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고래 끝내 좌초...동해 가스전 2차 시추 희망은 남아

동해의 꿈, 돛 올렸다

2025-09-21     최진홍 기자

첫 시추 실패의 공식 선언과 동시에 울린 글로벌 석유 메이저들의 투자 뱃고동이 울렸다. 

한국석유공사가 19일 동해 심해 가스전 프로젝트의 상징인 첫 탐사 시추 구조물 ‘대왕고래’가 경제성이 없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막대한 기대를 안고 뚫었던 첫 시추공에서 상업적 규모의 가스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공식적인 실패 선언이다. 다만 동해 심해 광구의 미래를 좌우할 지분 투자 입찰이 마감됐고 복수의 글로벌 석유기업이 최종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나의 꿈이 좌초한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가능성의 돛이 오른 순간이다.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이 예측 불가능한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대왕고래 시추선. 사진=연합뉴스

무슨 일?
석유공사는 지난 2월부터 약 6개월간 미국 전문 분석업체 코어래버러토리스를 통해 대왕고래 구조 시추 과정에서 채취한 시료를 정밀 분석한 결과 회수 가능한 가스를 발견하지 못해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최종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석유공사는 이번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대왕고래 구조에 대한 추가적인 탐사는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한 시대의 기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이번 정밀분석 결과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첫 시추의 결과를 공식화한 것이다. 

분석에 따르면 약 70미터 두께의 사암층과 270미터의 덮개암 그리고 약 31퍼센트의 높은 공극률 등 석유나 가스가 대규모로 모일 수 있는 전반적인 지하구조 자체는 매우 양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원 저장고로서의 물리적 조건은 이상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내용물인 상업적 규모의 가스를 확인하는 데는 끝내 이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프로젝트의 미래를 가늠할 투자유치 전선에서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극적인 결과가 나왔다. 석유공사가 같은 날 오후 3시 마감한 동해 해상광구 투자유치 입찰에 복수의 외국계 업체가 최종 참여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대왕고래 실패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석유개발 기업들이 동해 심해 광구의 다른 유망 구조들의 잠재력에 과감히 베팅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료 정밀분석이 8월 말에 이미 완료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입찰에 참여한 기업들은 대왕고래의 분석 결과를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에서 동해 심해의 사업성을 면밀히 저울질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 개의 유망 구조 실패가 전체 광구의 가치를 훼손하지는 않는다는 냉정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한편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핵심 자원 개발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2023년 말 미국 컨설팅업체 액트지오의 유망성 평가 용역 결과 동해 심해에 최소 35억배럴에서 최대 140억배럴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제시되며 전 국민적 기대감을 한 몸에 받았다. 정부는 지난해 6월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직접 국정브리핑을 열고 시추가 성공하면 2035년부터 상업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석유공사는 지난해 12월 20일부터 올해 2월 4일까지 47일간 1차 시추를 진행했다. 그러나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첫 실패 이후 프로젝트 동력이 급격히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이유다. 하지만 석유공사는 개발 사업 재추진을 위해 지난 3월 울릉분지 내 4개 해저광구(8NE, 8/6-1W, 6-1E, 6-1S) 약 2만58제곱킬로미터에 대한 석유가스 개발 사업에 참여할 업체를 모집하며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당초 지난 6월 마감 예정이었던 입찰은 잠재 투자사들의 요청으로 이달 19일까지 3개월 연장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BP 전면에 나서나
업계에서는 현재 입찰 연장을 요청한 기업으로 범유럽 메이저 석유 기업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을 위시한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일일 것으로 본다. 

윤 전 대통령 탄핵과 이재명 정부 출범이라는 국내 정치 지형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새 정부의 사업 지속 의지를 확인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석유공사의 단독 추진 의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용인 기조가 확인되자 BP를 포함한 글로벌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입찰에 뛰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번 입찰에 참여한 해외 기업들은 심해에서 하루 1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생산하는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거나 최근 3년 이내 석유공사와 직접적인 협력사업을 추진한 이력이 있는 소위 ‘검증된’ 업체들이다. 지난해 7월 석유공사가 1차 시추를 앞두고 진행한 투자유치 설명회에서 깊은 관심을 보였던 미국 엑손모빌 역시 이번 입찰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석유공사는 앞으로 투자유치 자문사인 S&P글로벌과 함께 입찰 제안서를 면밀히 검토해 이르면 10월 중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방침이다. 선정된 업체는 이번 사업에 최대 49퍼센트까지 지분을 투자할 수 있으며 이후 세부 계약조건 협상을 거쳐 조광권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입찰 참여사 간의 공정한 평가를 위해 현시점에서는 참여 업체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공개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우선협상자가 선정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높다. 당장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이번 사업과 관련된 예산이 전액 삭감된 상태다.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지난 1일 브리핑에서 “신청 계획을 수립하지 못해 애초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석유공사는 오는 12월 이사회를 목표로 사업비 추진 계획을 준비 중이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예산 규모조차 미정인 상황이다. 해외 투자 유치 성공 여부가 사업의 명운을 쥔 예산 확보의 결정적 열쇠가 된 셈이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그간의 탐사와 이번 시추를 통해 축적된 자료를 기반으로 투자유치가 성사되면 공동 조광권자와 함께 유망성평가와 탐사 등 사업계획을 새롭게 수립할 예정”이라며 “우리나라 자원안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왕고래의 꿈은 비록 바닷속에 잠겼지만 더 넓은 동해의 가능성을 향한 새로운 항해는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