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주사, 시술·수술 전엔 잠시 멈춰야 할까? [김진오의 처방전 없는 이야기]
최근 다이어트 주사를 맞는 환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진료실에서도 위고비, 삭센다, 마운자로를 맞고 있는 환자를 만나는 일이 낯설지 않다.
체중 감량 효과가 탁월해 ‘기적의 주사’로 불리지만, 수술이나 시술을 앞둔 환자에게는 이 약이 의외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약물들은 단순히 식욕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위의 운동을 늦춰 음식이 위에 더 오래 머무르게 만든다. 바로 이 점이 문제다. 위 안에 음식물이 남아 있으면, 진정이나 마취 중 그것이 역류해 기도로 들어갈 수 있다. 금식을 잘 지켜도 위가 비워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 수술 중 흡인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최근 발표된 여러 연구에서도 GLP-1 계열 약물을 맞은 환자들이 내시경이나 수술 중 위 내용물이 남아 있는 비율이 높았다고 보고된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2023년 미국마취과학회는 수술 전 약물 중단을 권고했다. 주 1회 맞는 제형은 수술 1주 전, 매일 맞는 제형은 수술 당일 중단하라는 구체적인 지침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 뒤, 여러 학회가 공동으로 검토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은 방향을 바꿨다. 대부분의 환자는 약을 계속 복용해도 안전하다는 것이다. 단, 위장 증상이 있거나 약을 막 늘리는 초기 단계, 혹은 당뇨로 위 운동이 느린 환자라면 약을 잠시 중단하거나 수술을 연기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처럼 ‘무조건 끊는다’에서 ‘환자별 조정’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약을 지속하거나 중단할지는 환자의 상태, 복용 기간, 증상 유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구토나 복부 팽만, 더부룩함 같은 증상이 있다면 위배출이 지연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엔 수술을 미루거나 진정 없이 시행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반대로 안정적으로 약을 맞고 있고 부작용이 없다면 대부분의 시술은 안전하게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수술 전 위장 초음파로 위 안에 음식물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해 위험을 평가하는 방법도 쓰인다. 미국과 유럽 일부 병원에서는 GLP-1 약물을 맞는 환자에게 이 검사를 표준 절차로 권장한다. 초음파로 위 내용물을 직접 확인하면 불필요한 수술 연기를 줄이고, 안전하게 마취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위고비, 삭센다, 마운자로는 모두 같은 계열이지만 특성이 조금씩 다르다.
위고비는 주 1회 맞는 제형으로 반감기가 길어 용량을 늘리는 단계나 고용량 구간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삭센다는 매일 맞는 제형이라 수술 당일 건너뛰는 정도로 충분한 경우가 많다. 마운자로는 두 가지 호르몬을 동시에 자극해 체중 감량 효과가 크지만, 그만큼 위 운동 억제도 강해 조심해야 한다.
이러한 약물의 작용은 미용 시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모발이식처럼 비교적 가벼운 시술도 진정이나 수면마취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위 내용물이 남아 있다면 수면 마취 시 흡인 위험은 여전히 존재한다. 환자가 약을 언제 맞았는지, 최근 위장 증상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필요 시 시술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안전하다. 시술 전에는 8시간 금식, 2시간 전까지 맑은 액체만 섭취하는 일반적인 원칙을 지키고, 위장 불편감이 있다면 하루 정도 저잔여식으로 식단을 조절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결국 중요한 건 약을 맞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나에게 지금 이 약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아는 일이다. 체중 감량 효과가 크다고 해서 무조건 유지하거나, 반대로 막연히 두려워서 중단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의사와 상의해 약물의 작용과 시술 계획을 함께 조율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다이어트 주사는 몸무게를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대사와 위장운동, 전신 컨디션에 영향을 미치는 치료제다. 수술 전 약을 잠시 멈출지, 그대로 유지할지는 의사와 대화로 결정할 문제다. 체중 감량과 안전한 수술, 두 가지를 모두 지키는 길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준비된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 김진오 뉴헤어모발성형 외과 원장은 진료와 연구를 병행한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매일 만나며, 국내외 학술지에 연구 논문을 꾸준히 발표한다. 진료실 밖에서는 35만 구독자의 유튜브 채널 ‘뉴헤어 프로젝트’, 블로그 ‘대머리블로그’, 저서 ‘참을 수 없는 모발의 가벼움’ · ‘모발학-Hairology’ 등으로 대중과 소통한다. 현재 성형외과의사회 공보이사 및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학술이사로 활동 중이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처방전 없는 이야기’에서는 진료실 안팎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의학·의료 정책·사람에 관한 생각을 담백하게 풀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