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IPO의 꿈, 리스크 털어낼까
금융당국과 연이은 마찰 속 드러난 리스크… 신뢰 회복이 관건
국내 2위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의 기업공개(IPO) 전선에 안개가 드리웠다. 실질적 대주주의 사법 리스크 해소라는 가장 큰 산을 넘으며 숙원 사업이던 IPO의 문을 여는 듯했지만 곧바로 금융당국과의 전면적인 갈등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 거래소와의 오더북 공유 논란으로 촉발된 금융정보분석원(FIU)의 현장 조사와 금융감독원장 주재 간담회에서의 ‘패싱’은 그 자체로 심상치 않다는 말이 나온다. 동시에 복잡하게 얽힌 지배구조의 불확실성과 과거부터 이어진 운영상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시장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빗썸 패싱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30일 취임 후 처음으로 가상자산 업계 대표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를 비롯해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10개 주요 가상자산사업자 최고경영자(CEO)가 총출동했다. 이 자리에서 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1거래소-1은행 규제 완화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같은 굵직한 현안들이 논의됐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빗썸 패싱이다. 국내 시장 점유율 30%에 육박하는 빗썸은 현장에 불참했다. 빗썸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거래소, 심지어 아직 서비스를 시작하지 않은 기업까지 초대된 상황에서 업계 2위 빗썸의 부재는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금융당국이 빗썸을 향해 보내는 명백한 ‘경고’의 메시지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사실 금융당국이 빗썸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6월 빗썸이 출시한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 ‘렌딩 플러스’가 기점이다. 담보 자산의 최대 4배까지 코인을 빌려 사실상 공매도가 가능하게 한 이 서비스에 대해 금감원은 초기부터 과도한 레버리지가 투자자 손실을 키울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다만 빗썸은 가이드라인이 나올 때까지 자제해달라는 요청에도 서비스를 밀어붙였다. 이에 금감원은 행정지도에도 신규 영업을 지속할 경우 현장 점검 등 제반 조치를 하겠다며 경고 수위를 높였으나 빗썸은 요지부동이었다. 대부분의 거래소가 관련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축소했지만 빗썸은 대여 비율을 4배에서 2배로 줄였을 뿐 영업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지난 6월 중순부터 한 달여간 약 27600명의 이용자가 1조5000억원을 대여했고 이 중 13%가 가격 변동으로 강제 청산을 당하며 막대한 피해를 봤다. 빗썸이 업계 자율규제 논의에서조차 배제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찬진 원장의 간담회 발언도 의미심장하다. 당장 이 원장은 “과도한 이벤트 고위험 상품 출시 등 단기 실적에만 몰두한 왜곡된 경쟁”과 “인적 오류나 관리 소홀 등에 따른 ‘먹통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빗썸의 렌딩 서비스와 지난달 초 발생한 100여분간의 서버 장애 사태를 정확히 겨냥한 발언이었다.
이런 가운데 결정타는 지난 10월 1일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날렸다.
FIU는 빗썸이 호주 가상자산거래소 ‘스텔라 익스체인지’와 오더북(호가창)을 공유하기 시작한 것을 문제 삼아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빗썸은 지난 9월 22일 테더(USDT) 마켓을 열며 부족한 유동성을 보완하기 위해 스텔라와 오더북을 공유한다고 밝혔지만 당국은 민감했다.
특정금융정보법은 해외 거래소와 오더북을 공유할 경우 자금세탁방지(AML) 고객확인(KYC) 의무를 엄격하게 이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빗썸의 절차 이행이 미흡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FIU는 현장 조사를 통해 스텔라 거래소의 인허가 서류 제출 적절성과 고객정보 확인 방법 등 위법성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안갯속 지배구조와 잠재된 리스크
금융당국과의 마찰은 빗썸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리스크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역시 미로처럼 얽힌 불투명한 지배구조다. 당장 빗썸의 소유 구조는 버킷스튜디오→인바이오젠→비덴트→빗썸홀딩스→빗썸코리아(빗썸)로 이어지는 복잡한 사슬 형태를 띤다. 이 구조의 핵심에는 빗썸홀딩스 지분 30%를 보유한 2대 주주 비덴트가 있고 그 정점에는 실소유주로 알려진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 이사회 의장이 있다.
최근 이 구조를 뒤흔들 중대 변수가 발생했다. 최상단 지배회사 격인 버킷스튜디오가 매물로 나온 것이다. 버킷스튜디오의 실소유주 의혹을 받는 강종현 씨의 횡령·배임 혐의로 회사가 상장 폐지 위기에 몰리자 매각이 결정됐다. 지난 9월 말 본입찰에 4곳이 참여했으며 매각 금액은 약 2000억원으로 거론된다.
문제는 누가 버킷스튜디오의 새 주인이 되느냐에 따라 빗썸의 운명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새 주인은 빗썸홀딩스 지분 30%에 대한 영향력을 고스란히 물려받게 된다. 당장 새 주인이 이정훈 전 의장의 우군이 될지 혹은 2018년 인수 시도 무산 이후 오랜 기간 법적 다툼을 벌여온 김병건 BK그룹 회장의 편에 설지, 아니면 독자적인 세력화를 시도할지에 따라 빗썸의 지배구조는 또다시 격랑에 휩싸일 수 있다.
IPO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이 필수적인데 역설적으로 IPO 추진 자체가 잠재된 경영권 분쟁을 재점화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과거의 법적 분쟁들이 남긴 상처도 여전한 리스크다. 지난 3월 13일 대법원은 이정훈 전 의장의 1100억원대 BXA 코인 사기 혐의에 대해 최종 무죄를 확정했다. IPO의 가장 큰 걸림돌이 제거된 순간이었지만 5년간의 법적 공방은 빗썸의 평판에 상처를 남겼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거래소 상장 권한을 이용한 불투명한 거래와 ‘스캠 코인’ 논란은 투자자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법적 무죄와 별개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또 다른 과제다.
2017년 발생한 3만1000여건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빗썸은 지난 1월 항소심에서 면소 판결을 받았지만 이는 유무죄를 따진 결과가 아니었다. 처벌 근거 법률 조항이 폐지됐다는 기술적 이유 때문이었다.
개인 PC에 고객 데이터를 저장하고 사고 수습 과정에서 피해자 전체 정보가 담긴 파일을 발송하는 등 운영상의 심각한 과실이 있었음에도 법적 책임을 완전히 피한 셈이다. 이는 잠재적 투자자들에게 빗썸의 내부통제와 보안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법적 리스크는 해소됐을지 몰라도 IPO 과정에서 ‘경영진 할인(management discount)’과 ‘평판 디스카운트’를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빗썸의 대응
빗썸의 지배구조 등과 관련된 문제는 예전보다 많이 투명해진 상태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것은 아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독과점 구조 자체를 정조준하며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
정부가 문제 삼는 핵심은 신규 사업자의 진입을 가로막는 ‘실명계좌’라는 거대한 장벽이다.
당장 은행들은 자금세탁방지 부담 등 높은 리스크 때문에 신규 계좌 발급에 극도로 소극적이었고 이는 사실상 기존 사업자들을 위한 ‘해자(moat)’ 역할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정부 조사는 이 견고한 진입 장벽을 허물고 불투명한 상장·폐지 기준을 손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만약 규제 변화로 신규 거래소의 시장 진입이 쉬워진다면 빗썸의 아성은 구조적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빗썸의 성공이 우월한 기술이나 서비스가 아닌 규제가 만들어준 편안한 과점 체제에 기인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빗썸보다는 업비트가 더 위험하다. 그러나 빗썸의 체급이 최근 빠르게 올라온 상태에서 마냥 안심하기 어렵다는 말도 나오는 중이다.
다만 잇따른 악재와 전방위적 압박 속에 빗썸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국과의 갈등을 촉발했던 렌딩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FIU의 현장 조사가 시작된 이후 빗썸은 가상자산 최대 대여 비율을 기존 최대 200%에서 85%로 대폭 축소했다.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이다. 이는 그동안 서비스 강행을 두고 갈렸던 경영진 내부 의견이 당국의 초강수에 결국 한쪽으로 정리됐음을 시사한다.
빗썸이 신뢰 회복에 나서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면 지금의 위기가 전화위복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금융당국과의 소통 채널을 복원하고 시장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투명한 지배구조와 강화된 내부통제 시스템을 증명한다면 더욱 의미있는 전략적 큰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