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유럽 노선 18일”…북극항로 개통, 경제성 있나

중국 선사 씨 레전드, 중국-영국 노선 북극항로에 개통

2025-09-24     박상준 기자
한화오션이 극지연구소에 제안해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차세대 쇄빙연구선 조감도. 사진=한화오션

중국이 유럽까지 가는 새로운 바닷길을 개통한다. 북극항로 노선이다. 기존 노선 대비 절반가량 짧은 항해 기간 단축이 가능하다. 홍해 사태 이후로 수에즈 운하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선사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항해 기간이 짧은 만큼 탄소 배출량도 급감해, 국제해사기구(IMO) 환경 규제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선사들로선 대안으로도 주목 받는다.

하지만 업계에선 여전히 북극항로가 완전히 상용화되려면 많은 시간이 남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대형 컨테이너선사들에겐 아직 유의미한 수익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따른다.

항해 시간 ‘절반’…북극항로 시대 개막

해사전문매체 마린인사이트에 따르면, 중국 선사 ‘씨 레전드’는 24일부터 중국-유럽 직항 노선을 개통한다. 닝보-저우산항을 출발해 10월 10일 영국 최대 상업항 펠릭스토우에 도착 예정이다. 단 18일 만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셈이다.

기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닝보 저우산-독일 빌헬름스하펜 노선이 26일가량 소요된다. 심지어 홍해 사태 이후 희망봉 우회를 가정한다면 40일이 걸린다. 이런 1개월 단위 운송 계획을 항로를 바꿈으로써 혁신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선사들의 운송비 저감은 물론, 화주들로 더 촘촘한 운송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심지어 탄소 저감 측면에서도 긍정 요인이 있다. IMO는 2050년 해운 ‘넷-제로’ 달성 목표를 선언하며 탄소 저감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저속 운항’과 ‘운항 시간 단축’이다, 기존 항로보다 더 짧은 항로의 필요성도 대두된 이유다.

마린인사이트는 “항해 기간이 단축되면 탄소 배출량도 약 5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환경 규제에 맞춰 탄소 저감 솔루션이 적용된 선박을 발주하고, 항해 계획을 변경해야 하는 선사들로선 북극항로 이용이 또 하나의 대안이 되는 셈이다.

중국, 북극항로로 저가 제품 수출·러시아 원유 들인다

중국은 북극항로의 가능성을 보고 공격적으로 노선 개설을 시도한 것이다.

중국은 북극항로를 이용하면서 확실한 이득을 볼 수 있다고 판단한다. 씨 레전드의 이번 항차에는 생필품뿐 아니라 ESS, 배터리 등 고부가가치 제품도 함께 운송된다. 중국의 저렴한 저가 물품이 유럽 시장으로 직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운송비가 절약되면 중국산 제품은 유럽 현지서 더 강력한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동시에 중국은 러시아와 연대 강화도 꾀한다. 원유 운송 경로 다각화 필요성 때문이다. 중국 국가에너지국(NEA)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에너지 자급률은 80%를 상회했다. 최근 대량으로 건설 중인 태양광 설비와 원전에 힘입은 결과다. 하지만 원유 자급률로 넘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마땅한 유전이 없어 전체 필요 석유의 70%를 해외 수입에 의존한다.

미국과 패권 경쟁하며 국제적 영향력을 키우고 싶은 중국은 원유 공급망 안정성 확보가 선결과제다. 국제 제재로 원유 수출길이 막힌 국가의 원유를 대량 수입하고 친교를 다져 탄탄한 공급망을 상시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지난 2월 11일 발간한 일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제재 대상국인 이란산 원유를 말레이시아산으로 라벨 갈이 후 들여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말레이시아의 일평균 원유 생산량은 60만배럴인 반면, 말레이시아로부터 수입하는 원유는 일 평균 140만배럴이라는 설명이다.

러시아산 원유도 중국의 주요 수입 품목이다. 마침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대상 원유 판로가 막힌 러시아로서도 좋은 판매 기회를 잡았다. 러시아에서 인프라를 관리하고, 중국의 접근성이 좋은 북극항로가 판로가 되고 있다. 코트라 블라디보스톡 무역관에 따르면 2024년 9월 기준 북극항로 통과 화물량은 사상 최대치인 238만톤이며, 그중 95%를 러시아-중국간 교역이 차지했다. 통과 화물의 62%는 원유(147만6000톤)였다.

경제성은 갸우뚱…환경 문제도 생겨

북극항로 개척으로 얻는 이득이 확실한 중국과 달리, 다른 국가 선사 상황은 미묘하다. 가장 큰 분야인 정기선 컨테이너선 업계에서는 “실질적 이득을 보기 어렵다”며 항로 개척 참여를 저어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세계 1위 해운사인 스위스의 MSC와 2위 덴마크 머스크, 3위 프랑스 CMA CGM은 모두 북극항로 이용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지구온난화로 환경이 파괴돼야만 이용가능한 항로며, 비용 절감이 어렵다는 이유다.

비용 문제가 크다. 컨테이너 정기선사는 단순히 항구에서 물건을 싣고, 최종 목적지까지 직항해 물건을 내리는 방식의 운항은 하지 않는다. ‘중간 기항지’에 들려 환적(목적지가 아닌 항구에서 다른 선박에 화물을 옮겨 싣는 일)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는다. 반면 북극항로는 러시아를 제외하곤 마땅한 중간 기항지가 없다. 필연적으로 러시아 의존도가 커진다.

더불어 ‘정기’선사임에도 정기 운항을 하기 힘들다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유빙이 녹는다지만, 안전한 운항을 위해선 겨울을 제외한 시기에만 운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시성’인데, 보장되지 않는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새롭게 북극항로 노선을 개통한 중국 선사를 보면, 전체 선대가 3만TEU 수준의 소규모 선사”라며 “중국은 국가적으로 북극항로 개척을 주도하고 있고, 선사 자체의 유통 물량 자체도 크지 않은 만큼 큰 부담은 없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국내 1위 선사 HMM처럼 수십~수백만TEU의 선대를 운용하는 글로벌 선사들은 당장 정시성 유지와 기존 네트워크 관리만 해도 여력이 없다. 막연한 미래를 보고 북극항로에 뛰어들기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탄소 저감효과 역시 북극항로 완전 개척 시 뒤따를 환경 문제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당장 북극항로부터 탄소 배출 과잉으로 발생한 지구온난화가 북극 유빙을 녹여 만들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환경 파괴와 환경 보존이 양립할 수 없다는 지적을 받는다.

해양 생태계 교란 문제도 고려 사항이다. 선박 운항 과정에서 선박 하부에 도포된 방오도료는 해양 생물들에게 유독한 물질로 만들어진다. 항해 중 발생하는 수중 방사소음은 해양 생물들의 번식과 먹이 활동, 방향감각을 교란한다. 선박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배 아래나 좌우에 설치된 탱크에 채워 넣는 선박평형수는 생태계를 뒤섞는다. 다른 국가의 항만에 입항 시 싣고 있었던 평형수를 배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타 해역의 유해성 플랑크톤이나 박테리아 등이 현지 바다에 섞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