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작품 감상법 매뉴얼 5단계 [김설화의 미술관 가는 길을 찾다]
불안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인간에게 불안은 피할 수 없는 원초적 감정입니다. 미래의 불확실성, 관계의 미묘함, 존재론적 고독 등 우리는 무한한 선택 앞에서 흔들리고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불안은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감정입니다. 예술가는 형체 없는 그 불안을 기어코 가시적인 언어로 만들어냅니다. 예술가는 불안이라는 원석을 깎고 다듬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보석으로 만들어냅니다. 때로는 폭발적인 형태로, 때로는 침묵하는 공백으로 말입니다.
다시 말해, 예술가들에게 불안은 창작의 강력한 연료가 됩니다. 그들은 불안을 자신만의 언어와 형식으로 승화시킵니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1893)는 개인의 공포를 보편적 인간의 감정으로 확장하며, 강렬한 색채와 왜곡된 형태로 내면의 격렬함을 시각화합니다. 프란시스 베이컨도 ‘절규하는 교황’(1953) 등 뒤틀리고 갇힌 인물화를 통해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을 해부하며, 형태의 붕괴 속에서 감정의 본질을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20세기 후반부터 현대 예술은 불안을 다루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불안의 재현에서 체험의 영역으로 확장했습니다.
브루스 나우만의 ‘복도 설치’(1969~1970)는 좁은 통로의 신체적 제약을 통해 관객에게 실시간의 불안을 불러옵니다. 아니시 카푸어의 ‘림보로의 하강’(1992) 은 검은 심연 속으로 시선을 끌어들이며, 공간 자체가 불안의 무게를 품습니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대한 거미 ‘마망’(1999)은 본능적인 망설임과 신체적 긴장을 일으킵니다.
이처럼 불안은 더 이상 작가만의 내면이 아닙니다. 관객의 몸속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발생하는 감각이 되며, 감상의 통로이자 깊은 사유의 매개가 됩니다.
# 불안을 감상하는 5단계
작품 앞에서 불편함이나 불안감을 느낀다면, 이는 예술이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명확한 신호입니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불안’ 감상상법도 필요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불안의 원인을 탐색할 것, 형태의 이유를 추적할 것, 답을 찾지 말고 질문을 품을 것, 불안을 감각으로 경험할 것, 살아 있음으로 느낄 것.
첫째, 그 불안의 원인을 찾아보세요. 그러다 보면 어떤 모양이나 색이나 공간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건 관객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둘째, 작가가 특정한 크기, 재료, 공간을 선택한 이유를 추적하세요. 그 이면에 숨겨진 불안의 흔적을 발견해 보십시오. 다른 무수한 가능성 속에서 오직 이 형태를 택한 이유, 그 안에 작가가 직면했던 불안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셋째, 명작은 명확한 답을 제시하기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불안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경청해야 합니다.
넷째,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면 우리의 감상은 능동적인 체험으로 승화됩니다.
다섯째, 작품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작품은 우리에게 나직이 속삭입니다. “두려워 말라, 흔들리는 그 순간에도 너는 분명히 살아 있다.”
※ 김설화 큐레이터는 서양화·미술경영을 전공했다. 갤러리 EOS 선임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국내외 아트페어 참여, 전시 기획과 작가 연구, 도슨트와 홍보 등 매일 현장에서 미술 작품과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