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코인원 압수수색, 지긋지긋한 옐로모바일의 망령
"수사에 성실히 임할 것"
검찰이 30일 코인원을 압수수색했다.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 소속 수사관들이 강제수사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2017년 발생한 270억원 규모의 자금 대여 사건이 원인이다. 금융감독원이 코인원 경영진을 대상으로 지배회사에 무담보로 거액을 빌려줘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업무상 배임 혐의로 이들을 고발했고, 검찰이 강제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한 이성현 대표이사의 주거지 압수수색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코인원은 즉각 입장문을 내고 검찰 수사의 배경을 설명했다. 코인원 관계자는 "본 사안은 올해 3월 금감원 종합검사에서 지적됐던 사안 중 하나로 2017년 옐로모바일 건 관련해 당사가 피해자로서 최종 승소한 내용"이라며 "종합검사 당시 금감원 측에 충분히 소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는 요청에 따라 남부지검에 의뢰돼 진행하고 있으며 당사는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인원이 언급한 '옐로모바일'은 한때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뒤흔들었던 거대 유니콘이자 악몽의 망령이다. 그리고 기술 기반의 혁신기업과 금융 공학으로 쌓아 올린 M&A 제국의 위험한 만남에서 이 모든 악몽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온다.
기술의 코인원과 M&A의 옐로모바일
2013년 이상혁 대표가 설립한 옐로모바일은 '벤처 연합'이라는 전례 없는 모델을 제시하며 한국 스타트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유망 벤처기업을 공격적으로 인수해 하나의 거대한 연합체를 구성하고 규모의 경제를 통해 모바일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비전은 시장을 열광시켰다.
옐로모바일은 핀테크 O2O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기업들을 집어삼켰고 2018년 말 기준 종속기업은 141개 기업가치는 한때 20조원까지 치솟으며 신화를 쓰는 듯했다.
문제는 리타워텍 악몽을 떠올리게 만드는 화려함 이면의 균열이다. 당장 옐로모바일의 성장은 본질적으로 피인수 기업의 매출을 기계적으로 합산해 외형을 부풀리는 재무적 기법에 의존했다. 내실을 다지기보다 외형을 키워 후속 투자를 유치하고 그 투자금으로 또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성장을 위한 성장은 필연적으로 막대한 현금 소진을 불렀고 옐로모바일은 항상 자금난에 시달렸다. 결국 내실 없는 성장에 대한 갈증은 현금 보유량이 풍부한 우량 기업을 먹잇감으로 삼는 약탈적 행태로 이어졌다.
한편 2014년 포항공대 출신의 화이트 해커 차명훈 대표가 단돈 300만원으로 설립한 코인원은 당시 블록체인 기술 및 코인 거래소라는 기술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국내 거래소 최초로 이더리움을 상장하는 등 좋은 성과를 내며 단숨에 최상위권 거래소로 부상했다. 2017년 코인원의 영업이익은 500억원에 육박했고 막대한 현금을 창출하는 우량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바로 이 순간 허덕이던 옐로모바일의 레이더에 코인원이 걸려들었다. 견실한 현금 흐름이 옐로모바일의 탐욕을 깨웠기 때문이다. 당시 더 큰 성장을 위해 외부 파트너를 찾던 차명훈 대표의 선의는 자금난에 허덕이던 옐로모바일에게 더할 나위 없이 맛있는 먹잇감이었다. 그렇게 전혀 다른 DNA를 가진 두 기업의 운명은 '데일리금융그룹(DFG)'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위험하게 얽혔다.
위기는 빨리 찾아왔다. 비극의 첫 단추는 차명훈 대표가 2015년에서 2017년 사이 코인원 지분 100%를 핀테크 기업 DFG에 매각하면서 끼워졌다. 기술 전문성을 가진 코인원이 DFG의 금융 네트워크와 결합하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었지만 이 구도는 2017년 8월 옐로모바일이 DFG를 인수하면서 송두리째 흔들렸다. 코인원은 옐로모바일의 손자회사라는 복잡한 지배구조에 편입됐다.
당시 부채비율 750% 2년 연속 감사의견 거절 등 심각한 재무 위기에 처했던 옐로모바일에게 DFG 인수는 사업적 시너지가 아닌 코인원의 막대한 유동 자산에 접근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옐로모바일의 의도는 곧바로 현실이 됐다. DFG를 인수한 지 불과 몇 달 뒤인 2017년 12월 옐로모바일은 손자회사인 코인원으로부터 약 270억원의 거액을 무담보로 대여했기 때문이다.
이 자금은 옐로모바일이 코스닥 상장사였던 아이지스시스템을 인수하는 데 흘러들어갔다.
당시 <이코노믹리뷰> 취재를 종합한 결과 해당 거래는 모든 면에서 비정상적이었다. 손자회사의 핵심 유동자산을 명확한 담보도 없이 재무상태가 부실한 모회사의 불확실한 M&A 자금으로 동원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옐로모바일은 아이지스시스템이 보유했던 450억원의 현금마저 불과 5개월 만에 소진시키며 회사를 유동성 위기에 빠뜨렸다.
코인원으로부터 빌려간 270억원은 결국 옐로모바일의 생존을 위한 '돌려막기'의 희생양일 뿐이다.
상처뿐인 승리
옐로모바일은 당초 2개월 단기 대여를 약속했지만 상환 기일이 지나도 돈을 갚지 않았다. 당연히 상환 능력 자체가 없는 상태였기에 채무 불이행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코인원에게 전가됐다. 500억원의 흑자를 낸 우량 기업이 하루아침에 법인세 50억원을 체납해 법인 통장이 가압류될 위기에 처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코인원은 2018년 옐로모바일을 상대로 대여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2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2020년 법원은 옐로모바일이 대여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판결하며 코인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 법적 승리는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이미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옐로모바일은 판결에도 불구하고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소송 과정에서 현금 62억원과 11억원 상당의 지분을 받는 데 그쳤다. 약 2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돈은 미상환 상태로 남았다. 허공으로 사라졌다.
결국 코인원은 이 200억원의 미수금을 '손상차손'으로 회계 처리하며 사실상 회수를 포기했다.
창업주의 귀환과 제국의 몰락
옐로모바일이 남긴 폐허 속에서 두 기업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코인원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 끝에 재기에 성공했지만 옐로모바일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024년 4월 옐로모바일은 공식 폐업 처리되며 한국 스타트업 역사상 가장 극적인 실패 사례로 남았다.
반면 혼란의 중심에서 창업자 차명훈 대표는 경영권 되찾기를 결심했다. 그는 개인회사 '더원그룹'을 설립하는 등 수년간의 노력 끝에 2021년 마침내 50%가 넘는 지분을 확보하며 5년 만에 최대주주 자리를 되찾았다.
지배구조 안정의 중요성을 절감한 코인원은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도 맞이했다. 게임사 컴투스 그룹이 2021년부터 총 944억원을 투자해 지분 약 38%를 확보하며 2대 주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게임 NFT 등 미래 사업에서 실질적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의 등장이었다. 이로써 코인원은 창업주가 중심을 잡고 유력 상장사가 안정성을 더하는 이상적인 지배구조를 완성하며 긴 혼돈의 시기를 끝냈다.
다만 아직도 그 망령은 코인원의 주변을 배회중이다. 8년이 지났으나 피해자였던 코인원이 여전히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금감원과 검찰이 문제 삼는 것은 대여금 거래 자체의 '절차'다. 당시 코인원은 옐로모바일의 완전한 통제 하에 있었고 자금 대여를 승인한 것은 당시 코인원 경영진이었다. 즉 옐로모바일의 부당한 요구에 저항하지 않고 회사의 자금을 내어준 행위가 코인원이라는 법인에 손해를 끼친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압수수색이 코인원이 옐로모바일의 망령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인 배경이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의 통제 아래 있었다는 이유로 잠재적 피의자가 되는 굴레에 갇힌 셈이다. 부실한 지배구조를 가진 모회사와의 잘못된 얽힘이 얼마나 길고 끈질긴 상처를 남기는지에 대한 뼈아픈 교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