퀄컴

오라이온 CPU... 5GHz의 벽을 넘은 자체 기술
이번 행사에서 공개된 '오라이온(Oryon) CPU'는 퀄컴 엔지니어링의 정수다. 프라딥 카나파티필라 엔지니어링 부사장은 오라이온을 "퀄컴의 3세대 커스텀 CPU이자 완전히 처음부터 설계된(from the ground up) 결과물"이라고 소개했다.

기존 ARM 코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PC 환경에 맞춰 아키텍처를 바닥부터 다시 쌓아 올렸다. 그 결과 ARM 기반 프로세서로는 이례적으로 5GHz라는 꿈의 클럭 속도를 달성했다. 카나파티필라 부사장은 "6개의 정수 파이프가 5GHz 속도로 작동하면서 대부분의 연산을 단 1 사이클에 처리한다"며 "이것이 우리 CPU의 심장부"라고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프라임 코어와 퍼포먼스 코어만으로 구성된 18코어 구조는 '고효율 코어(E-core)' 없이도 전력 효율과 고성능을 동시에 잡겠다는 퀄컴만의 자신감을 보여준다. 이는 경쟁사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엔지니어링 기업의 태도다.

아드레노. 사진=퀄컴

아드레노 GPU... '슬라이스'로 쌓아 올린 성능
GPU 분야에서도 퀄컴의 독창성은 빛났다. 에릭 데머스 수석 부사장이 공개한 '슬라이스 아키텍처'는 GPU를 마치 레고 블록처럼 다루는 혁신적인 개념이다. 그는 "슬라이스는 미니 GPU와 같다. 프론트엔드부터 백엔드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슬라이스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구조는 설계의 유연성과 확장성을 극대화한다. 필요에 따라 슬라이스를 붙여 성능을 선형적으로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데머스 수석 부사장은 "우리 조직에서 만든 가장 크고 빠른 GPU"라며 "전작 대비 2.5배의 성능을 달성하면서도 와트당 성능 효율은 우리의 DNA대로 지켰다"고 강조했다.

특히 모바일 GPU의 한계를 넘어 PC 게임의 필수 요소인 다이렉트X 12 얼티밋(DX12 Ultimate) 기능을 하드웨어 레벨에서 완벽하게 지원하고, 안티 치트 문제까지 정면 돌파하려는 모습은 퀄컴이 PC 게이밍 시장을 얼마나 진지하게 대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스냅드래곤 가디언이 소개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혁신
기술 기업으로서 퀄컴의 진가는 사용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기술'에서 더욱 드러난다. 그 예로 파라그 아가시 수석 부사장이 소개한 '스냅드래곤 가디언(Snapdragon Guardian)'은 OS와 완전히 독립된 보안 시스템이다. PC가 꺼져 있거나 OS가 먹통이 되어도 원격으로 관리가 가능하다.

콘답 수석 부사장은 GPS를 예로 들며 "소비자들이 배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필요가 없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우버 기사가 복잡한 위성 삼각 측량 기술을 몰라도 앱만 켜면 위치가 잡히듯, 퀄컴은 PC 사용자에게 복잡한 설정 없이도 안전하고 끊김 없는 경험을 제공하려 한다.

와이파이 7 지원, 5G 모뎀 통합, 그리고 고속 충전 기술까지, 퀄컴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통신 및 모바일 기술 자산을 PC 플랫폼에 쏟아부었다.

한편 퀄컴은 18개월 만에 칩셋을 세 번이나 업데이트하는 '모바일 속도전'을 PC 시장에 도입하며 인텔과 AMD가 주도해온 '느린 시계'를 빠르게 돌려놓고 있다.

콘답 수석 부사장은 "우리가 어떻게 경쟁사를 압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어떻게' 그리고 '왜'가 중요하다"며 "많은 사람은 우리를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파라그 아가시 수석 부사장 역시 "타협 없는 엔지니어링을 자랑스러워한다"며 성능과 효율성 사이에서 줄타기하지 않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