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현실 저버린 2035 NDC… 車∙반도체 업계 ‘마른 세수’
온실가스 53~61% 감축안 확정… 완성차 5사 비상 반도체 업계도 온실가스 간접배출 74.7%·플루오린 가스 고위험… 감축·산업 경쟁력 딜레마로
마지막 호소가 절규로 바뀌었다. 정부가 2035 NDC 목표에 쐐기를 박으며 산업계의 요구에 일절 선을 그었다. 특히 하이브리드가 무공해차로 인정받지 못한 자동차와 생산에 많은 전력이 들어가는 반도체에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11일 정부는 오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는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확정했다.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2035 NDC 한국 목표를 공식 발표하고 유엔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은 일부 고통이 따르더라도 지속가능한 성장, 또 글로벌 경제강국 도약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할, 정말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며 “정부는 재생에너지 전환, 온실가스 감축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국민과 기업의 어려움을 다방면에서 살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싱크홀 맞닥뜨린 자동차 업계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도 있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회피하면 더 큰 위기를 맞게 된다”며 “우리의 현실적 여건, 국민 부담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목표와 수단 사이에서 실용적 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정책 당위성을 피력했다.
그러나 처절한 외마디 외침은 산업계도 밀리지 않았다. 당장 자동차 업계는 유럽 수준의 전기차 생산에 직면하게 됐다. 현재 유럽은 2035년까지 전기차 100% 전환과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중단하는 목표를 세우고 있으나 2025년 현재 전기차 판매율이 15%에 불과한 탓에 스스로도 계획 완화에 들어갔다. 한국의 무공해차 등록 비중은 이보다 더 낮은 3.2%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9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3차 자동차 산업 전략 대화’가 끝난 뒤 엑스(X·옛 트위터)에 “우리는 탈탄소화와 기술 중립을 결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는 더 강하게 어필 중이다. 그들은 성명에서 “집행위가 여전히 우유부단하게 행동하고 있으며 전략적이지 못하다”면서 “경직된 규제는 경쟁력을 위협하며 업계 전체의 전환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정부는 환경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플랜 1.5를 비롯한 환경단체는 “지금이 2035 NDC를 65%로 설정해 수송 부문 또한 의욕적인 목표를 통해 국산 전기차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모멘텀”이라며 “주요 수출국인 EU와 미국의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중국의 가파른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고려하면 자동차모빌리티산업연합회(KAIA)가 언급한 근거들은 규제 완화가 아니라 오히려 규제 강화를 통해 헤쳐 나가야 할 난관들”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KAIA는 “2035 NDC에 대해 업계가 제기했던 급격한 전환에 따른 문제점이 명확히 해소되지 않은 채 목표가 설정돼 우려가 크다”며 “규제 일변도 정책이 아닌 과감한 수요 창출 정책으로 목표 달성을 추진하고, 급격한 산업 전환에 따른 부품 업계와 고용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KAIA는 지난 9월 ‘2035 NDC 수송 부문 무공해차 보급 목표 설정 관련 공동 건의문’을 통해 “840만대 목표는 2035년에 무공해차 90% 이상, 980만대 이상 목표는 2035년 이전에 내연기관차를 판매하면 안 되는 수준”이라며 “정부의 2035 NDC에 따른 무공해차 보급 시나리오는 내연기관 판매 금지 수준의 강력한 보급 목표”라고 강조했다.
불과 10년 남았다…차량 개발 방향 다 바뀔 수도
당장 완성차 5사, 그 중에서도 미래 개발 담당 연구소가 숨이 턱 막히게 됐다. 하이브리드조차 무공해차에서 빠져 있어 걱정은 더 커졌다. 유럽이 하이브리드를 무공해차로 포함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걱정이 더 많다. 현재 현대차그룹을 제외하면 르노 세닉, 무쏘 EV, 토레스 EVX 등이 국내 전기차 라인업의 전부다. 이 중 한국 자체 생산은 KGM의 무쏘 EV와 토레스 EVX뿐이다. 오는 19일 에스컬레이드 IQ가 한국 출시되긴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대세는 하이브리드인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에서도 자체 전기차 라인업도 캐스퍼 일렉트릭과 아이오닉 시리즈(현대), EV 시리즈(기아), 제네시스 GV60, GV70, G80, 유니버스(현대차 버스)으로 한국 대표 차량인 아반떼, 그랜저, 싼타페, 스포티지와는 아직 거리가 있다. 차량 개발 방향이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 IR에 따르면 9월 기준 유럽에서 판매된 현대차 전기차들은 ▲아이오닉 6 3018대 ▲코나 EV 2만1224대(HEV 2만8401대, 내연기관 1만2308대) ▲아이오닉 5 & 아이오닉 5N 1만3973대 등이다. 또 한국에서도 9월 기준 ▲G80 EV 910대(내연기관 3만257대) ▲코나 EV 3380대(HEV 6213대, 내연기관 1만444대) ▲GV70 EV 969대(내연기관 2만4482대) ▲GV60 EV 615대를 기록했다.
다만 아직까지 내연기관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전기차가 이 비율을 뒤집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내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향후 라인업의 전동화나 미래를 예단할 순 없지만 현대차그룹의 방향은 전동화 전환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유럽에서 현대, 기아, 제네시스 등 전기차가 많이 팔리고 있고 현대에서도 아이오닉과 제네시스 브랜드를 밀어주고 있는 만큼 이들의 비중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 측은 “전기차 부품 생산에도 현대모비스는 공을 들이고 있고 과학 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로부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지난 9월 승인받았다”며 “현대모비스는 2045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중간 단계로, 이번 검증을 통해 현대모비스는 사업장에서 배출하는 직간접 온실가스 배출량(Scope 1, 2)을 2030년까지 46% 감축한다는 중기 목표를 승인받았다”고 말했다.
KGM, 르노, 한국GM으로 대표되는 중견 3사의 고민도 만만치 않다. 차량 완성을 위해선 더 많은 인력, 더 많은 부품들이 들어가고 공급받아야 하는데 여력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KGM의 라인업은 총 14종이나 전기차는 무쏘 EV와 토레스 EVX 2종이다. 르노는 세닉이 유일하다. 르노코리아를 현재 이끌고 있는 그랑콜레오스는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오로라 2 파워트레인도 아직 미정이다. 한국GM은 오는 19일 미국에서 들여와 출시하기 시작하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가 한국에 내놓는 유일한 전기차가 될 예정이며 리릭이 향후 가능성이 있으나 아직 공식 출시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KGM 측은 “향후 2030년까지 7종의 차를 친환경으로 내놓을 예정이긴 하나 이는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차량”이라며 “아직 차량들의 정확한 파워트레인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생산에도 '온실가스'… 산업 경쟁력인가 탄소배출 감축인가
반도체 업계도 침이 마른다. 워낙 반도체 생산이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만큼 온실가스 배출에 신경을 안 쓸 수 없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DS)과 SK하이닉스, SK실트론, SK키파운드리 등은 국내 반도체 산업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김보람 부연구위원이 작성한 ‘한국 반도체 산업,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가?’ 보고서에선 삼성전자 DS 부문이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직접 및 간접 온실가스 배출량을 54%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 및 RE100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지만 온실가스 배출량 공개가 명확하지 않다고 작성했다.
또 SK하이닉스도 2030년까지 직접 및 간접 배출량을 2020년 수준으로 유지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지만 글로벌 기준이며, 국내 사업장의 배출량 감축 목표나 세부 감축 경로는 명시돼 있지 않다고 기술했다.
김 연구위원은 “특히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신규 대규모 제조시설의 가동으로 인해 배출량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해당 산업단지에 건설 예정인 LNG 발전소로 인해 감축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7월 작성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주요국 탄소중립 정책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도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서 간접 배출은 74.7%라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비이산화탄소(Non-CO2)인 플루오린 가스를 배출한다”며 “플루오린 가스는 그 자체가 온실가스로 이산화탄소보다 최대 2만 3900배 높은 온실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남 연구위원은 일본은 2030 NDC에서 플루오린 가스 배출량을 50% 감축할 예정이지만 PFCs와 SF6의 배출량 목표치가 2013년에 비해 높게 설정됐다며 미국도 2024년 정책 기준선(Policy Baseline)에서 2040년 배출량이 PFCs, SF6, NF3에서 2022년 대비 두 배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특별법에 기인한 반도체 생산 확대가 이유다.
남 연구위원은 “한국은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이 배출권 거래제에 참여하며 공정 배출이 실질적으로 배출량 산정에 포함되는 유일한 국가이자 UN 보고서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서의 감축 전략이 명시된 유일한 국가”라며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정책이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기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