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허자를 들어보자 [정진용의 우리 음악 쉽게 듣기]
우리 전통음악에는 향악(鄕樂), 아악(雅樂), 당악(唐樂)이 있다. 향악은 우리나라에서 유래하고 전승된 음악, 아악과 당악은 중국에서 전해져 온 음악이다.
보허자(步虛子)는 당악에 속한다. 고려 시대에 송나라에서 전래되어 고려와 조선의 궁중 음악으로 수용되었다.
보허자는 ‘허공을 걷는 사람’, 즉 신선을 뜻한다. 즉 그 이름 자체가 도교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로 전해질 당시에도 ‘양을 탄 다섯 신선’을 의미하는 오양선(五羊仙)이라는 춤의 노래로 전해졌으며, 긴 봄과 늙지 않음을 뜻하는 장춘불로지곡(長春不老之曲)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노랫말에는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도 있다. 도교와 유교 사상이 결합된 것이다.
보허자는 출궁악(궁을 나설 때), 연례악(잔치), 정재(무용) 반주 등 많은 곳에 사용된 음악이다. 그만큼 당시 궁중의 사람들에게 의미와 음악적 아름다움을 높게 평가받아 사랑을 받은 곡이라 생각한다.
보허자는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
보허자는 주로 관악기로 편성된 웅장한 합주곡이다. 당피리와 대금, 아쟁과 해금이 선율을 이끌어가는데, 눈여겨볼 악기는 편종과 편경이다. 편종은 작은 종이며, 편경은 소리가 나는 ㄱ자 모양의 돌로 만든 악기다.
참고로 편종과 편경은 제례악(제사음악)에도 사용한다. 하지만 편종과 편경을 듣고자 한다면 제례악보다는 보허자를 듣는 것이 조금 더 재미있을 것이다.
#전단(1장)
천문해일선홍(天門海日先紅) 강사옥부(絳紗玉斧) 서기이융(瑞氣怡融) 승천가주천악(承天嘉奏天樂) 금봉은아일총총(金鳳銀鵝一叢叢) 양란포무회파(揚蘭蒲舞廻波) 세세류담담풍(細細柳澹澹風)
천문(天門)은 바다에서 해 오르자 먼저 붉고 진홍 옥도끼엔 서기(瑞氣)가 엉겨 있네. 하늘의 기쁨 이어받아 하늘 음악 연주하고 금봉새와 은거위들 떼지어 모였네. 향기로운 난초 품은 춤은 물결처럼 돌고, 가는 버들가지에 깃든 담담한 바람 같네.
#후단(2장)
구중춘색번도연(九重春色磻桃宴) 나삼엽엽무일편(羅衫葉葉舞一遍) 재배진삼원(再拜陳三願) 일원성수무강(一願聖壽無疆) 이원조야청연(二願朝野淸晏) 삼원균천악구여송(三願勻天樂九如頌) 세세년년차배헌(歲歲年年此盃獻)
구중(九重)의 봄날에 반도(蟠桃)의 잔치 열리고, 비단옷 올올이 한바탕 춤추며 두 번 절하고 세 가지 소원 드리니 첫째는 폐하의 수(壽)가 무궁하시고, 둘째는 조야(朝野)가 맑고 편안하고, 셋째는 균천악(鈞天樂)이 퍼지고 구여(九如)를 살부리리. 세세년년하시길 이 잔을 바친다네.
- 국립국악원 국악사전 발췌
보허자는 민요나 판소리에 비해 노랫말이 잘 들리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가사의 의미를 알면, 음악을 더 깊게 즐길 수 있다(가사는 표 참고).
전단(1장)에서는 ‘바다에 뜨는 해’와 ‘금봉황과 은거위’ 같은 상서로운 상징을 통해 신선의 세계를 묘사한다. 후단(2장)에서는 ‘구중궁궐의 봄 잔치’를 언급하며 임금의 만수무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유교적 가치를 담고 있다.
따라서 보허자를 들을 때는 첫째, 청자도 신선이 된 듯 푹신한 소파에 파묻혀 웅장하고 아름다운 음악에 몸을 맡길 것을 추천한다. 둘째, 신선이 된 다음에는 우리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들어보자.
오늘의 추천곡은 국립국악원 연주단의 보허자이다. 유튜브 영상은 음질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음반으로 직접 듣기를 추천한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보허자
※ 대금 연주자 정진용은 국가무형유산인 종묘제례악과 대금정악의 이수자이며 선릉아트홀의 무대감독이다. 선릉아트홀은 서울시 강남구의 아담한 공연장으로, 주로 국악이 연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