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탈원전' 우려 잠재운 정부…AI·전력 폭증 속 "원전은 필수"
고리2호기 계속운전 승인…남은 9기도 심사 대기 중 국내 전력수요 연 10%대 증가…산업·AI 중심 수요 폭발 한·미, 농축·재처리 협력 지지 확인하며 원전 협력 확대
정부가 고리2호기 계속운전 승인을 결정하면서 ‘제2의 탈원전’ 우려를 사실상 일축했다. AI데이터센터 확대와 산업 전환으로 인한 전력 수요 급증이 영향을 미치며 기존 원전을 현실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한미 양국 공동 팩트시트를 통해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연료 재처리 논의를 확정하며 원전 지원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안전성평가·환경영향평가 등 기술 검증을 거쳐 2033년 4월까지 약 8년간 계속운전을 허가했다. 현재 진행 중인 설비개선을 완료한 뒤 규제기관 정기검사를 통해 안전성 확인을 거쳐 2026년 2월 재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리2호기는 1983년 8월 10일 상업운전을 시작한 국내 두 번째 원자력발전소로, 지난 2023년 4월 8일 운전허가기간이 종료돼 정지된 상태였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2호기의 계속운전을 위해 2022년 4월 계속운전 안전성 평가서를 제출하고 방사선환경영향 평가에 대한 주민의견수렴 결과를 포함해 걔속운전 운영변경허가를 신청한 이후 3년 7개월여 동안 규제기관이 엄격한 심사를 받았다.
고리2호기 원전 승인을 계기로 다른 원전 9기도 비슷한 기준에 따라 검토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수원은 고리2호기를 포함해 2030년 이전 운전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고리2,3,4호기·한빛1,2호기·한울1,2호기·월성2,3,4호기의 계속운전 안전성평가보고서를 원안위에 제출해 심사를 받고 있다.
전대욱 한수원 사장직무대행은 “계속운전은 AI, 데이터센터 등 미래 전력수요 증가에 대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2050 탄소중립 실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리2호기 적기 재가동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 같은 정책 판단의 배경에는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가 자리한다. 최근 국내 데이터센터 시장은 AI 고성능 컴퓨팅의 확산,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건설 등으로 연평균 11%대의 전력수요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대규모 클라우드·금융·통신 등 산업의 전력소비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IDC 조사에 따르면 2028년까지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는 계속해서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갈 전망이다. IT 인프라와 AI 서버 확충, GPU 중심 데이터센터 아키텍처 현대화까지 기업들의 전력 인프라 투자 역시 늘고 있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과 규제 강화로 인한 인허가 지연 등은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의 진입장벽을 높이고 전력 인프라의 불균형 문제도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22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으며 아일랜드는 이미 데이터센터가 전체 전력 소비에서 20% 이상을 차지해 신규 허가 제한과 국가 에너지정책 개편까지 진입한 상태다. 미국과 유럽도 AI와 고성능 컴퓨팅 수요 확대에 힘입어 전력망 확충, 친환경 발전 확대, 다목적 전력원 확보가 국가 우선순위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 같은 환경 변화와 맞물려 정부는 국제 협력을 통해 원전 활용 기조를 확대하고 있다.
이날 공개된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애서 미국은 한국의 평화적 목적의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절차를 지지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여기에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공식 승인했으며 연료 조달을 비롯해 조선·방위산업 차원의 실질적 협력 방안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AI, 반도체와 더불어 원전을 핵심 협력 분야로 명시하며 양국이 원자력을 에너지안보 및 첨단기술 경쟁력의 필수 요소임을 공식화했다는 평가다.
다만 이번 미국의 지지를 확인한 만큼 향후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를 위한 농축·재처리 필요성과 확보전략’ 무궁화포럼에선 설비 인프라와 연료 자립 체계 구축의 필요성이 언급됐다.
포럼을 주최한 유용욱 국민의힘 의원은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여전히 갖추지 못한 엄중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며 “한국은 세계 주요 12개 원전국 가운데 유일하게 해당 시설을 보유하지 못한 나라”라고 지적했다.
구체적 로드맵이 빠른 시일 내에 수립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전봉근 한국핵정책학회 회장은 “지금 왜 농축·재처리가 필요한지, 기존 방식으로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비확산 우려에 어떻게 답할지 담긴 국가 차원의 공식 입장과 로드맵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며 “민수용 농축과 군사 목적을 섞어 말하면 비확산 신뢰가 깨져 오히려 어떤 설비도 들여오지 못하게 된다”고 정책 대상별 분리 설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