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시즌 개막…생리의학상, '말초 면역 관용' 규명 3인 수상

트럼프의 평화상 도전 AI·양자컴퓨팅·문학계 이변 가능성에도 시선 집중

2025-10-07     김호성 기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사진=연합뉴스.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상 시즌이 올해도 돌아왔다. 스웨덴 노벨위원회는 6일(현지시간)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7일 물리학상, 8일 화학상, 9일 문학상, 10일 평화상, 13일 경제학상 수상자를 잇따라 발표한다.

스웨덴 과학자 알프레드 노벨이 제정한 이 상은 인류의 발전에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된다.

특히 올해 노벨상 시상은 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인류의 건강과 환경, 기술 발전에 기여한 업적이 중점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올해는 트럼프 행정부의 복귀 이후 처음 열리는 시상이라는 점에서, '트럼피즘'이 재부상한 정치적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서 과학기술이 제시하는 시대적 방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 생리의학상, '면역의 브레이크' 밝힌 3인 공동 수상

올해 첫 주인공은 인체 면역계의 균형 메커니즘을 규명한 과학자들이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위원회는 '말초 면역 관용'의 원리를 밝힌 공로로 일본의 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 석좌교수, 미국의 메리 브런코, 프레드 람스델 3인을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

위원회는 "이들의 발견은 인체가 스스로의 조직을 공격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핵심 기전을 규명했다"며 "면역학의 근본 원리를 재정립한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먼저, 사카구치 교수는 1995년에 기존 면역학의 상식을 뒤흔드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과학계는 면역세포가 오직 '공격'만 담당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기능을 지닌 특별한 T세포 집단이 존재함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그가 발견한 이 세포가 바로 '조절 T세포'(regulatory T cell·Treg)다.

이 조절 T세포는 면역계에서 CD25 단백질을 발현해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이라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면역 관용이란 몸의 면역체계가 자기 세포를 공격하지 않도록 조절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면역 반응이 과열될 때 이를 식혀주는 제동장치인 셈이다.

이 덕분에 우리는 외부 침입자만 공격하고, 자기 몸은 지킬 수 있다.

이후 브런코와 람스델은 2001년 특정 생쥐 품종이 자가면역질환에 취약한 이유를 연구하다가 'Foxp3'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 유전자의 인간형 변이가 자가면역질환인 'IPEX 증후군' 등 주요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을 규명했다.

이를 접한 사카구치는 Foxp3 유전자가 자신이 1995년 발견한 자가면역질환 방지 세포의 발달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입증해냈다. 

의료계에서는 이들의 연구에 대해 신체의 면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경우 스스로를 공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절 T 세포'가 신체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면역 연구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레 캄페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이들의 발견은 면역체계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왜 우리 모두가 심각한 자가면역질환을 앓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이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들 수상자들은 상금 11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6억4000만원)를 균등하게 나눠 받는다.

◆ 트럼프의 '평화상' 도전…ICC·나토 등 후보군 주목

올해 노벨상 시상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는 평화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수상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다른 나라가 받으면 우리나라에 큰 모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시선은 냉담하다. 그가 "전쟁을 멈췄다"고 주장하지만 실질적 근거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올해 각계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평화상 후보자는 총 338명으로 집계됐다. 후보 명단은 50년간 비공개지만, 일부는 추천자를 통해 전해진다.

국제형사재판소(ICC),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홍콩 인권운동가 저우항퉁, 캐나다 인권변호사 어윈 코틀러 등이 후보군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의회 외교위원장 올렉산드르 메레즈코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노벨평화상을 받고 싶다면 가자지구 전쟁부터 끝내라"고 일침을 가한 바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의 수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지만, 인권과 자유를 대표하는 인물이나 단체가 상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AI·양자컴퓨팅·그린에너지…신산업 이끌 핵심 연구 '주목'

물리학상과 화학상 분야에서는 AI, 양자컴퓨팅, 친환경 배터리 기술 등 신산업을 이끌 핵심 연구들이 후보로 오르며 과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웨이블릿 이론을 발전시킨 잉그리드 도베시스, 양자컴퓨팅 모델을 제안한 다비드 디빈센조와 다니엘 로스, 단일 원자 촉매를 개발한 중국의 장타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연구는 인공지능과 에너지 전환 등 현실 산업에 응용될 가능성이 높아, 기초과학이 산업 전환의 토대가 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문학상에 한국 작가 고은 거론

문학상은 여전히 '이변의 무대'다.

제럴드 머네인(호주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헝가리 소설가), 크리스티나 리베라 가르사(멕시코 소설가) 등과 함께 무라카미 하루키(일본 소설가), 미셸 우엘베크(프랑스 소설ㅇ가)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한국 작가로는 시인 고은이 이름을 올렸다.

영어권 문학 전문 사이트 '리터러리 허브'는 영국 베팅사이트 나이서 오즈(Nicer Odds)의 집계를 기반으로 수상자를 추측하면서도 "아무도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지난해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경우 배당률 33배로 '하위권' 확률에 머물렀다는 점을 상기했다.

노벨상의 대미를 장식하는 경제학상의 경우 기술 변화와 노동시장 분석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어터와 로런스 캐츠, 인종차별과 기업지배구조를 연구한 마리안 버트랜드, 투자 불확실성 연구로 알려진 니컬러스 블룸 등이 유력 후보로 꼽힌다. 이들은 모두 미국의 학자들이다.

한편 노벨상은 부문별로 시상 주체가 다르다.

생리의학상은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물리학·화학·경제학상은 스웨덴 왕립과학원, 문학상은 스웨덴 한림원이 각각 선정한다. 평화상의 경우 노벨의 유언에 따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시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