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판매 의혹' 해외부동산펀드에 정밀 메스…금감원, 릴레이 검사 나서나
900억원대 투자자금을 모집해 전액 손실로 처리된 '벨기에펀드' 사태를 계기로 금융감독원이 판매사들에 대한 검사에 속도를 높이는 분위기다.
불완전판매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이찬진 금감원장이 취임 후 내세운 '소비자 보호 강화' 기조가 첫 시험대에 올랐다는 시각이다.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제재로 판매사들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금융권에는 해외부동산 펀드 후폭풍 가능성에 긴장감이 감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10월 중순부터 한국투자증권, KB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벨기에펀드 판매 3개사를 상대로 현장검사에 착수했다.
한국투자증권이 589억원으로 최대 판매사이며, 국민은행은 200억원, 우리은행은 120억원 규모를 판매했다.
금감원 측은 "투자자 민원이 잇따르고 사회적 논란이 커져 현장조사를 시작했다"며 "판매 과정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집중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펀드는 2019년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 설정한 상품으로, 벨기에 정부기관이 장기 임차한 오피스 빌딩 임차권에 투자하는 구조였다.
'임대율 100%', '정부기관 임차로 안정적인 수익' 등을 내세워 투자자를 모집했지만, 금리 급등과 유럽 부동산 경기 악화로 매각이 실패하며 전액 손실로 처리됐다.
피해자들은 판매사들이 "절대 손실이 날 리 없다"며 원금 보장을 암시했다고 주장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위험 고지를 소홀히 했거나 원금 보장을 암시했다면 배상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은 현재 자율배상 절차를 진행 중이며, 피해자에게 20~50% 수준의 배상률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금감원 조사를 통해 불완전판매가 공식 확인될 경우 배상 비율 확대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감독당국이 소비자 보호 강화 의지를 천명한 만큼, 고강도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만약 중대한 위법 사실이 확인되면 판매사가 제시한 배상률보다 높은 수준의 배상이 결정될 가능성도 있다.
상품 자체의 구조적 결함으로 인한 '계약 취소'에 해당하는 전액 배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배상률이 크게 오를 뿐 아니라 중징계 처분까지 나올 수 있다는 시각도 상당하다.
벨기에 펀드는 공시가 투명한 공모형 구조로 설계돼 있어, 금감원은 '상품 결함'보다는 '불완전판매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불완전판매에 따른 배상률은 금감원이 제시해온 테이블에 따르면 최대 80% 수준이다. 불완전판매는 기관경고 이상 중징계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이번 조사는 이찬진 금감원장이 직접 챙기는 첫 대형 소비자 피해 사례다. 이 원장은 최근 금융투자업계 CEO 간담회에서 "직원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가족에게 권하지 못할 상품은 팔지 말라"며 "투자자가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설명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금감원은 세 판매사를 상대로 상품 구조의 사전 검증 절차, 고객 대상 설명의무 이행 여부, 내부통제 보고 체계 등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 특히 은행권이 복잡한 구조 상품을 판매한 만큼, 상품심사위원회의 승인 절차가 주요 쟁점이다.
금감원은 소비자 보호를 조직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소비자보호 총괄 전담조직 신설과 함께 고위험 상품, 보험, 핀테크 영역별 민원 대응 체계를 강화 중이다. 이 원장이 직접 민원을 듣는 '경영진 민원 DAY'도 운영되고 있다.
금감원은 불완전판매 실태를 정기 점검하는 시스템을 확대하고, 분쟁조정위원회의 배상 기준 현실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이 원장은 국정감사에서 "금감원의 모든 기능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중심으로 작동하도록 조직을 재설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업계는 신중한 입장이다.
판매사 측에서는 "아직 불완전판매로 단정하기에는 시기상조일 뿐 아니라 손실은 현지 운용 문제 등 구조적 요인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투자상품은 원칙적으로 투자자의 책임 아래 운용된다는 점에서 개별 녹취나 설명 자료를 통해 불완전판매가 확인된 이후에 배상이 가능하다는 시각도 있다.
올해 6월 피해자 대책모임은 한국투자증권 본사와 금감원 앞에서 집단 시위를 열고 "판매처로부터 설명서도 받지 못했고 상품 구조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VIP 고객만 가입할 수 있는 특판이라고 연락이 왔다"며 "직접 와서 사인만 하면 된다고 했고 후순위 구조는 설명조차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임차권 확보된 국가기관 건물이라 세계 3차 대전만 안 나면 안전하다는 말을 믿었다"라고 호소하는 투자자들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손실액의 30~45% 보상 제안을 받은 사례가 있지만, 증빙자료가 없는 투자자들은 보상 대상에서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정보 비대칭과 불완전판매, 구조적 불투명성이 복합된 금융소비자 보호 실패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감독당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편면적 구속력' 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소비자가 금감원 분쟁조정안을 수락하면 금융사가 거부해도 재판상 화해 효력이 발생하는 제도로,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위한 장치다.
다만, 벨기에펀드 시태가 한국투자증권의 종합투자계좌(IMA) 지정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인가와 달리 지정 절차에는 대주주 적격성 요건이 적용되지 않아 제재 이력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비자보호를 강조하는 이 원장의 목소리가 점점 강경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금융권의 긴장감 역시 고조되고 있다.
최근 이 원장은 "벨기에펀드 불완전판매 보완조사를 진행 중이며 조만간 결과를 내겠다"며 "형식적인 심사 관행을 개선하고 KPI 체계를 전면 재설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가족에게 팔 수 없는 상품이라면 내놓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해 금감원이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투자신탁 9-2호’에 대해 불완전판매 혐의 없음 결론을 내린 이후, 이번 벨기에펀드는 사모펀드 사태 이후 감독당국의 첫 강도 높은 현장조사로 주목된다.
청산이 예정된 독일 트리아논 펀드(이지스자산운용) 등에서도 손실이 현실화되면 추가 검사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액 손실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소비자 신뢰가 흔들리는 가운데, 이번 조사가 금융상품 판매 관행을 바로잡는 분수령이 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