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없는 그림 앞에서 [김설화의 미술관 가는 길을 찾다]

2025-09-29     김설화 큐레이터 칼럼니스트
김설화 큐레이터는 감각을 지식보다, 질문을 정답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미술관 가는 길을 찾다’는 그가 현장에서 매일 마주하는 경험을 바탕으로, 관람객이 미술관을 더 쉽게 찾는 길을 안내하는 실용 가이드다. 미술 작품 앞에서 멈춰 선 순간부터 시작되는 감상법을 제시한다.

예술은 불시에 스치는 전율에서 시작됩니다. 설명 없이도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수십 번을 마주해도 낯선 작품도 있습니다.

예술이 완결된 답이 아니라 끊임없이 펼쳐지는 질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가는 캔버스에 첫 선을 긋는 순간부터 질문을 던집니다. 그 선 하나에는 무수한 가능성이 담겨 있습니다.

미술관의 문턱은 여전히 높게 느껴집니다. '미술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통념이 불필요한 심리적 장벽을 세우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약간의 배경지식이 더해지면 감상의 시야가 넓어집니다. 작품을 더욱 깊이 있게 해석하고, 나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품의 표면을 꿰뚫고 들어가게 하는 것은 시선이 머무는 찰나에 스며드는 감각입니다. 작품은 관람자의 눈길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태동하며, 그렇기에 해석은 발견이라기보다 창조에 가깝습니다.

책 한 권의 모든 구절이 마음에 닿지 않듯, 전시의 모든 작품에서 감동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단 몇 점의 작품이라도 나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면, 그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감상은 비로소 시작됩니다.

사유가 무르익었다면, 이제 몸의 감각을 빌릴 차례입니다. 작은 변화만으로도 작품과 만남은 전혀 다른 경험이 됩니다.

벽면의 텍스트는 잠시 접어두고 오롯이 작품과 마주해보세요. 선입견을 내려놓고, 순수한 시선만을 허락하는 순간입니다. 그때 작품은 당신만의 서사를 입습니다. 어떤 색채는 ‘잊혔던 감정의 온도’가 되고, 어떤 형태는 ‘말하지 못한 그리움의 윤곽’이 됩니다. 당신의 언어로 다시 명명하는 순간, 작품은 당신만의 고유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때로는 손끝이 눈보다 정확합니다. 전시 팜플렛의 여백에 선 하나를 따라 그리거나, 형태의 흐름을 더듬어보세요. 손끝이 포착한 궤적 속에서 작가의 호흡과 리듬, 붓이 머뭇거린 자리까지 되살아납니다.

전시장을 나서면서, 기억의 잔상을 기록해 두세요. 마음에 가장 깊이 스민 감각을 짧은 메모로 간직하는 것입니다. 감각은 언어가 될 때 영원해집니다. 한 줄의 기록이 시간을 건너, 언젠가 그날의 빛과 색을 온전히 되살려낼 것입니다.

미술은 삶의 문법을 닮았습니다. 완벽한 해석을 거부하면서도, 그 모호함 속에서 각자의 서사를 써 내려가게 합니다.

작품은 작가의 손에서 완결되지 않습니다. 관람자의 시선 속에서 매번 다른 감각과 언어로 새롭게 변주됩니다. 그렇기에 예술은 언제나 살아 숨 쉬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작품 앞에서 던진 질문은 오래도록 미세한 잔향처럼 남아, 일상의 풍경 속에 불현듯 스며들어 순간을 새롭게 비춥니다. 정답 없는 물음을 붙들고 각자의 응답을 길어 올리는 일, 그 끝나지 않는 대화 속에서 예술은 비로소 완성되는지도 모릅니다.

이미지 = 셔터스톡

 


※ 김설화 큐레이터는 서양화·미술경영을 전공했다. 청담 보자르갤러리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국내외 아트페어 참여, 전시 기획과 작가 연구, 도슨트와 홍보 등 매일 현장에서 미술 작품과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