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파일럿 당장 대체 어려워…한국, 경쟁력 있다”[ER 인터뷰]
심병섭 KAI AI 개발팀장 인터뷰
2022년 개봉한 영화 ‘탑건: 매버릭’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항공 전력 무인화에 대한 의미심장한 화두가 등장한다. 지휘관 케인 제독이 주인공에게 말하는 장면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다가오는 미래에 인간 파일럿의 자리는 없다”
사실일까. 일단 영화 속 주인공이자 유능한 파일럿 매버릭은 이를 비웃듯 4세대 전투기로 적 5세대 전투기를 잡아낸다. 현실도 비슷하다. 여전히 유인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무인기를 데드식스의 타깃으로 밀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미군 최후의 유인기로 F-35가 꼽혔던 것과 달리 6세대 전투기 F-47조차 유인기 기반으로 개발 중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다만 케인 제독의 말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다. 무인기의 전장 침투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연일 서로를 향해 드론을 날려 보내고 있으며 각국에서 개발 중인 4.5세대 이상 전투기들도 기본적으로 유무인 복합체계 탑재를 전제한 후 창공을 비상하고 있다.
무인기의 완전한 유인기 대체까진 아니더라도, 전장에서의 무게감이 점차 커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유무인 복합체계의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관련 기술을 빠르게 선점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단순 원격 조종이 아닌 기체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AI 파일럿’ 원천기술 확보는 각국의 필수 과제다. 다행히 국내에서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AI 개발팀이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카일럿’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물 인지와 비행 등을 실증 중이다.
6일 KAI 서울사무소에서 카일럿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AI 개발팀을 직접 만나 개발 진척도와 향후 목표 등을 들어봤다.
고속 무인기 올라탄 카일럿, 더 정교해진다
심병섭 KAI AI 개발팀장은 카일럿을 “조종사의 지속적 통제 없이 자율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고 정의했다.
단순히 파일럿이 탑승하지 않는다는 개념이 아니다. ▲표적과 상황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 ‘인지지능’과 ▲비행을 담당하는 ‘비행지능’ ▲무인기 및 유인기 편대와 협력 작전을 펼치도록 하는 ‘협업지능’ ▲각종 전투를 수행하는 ‘임무지능’까지 네 가지 지능이 모두 합쳐져야만 카일럿이 완성된다.
심 팀장은 “유무인 복합체계를 보면, 탑승 기체를 조종하기에도 바쁜 유인기 파일럿이 무인기까지 통제하려면 임무 부담이 상당하다. 무인기가 스스로 정보 분석과 의사결정 지원, 일정 수준 자율임무 수행까지 가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AI 파일럿이 도입된다고 해서 AI가 인간 파일럿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먼 미래의 일”이라면서도 “당장은 조종사의 임무 범위를 넓히고 업무 부하를 경감하는 역할이 우선”이라고 첨언했다.
향후 카일럿의 활약이 가장 기대되는 분야는 KAI가 개발 중인 차세대 공중전투체계(NACS)다. KF-21을 주축으로 다목적 무인기(AAP)와 무인전투기(UCAV)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임무를 수행한다.
카일럿이 탑재된 AAP는 전장에서 KF-21의 작전 한계를 비약적으로 넓혀줄 것으로 평가된다. 비단 KF-21과의 편대작전뿐 아닌, 지상 및 공중발사, 수송기와의 협력, 선제 정찰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AAP만으로 적기와 도그파이트(공중 근접전투)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개발되진 않았지만, 유사시 적기 경로 차단 등으로 아군 유인기에 효과적으로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등 활용 방안은 무궁무진하다.
KAI는 최근 열린 ADEX 2025에 AAP 실물을 최초로 공개하기도 했다. 카일럿을 주축으로 한 NACS 개발이 상당 부분 진척됐음을 의미한다.
심 팀장은 “올해까지 카일럿의 네 가지 요건 중 인지지능과 비행지능 위주 실증이 이어졌다”며 “특정 포인트를 지정해주면 무인기가 실제로 지점까지 날아가면서 장애물을 회피하는 기능, 고속 비행 중 적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를 자동 식별하고 모의 타격하는 기능까지 실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까지는 작은 상용 드론에 카일럿을 탑재해 실증했다면, 올해는 고속 무인기에 직접 탑재해 실증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아직 군이 직접 무기체계에 활용할 수는 없지만 발전 잠재력을 내포했음을 입증받았기 때문이다.
심 팀장은 “이제 실증 시작단계인 만큼 앞으로는 비행기 기체 업그레이드와 비행지능 업그레이드 등을 기대할 수 있다”며 “더 높은 고도에서의 비행과 좀 더 현실감 있는 장애물 회피 기동은 물론 전반적인 AI 담당 임무 고도화가 목표다. 2027년 말에서 2028년쯤 공군의 SUCA(소형 무인전투기)체계 개발에 탑재될 AI 파일럿을 카일럿으로 삼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로드맵”이라고 강조했다.
세계는 AI 파일럿 개발 속도전…“기술 협력으로 어려움 극복”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있는 카일럿이지만, 업계에서는 갈 길이 멀다는 말도 나온다. 한국을 둘러싼 주요 군사 강국들도 AI 파일럿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천조국’ 미국은 고도의 AI 성능을 갖춘 CCA(차세대 무인전투기)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2028년부터 전력화를 시도할 전망이다. 독보적으로 빠른 속도다.
일본은 미국과 정부간 협정을 통해 AI 파일럿과 무인기 기술을 동시에 개발 중이다. 스바루와 미쓰비시에서 AI 탑재 실증기를 제작 중이며, 방위장비청에서는 기술 획득을 위한 AI 에어컴뱃 챌린지를 4회 째 추진하고 있다.
항공방산업체 사브로 유명한 스웨덴도 올해 5월 4.5세대 전투기 ‘그리펜’에 시계외 교전 담당 AI를 탑재해 실증하기도 했다. 중국과 러시아 등 주요 군사 강국 역시 빠르게 AI 파일럿 전력화를 시도하리라고 예상된다. 반면 한국은 후발주자로서 아직 달성해야 할 과제가 여럿 남아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적극적인 투자와 명확한 로드맵을 바탕으로 선도국들을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 팀장은 “당장 미국을 쫓아가기는 어렵지만, 카일럿처럼 고속 무인기에 AI를 탑재해 실제 비행해본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기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KAI는 후발주자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외부와 적극적 기술 협력을 시도한다. 국내 국방 AI 관련 강소기업을 대상으로 지분 투자하는 한편 미국 ‘실드AI’와 소프트웨어 원천기술 사용 계약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3월에는 AI 기반 합성 데이터 개발업체 ‘젠젠에이아이’ 지분 9.87%를 획득했다. 생성형 AI 특화 기업으로, 실제 환경에서 수집하기 어려운 데이터를 고품질로 빠르게 생성하는 기술이 강점이다.
심 팀장은 “당장 최근 카일럿 실증에서도 지상의 이동식 발사대 모형을 식별하기 위해 젠젠에이아이의 합성 데이터를 이용했다. 실제 이동식 발사대 데이터가 거의 없는 문제를 덕분에 해결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KAI가 투자한 스타트업들은 모두 방위사업청이 선정한 방산 혁신기업에 다 포함되는 업체들로, 협업을 통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첨언했다.
미국 실드AI하고는 파일럿 개발 프로그램(HME) 사용 계약을 체결했다. HME는 무인항공기와 드론 임무 수행을 위한 자율성 구축, 평가, 검증 소프트웨어다. 특히 HME를 활용해 독자 개발중인 카일럿 개발을 검증할 수 있어,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기술을 고도화 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KAI는 지난달 개최된 ADEX에서 미국 크레이토스(KRATOS)와 유무인 복합체계 분야 상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크레이토스는 세계적 무인기 기술 선도 기업으로 유명하다. 유무인복합체계 분야 기술력, 사업 경쟁력 전반적 발전을 위한 협력이다.
KAI는 이처럼 다양한 협력을 통해 궁극적으론 AI 파일럿 원천기술의 국산화를 목표한다.
“정부 주도 인프라 확충·획득 기준 확보 필요해”
KAI는 현재 카일럿 개발을 미래 6대 과제 중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적극 투자 중이다. 당장의 수익 창출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론 국가 안보와 기업 경쟁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일선에서는 정부에서도 이런 기조에 발을 맞춰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가 주도로 AI 파일럿을 개발 중인 중국이나, 이미 압도적 기술 격차를 이룬 미국을 따라가기 위해선 범국가적 역량 투자가 필요하다는 시선이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인프라 확보다. AI를 개발하더라도 실증할 수 있는 장소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 팀장은 “미국은 네바다 사막에서 무인기를 편하게 실증한다. 한국 역시 무기체계 AI를 빠르게 개발하기 위해선 미국처럼 개발하고 날리고를 굉장히 많이 반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재 KAI는 전라남도 고흥에서 카일럿 탑재 무인기를 실증하고 있다. 민간 업체가 고속 무인기를 띄워볼 수 있는 장소는 고흥밖에 없다.
문제는 현실이다. 항공우주연구원 등 국가기관이 협조를 잘해준 덕에 실증 일정이 지연되지는 않았으나, 주위에 민간 시설이 있어 안전 문제상 고난도 비행을 실증하기엔 한계가 따른다. 아직 AI 파일럿 탑재 무인기가 유인기만큼 안정성을 확보한 것이 아닌 만큼, 충분한 안전히 보장되는 부지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군 차원 AI 획득 계획도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한다. AI 기술이 먼저 개발되고, 정책이 뒤늦게 따라와서는 기술 실증과 실전 도입에 한계가 생긴다는 시선이다.
심 팀장은 “AI는 일반 소프트웨어와 달리 군납 이후에도 운용에 따라 더 똑똑해지거나 멍청해질 수 있다”며 “납품 이후 어떻게 운용할지 명시된 프로세스, AI의 추론 과정에 대한 신뢰성 평가 기준들이 아직은 없다”고 말했다. 해당 프로세스들이 뒷받침돼야 AI 파일럿 역시 무기체계로서의 검증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밖에도 KAI 차원의 AI 파일럿 개발 투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정부 과제화와 예산 지원 확대 필요성도 언급됐다.
유무인 복합체계는 미래 수십년 전장의 트렌드가 될 전망이다. 현재 KAI는 2030년 완전 자율화를 목표로 연일 카일럿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025억원 상당 대규모 투자 계획도 세웠다. 핵심은 일선에서 실증에 힘쓰는 AI 개발팀이다. 이들의 분투가 조명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