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 깊어지는 K철강, 출구 찾을까?
각 철강사별 강점 강화하며 미래 경쟁력 확보 총력 정부 차원 지원책 마련 시급
철강업계가 3분기 보릿고개를 앞뒀다. 미국이 철강 알루미늄 파생상품 품목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상향한 여파가 본격적으로 실적에 반영될 전망이다. 이미 대미 철강 수출은 1년 6개월 만에 최하 규모로 추락했다.
각자의 위기극복 전략이 중요해진 시기다. 철강사들은 저마다 강점을 살려 미래 대비에 나서고 있다.
신기술 개발부터 계열사 정리까지…다방면 활로 찾는 철강사들
포스코는 철강경쟁력 재건에 목표를 두고 있다. 글로벌 통상 환경 속에서 고부가가치제품 개발에 중점을 두겠다는 전략이다. 신규 제품 수요를 확보하고 판로를 개척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
대표적으로 포스코가 개발 중인 제철 신기술 수소환원제철이 있다. 통상 고로에서 쇳물을 생산할 때 석탄을 연소시킨다. 석탄이 타오르며 철광석 속 산소를 제거하고, 열기를 끌어올려 철광석을 녹이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
포스코는 이를 하이렉스로 명명한 수소환원제철 기술로 극복하겠다는 방침이다. 석탄을 수소로 대체해 전기를 사용하는 전기로에서 쇳물을 생산하는 제철 공법이다.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뿐더러, 향후 엄격해질 국제 철강 환경규제에 대응해 글로벌 판로를 개척하기 알맞은 고부가가치 기술로 평가받는다.
비단 하이렉스뿐만이 아니다. 차세대 철강 소재인 고망간강을 개발해 그룹사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포스코이앤씨의 광양 LNG 터미널 사업에도 도입시켰다. 자사의 부가가치가 높은 철강 제품을 그룹사 사업에 접목시키는 방향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공급망 확보와 상공정 투자도 이어나가고 있다. 아르헨티나 리튬 염호를 비롯해 남미와 호주 등지에 핵심 원자재 확보 창구를 마련했다. 포스코가 차세대 탄소저감 철강 원료로 점찍은 HBI(열간압축환원철) 역시 호주가 생산 거점으로 낙점됐다. 최근에는 인도 및 미국에 상공정 공동 투자도 있었다.
현대제철은 비주력 사업을 하나둘 매각하고 있다. 그룹사 현대차그룹 주력 사업과 연계된 핵심 사업에 집중하면서 경영 효율화를 이루겠다는 포석이다. 포항 1공장 중기사업부가 매각 물망에 올랐다. 대주KC그룹과 매각 협상 중이다. 현대IFC 역시 매각 논의 중이다. 지난 2020년 단조 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해 설립한 자회사로, 우리-베일리PE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동시에 국내 사업장 조정으로 생긴 여력을 미국 현지 투자에 힘쓸 전망이다. 포스코와 손잡고 루이지애나 제철소 설립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현대차가 북미 투자 확대 의지를 드러내면서다. 현지 자동차 강판 공급망을 담당하게 될 현대제철의 역할이 커졌다. 동시에 미국 역시 고율의 품목관세를 부과하며 ‘현지 투자’를 노골적으로 유도하는 상황이다. 미국 현지 거점 마련을 통해 그룹사 판로 확대와 관세 부담 완화를 동시에 노리겠다는 포석이다.
핵심은 전기로 기반 일관제철소 건립이다. 58억달러(약 8조1300억원)을 투자한다. 지난 6월 현지에 현대스틸 루이지애나 LLC를 설립하고 지난달 자본금 100만달러를 선납입했다. 향후 북미 판매 비중을 2030년 26%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동국제강그룹은 앞선 업체들과 다르게 해외 투자에는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연초 특별수출본부를 신설했으나, 아직은 해외 직접 투자 없이 추이를 관망 중이다. 대신 기존 사업 경쟁력 강화 등 내실 다지기에 힘쓰는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아주스틸 인수가 있다. 동국씨엠의 주력 제품인 컬러강판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서다.
동국제강그룹 주력 계열사인 동국제강의 경우 내수 매출 비중이 84%에 달한다. 제강 부문은 90%를 넘는다. 일반적인 시황에서라면 판로 유연성이 떨어지는 만큼 약점일 수 있으나, 글로벌 통상환경을 예측할 수 없는 현재에는 오히려 튼튼한 기초체력을 보유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23년말 인적분할 이후 꾸준히 실시하는 재무 효율화도 기초체력 다지기에 힘을 실어준다. 분할 당시 121.5%에 달했던 동국제강 부채비율은 상반기 기준 103.08%까지 내려왔다. 동시에 유보율도 높게 형성하고 있어, 유사시 자본 동원 능력이 우수함을 증명 중이다. 2분기 기준 동국제강 유보율은 469%에 달한다. 납입자본금의 4.69배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했음을 의미한다.
세아그룹은 항공·방산·친환경 에너지 시장 성장에 발맞춰 각 분야별 핵심 신소재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세아그룹 계열사 세아항공방산소재는 올해 2분기 영업이익 65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 82.1% 증가한 수치다. 마찬가지로 항공기용 첨단소재를 만드는 세아창원특수강 역시 2분기 영업이익 189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3.5% 성장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원전과 해상풍력 관련 구조물 사업이 눈에 띈다. 원전의 경우 사용후핵연료 운반·저장용기(캐스크) 시장에서 기술력을 입증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함께 제작 경험을 갖춘 유이한 국내 기업이다. 한수원에 KN-18 캐스크를 납품한 이력도 있다.
영국 현지 법인인 세아윈드는 지난 3월부터 해상풍력 모노파일 하부구조물 상업 생산을 시작했다. 연간 40만톤 규모 생산이 가능하며, 세계 해상풍력 시장의 25%를 점유한 영국에 자리잡은 만큼 꾸준한 성장이 기대된다. 이미 덴마크 오스테드, 스웨덴 전력회사 바텐폴과 각각 6000억원, 1조5000억원 규모의 모노파일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그룹 차원에서도 2021년 법인 설립 이후 총 11회의 유상증자와 4000억원 규모 투자를 단행하면서 기대를 걸고 있다.
업황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정부, 철강 재건 의지 보여야
3분기 철강업계를 둘러싼 상황은 어두운 편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반등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바라본다. 지난 3월 양회에서 철강 감산안을 발표한 중국 정부가 여전히 일관적으로 감산을 추진 중인 데다, 국내에서도 중국산 덤핑 품목에 대해 차례대로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반덤핑 관세가 부과 중인 후판 등 일부 품목의 국내 시황은 차츰 개선되고 있다.
정부가 철강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할 시기다. 미국의 품목관세에 대응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관계자는 “미국이 50% 규모 철강 관세를 5월부터 꾸준히 유지하고 있음에도 철강 산업 지원책 발표는 늦어지고 있어 아쉽다”며 “현재로서는 한국산업표준(KS) 인증 기준 상향, 상생 펀드 등 현실적 지원책은 못해도 추석 연휴 이후에나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에서 여야가 합심해 K-스틸법을 발의한 지 벌써 2개월이 흘렀음에도 여지껏 본회의 통과는커녕 상임의에 계류된 상황이다”고 비판했다. 이어 “철강 대기업들은 자체 투자 확대와 해외 판로 개척 등으로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으나, 정작 소부장을 담당하는 중소 수출기업들은 지원책이 하루 늦어질 때마다 막대한 부담을 떠안게 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에서 철강 지원을 약속하면서 산업용 전기요금을 매년 인상 중인 것도 모순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산업용 전기요금은 1킬로와트시(㎾h)당 185.5원 수준으로, 기존 대비 9.7% 인상됐다. 2022년 105.5원과 비교하면 75.8% 급증한 규모다. 정작 철강업계의 매출은 3년 사이 절반 이상 떨어지면서 부담이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1㎾h당 1원 오르면 업체의 연간 원가 부담은 100억~200억원 늘어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는 동국제강과 세아그룹 등 전기로를 주력으로 운영하는 업체일수록 체감 부담이 심해진다. 실제로 동국제강의 경우 지난 7월 22일부터 8월 15일까지 인천공장 내 압연 및 제강공장 생산을 중단하면서 ‘하반기 산업용 전기료 할증과 원료 가격 상승 등 원가 부담 가중’을 중단 이유로 꼽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