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지배할 트럼피즘 20년…“車∙반도체 생산촉진 정책 절실”

자동차 업계 "15% 관세협상 마무리시급…산업 공동화 우려" 상호관세 대상 아닌 반도체도 상황 예의주시…산업계 "트럼피즘 간단히 끝나지 않을 것"

2025-09-23     양정민 기자

“안타깝지만 트럼피즘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J.D. 반스 현 부통령이 미래 대통령으로 집권한다고 가정하면 20년 그 이상까지도 트럼피즘이 미국을 지배할 수도 있다고 바라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단기적인 상황이 아니라 장기적인 대응을 해야 할 이슈이고 이 시대가 미국을 앞으로도 몇십 년을 넘게 좌우할 것입니다.”

22일 대한상공회의소와 한미협회의 공동 주최로 열린 ‘관세 협상 이후 한·미 산업협력 윈-윈 전략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온 이화여자대학교 최원목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같이 말했다.

심각한 비관을 외치지 말자며 시작했던 컨퍼런스였지만 미국의 상호관세 발상이 점점 더 창의적으로 발전하는 대미 외교의 현실은 낙관을 외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 경제의 쌍두마차인 자동차, 반도체 업계도 도움과 업계 차원의 진지한 고민을 요청했다. 정부 간 협정이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 자동차 업계는 조속히 15%로 관세를 인하해줄 것을 요청했고, 반도체 업계는 분쟁 발생 가능성이 있는 법안, 환경, 규제 등으로 인해 원가가 타격받는 상황 속에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제언을 남겼다.

이화여자대학교 최원목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관세 협상 이후 한·미 산업협력 윈-윈 전략 세미나’에서 발제 중이다.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미국 도로 못 달리는 한국 자동차… 수출 급감 현실화

올해 한국의 대미 수출액 증감률은 ▲3월 -10.8% ▲4월 -19.6% ▲5월 -27.1% ▲6월 -16.0% ▲7월 -4.6%을 기록했다. 상호관세가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하반기부터 현대차그룹은 미국 생산-미국 판매 원칙을 최대한 고수 중이다. 설상가상 전기차 세액공제도 이달 30일까지만 제공된다. 당시 자동차 업계는 세액공제 폐지 시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이 최대 37%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상호관세로 인해 가격은 자연스럽게 올랐다. 현대차는 관세 부과 초기에는 미국에서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발표했으나 결국 버티지 못하고 가격을 인상했다. 대표적으로 2026년형 산타크루즈 SE는 2만8750달러에서 2만9500달러로 2.6% 올랐고, 2026년형 싼타페 SE는 3만4300달러에서 3만4800달러로 1.46% 비싸졌다.

2026 싼타페. 사진=현대차그룹

지난 4월 랜디 파커 현대차∙제네시스 북미 법인 최고경영자(CEO)도 “관세는 쉬운 문제가 아니고 현재 차량 가격은 보장되지 않는다”며 “4월 2일 이후 도매되는 차량의 경우 가격이 변경될 수 있다”고 알린 바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김주홍 전무는 “현재 현대차그룹은 미국 HMGMA 신공장을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건설했지만 IRA 폐지 등에 따른 전기차 수요 위축 시 하이브리드 생산 확대 등 관세 대응에 활용할 경우 국내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 수출에 부정적 영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수출 비중이 높은 미국 수출 위축은 국내 생산 감소를 초래해 산업 공동화가 심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김주홍 전무가 ‘관세 협상 이후 한·미 산업협력 윈-윈 전략 세미나’에서 발언 중이다.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김 전무는 한국GM도 국내 사업장 경쟁력 약화와 관련해 이미 언급한 만큼 생산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며, 부품 업계 역시 현지 투자 확대 시 영세 중소기업의 경우 자금 문제가 강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비자 발급 절차 역시 중소기업은 작은 L1(주재원), E2(투자) 비자보다 경쟁이 치열한 H1B(전문직 취업 비자, 추첨 방식) 비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나, 연간 8만5000개 H1B 쿼터 중 한국인 발급은 평균 2000여 명 수준으로 열악하다고 진단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HMGMA 준공식에 참가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해 김 전무는 “우선 15% 관세 협상을 정부에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지어주길 원하고, 인력 애로사항이 있기 때문에 취업 비자 쿼터 확대가 필요하다”며 “현지 기자재가 나가게 되는데 여기에서도 관세가 있다. 이 부분도 무관세가 될 수 있도록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어 “미국은 자동차 업계에게 제일 중요한 시장이기에 미래차에 대한 국가 전략 기술 촉진 체제를 만들어서 지원해주길 바란다”며 “영세 부품업계를 위해서도 국내 생산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의 관세 문제 없으나… 반도체도 상황 예의주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20일 오후 대만 타이베이 난강 전시관에서 개최된 '컴퓨텍스 2025'에서 SK하이닉스 부스를 찾아 전시된 HBM에 사인을 남겼다. 사진=연합뉴스

반도체 업계도 걱정이 생겼다. 반도체는 직접적인 상호관세 영향을 받는 품목이 아니고, 설사 발표가 되더라도 미국 기업이 보호되는 조건을 걸고 나오거나 선택적 관세가 발표되는 등 우호적인 조건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시장 분위기가 바뀌었다. 메모리 반도체는 제조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를 50년간 미국에 공급하며 협력 관계를 다져왔지만, 최근 미국이 제조 시설 투자가 쉽지 않음에도 자국에서 반도체를 만들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안기현 전무,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김주홍 전무를 비롯한 토론자들이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안기현 전무는 “미국 스스로가 첨단 반도체 제조기술을 만들 수 없는 환경에 들어갔기 때문에 가치가 높은 반도체 설계, 반도체 장비 중심으로 산업을 만들어왔다”면서도 “최근에는 미국도 제조사를 짓자고 해서 한국 또는 대만의 기업이 가서 미국의 반도체 제조사를 짓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 2022년 착공한 파운드리 신공장 ‘텍사스 테일러 팹’을 내년 가동 목표로 하고 있으며, 여기서 AI6 칩을 생산하기 위해 테슬라와 165억 달러(약 25조 원) 규모의 8년 계약을 체결했다.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 웨스트 라파예트 패키징 공장에 약 38억7000만 달러(약 6조 원)를 투자해 AI 반도체용 첨단 패키징 및 R&D 시설을 구축 중이다.

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삼성전자 오스틴 사업장. 사진=삼성전자

안 전무는 한국 내 산업 공동화 현상이 있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물과 전기, 잦은 민원 등으로 공사 중 지연 등이 발생하면 기업들이 해외 투자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특히 한국의 반도체 제조 원가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여러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법안, 환경·안전 규제로 인해 속도가 느려지고 이것이 비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며, 한국이 제조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지 못하면 결국 국내 생산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비자 문제도 반도체 업계에선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 파견 및 단기 출장자의 비자 문제로 미국 투자가 크게 지연될 가능성이 크며, 반도체 인력은 단기간에 대체할 수 없는 인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인력을 고용하라는 취지와 현실이 상충돼 미국 투자유치 목적 달성이 어려워지고, 경쟁국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안 전무는 “중국 규제에 우리도 영향을 받고 있는데, 중국이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면 중국 기업이 혜택을 보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다”며 “한국과 미국의 반도체 관계는 동맹이자 협력 관계였다는 점을 반드시 염두해, 경쟁이나 불편한 관계로 가면 양국 모두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트럼프, J.D. 반스+α… 관세 전쟁 수십년 더 걸리나

15일(현지시각)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정·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과 J.D.밴스 연방 상원의원(오하이오주)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한편 이날 토론과 컨퍼런스 참석자들은 트럼피즘이 장기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의 집권이 끝난다고 해서 관세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게 산업계의 전망이다.

최 교수는 “J.D. 반스 부통령이 미국 중산층을 되살리며 인기가 폭등 중이라 트럼프가 임기를 마쳐도 반스 등 공화당이 이 정책을 계승할 가능성이 높다”며 “대세계적인 상호관세 상황까지 왔기에 이를 인정하는 것이 대응책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얻을 건 최대한 얻어야 한다”며 “방위비 분담률 동결 등 통상·외교·안보 문제 간 패키지 딜을 병행해 통상 외적 이슈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혜민 前 한미 FTA 기획단장은 “환적상품의 정의가 불분명해 관세 부과의 빌미가 된다”며 “WTO 제재가 붕괴된 상황에서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따르고 CPTPP, MPIAA 조기 가입으로 국제 통상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최태원)와 한미협회(회장 최중경)가 22일 대한상의에서 ‘관세협상 이후 한·미 산업협력 윈-윈 전략 세미나’를 개최했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은 “산업 협력에서 어느 한쪽의 이익만 강조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는 양국 모두에 해가 될 수 있다”며 “균형 있는 협상과 상호 보완적 협력을 통해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한미 동맹과 관세협상 수단의 일환으로 미국의 제조업 부흥을 돕는 것은 좋지만, 주요산업의 핵심기술과 부품은 국내에 유지하는 한편, 현지에서 새롭게 창출될 일자리에 국내 인력들이 안정적으로 파견될 수 있도록 여건과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한미산업 윈윈을 위한 선결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