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력' 안전대책에 건설업계 "원청기업 책임만 강조, 문닫으라는 거냐?" 아우성

산재사망 반복 기업, 영업익 5% 과징금

2025-09-16     국승한 기자
국내 한 건설현장 타워크레인.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산업재해 근절을 위해 중대재해를 반복한 기업에 영업이익의 최대 5%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공공입찰 참가를 최대 3년까지 제한하는 등 강도 높은 경제적 제재를 도입한다.

또한 사망사고가 누적된 건설사의 경우 등록 말소와 인허가 취소를 요청해 사실상 시장 퇴출을 강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노동안전 종합대책 발표…'사고 없는 일터, 안전 대한민국' 

고용노동부는 15일 '사고 없는 일터, 안전 대한민국'을 목표로 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모든 정부 부처가 협업해 마련했다.  기존 노동부 중심의 산재 감축 대책과 달리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이라는 점이 눈길을 모은다.

핵심은 기업에 직접적이고 실효성 있는 불이익을 주는 '제재 강화'이다. 모든 산업 기업을 대상으로 연간 3명 이상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최소 30억 원 이상의 과징금이 부과되고, 사망자 수와 발생 횟수에 따라 제재 강도가 차등 적용된다. 부과된 과징금은 산업재해 예방사업 재원으로 활용된다.

또 건설사의 경우, 최근 3년간 영업정지 처분을 두 차례 받은 사업장이 다시 사고를 낼 경우 등록을 말소해 시장에서 퇴출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정비한다. 등록이 말소되면 해당 건설사는 신규 사업 참여와 수주, 하도급 계약 등 모든 영업활동이 중단된다. 안전관리 의무를 소홀히 한 기업에 ‘퇴출’이라는 가장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공공 조달시장 제재도 강화된다. 민자·민간 현장에서 중대재해를 낸 기업도 입찰 제한 대상에 포함하고, 제한 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늘린다. 낙찰자 평가 시에는 '중대재해 위반' 항목을 신설해 건설공사뿐 아니라 물품·용역 계약에서도 안전 관리 실적이 직접 반영된다. 법인 분할이나 명의 변경을 통한 제재 회피를 막기 위해 제재 승계 규정도 마련한다.

금융·투자 분야로 제재도 강화된다. 대출금리와 한도, 보증, 보험료 등 여신 심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분양보증에 중대재해 리스크가 반영된다. 상장회사의 경우 중대재해 발생 사실과 형사판결을 즉시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ESG 평가에도 반영해 투자 제한이나 지분 회수까지 이어지도록 한다.

내년 2조 723억 투입해 산재 예방·감독 역량 강화

이번 대책은 △안전 사각지대 예방 지원 강화 △안전 주체로서 노사의 역할·책무 확립 △노동안전 확산을 위한 인프라 확대 △안전 예방을 촉진하는 제재 수단 도입 등 4개의 큰 축으로 나눠져 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강력한 집행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내년에 2조 723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산재 예방과 감독 역량을 강화하고, 중앙·지방정부와 민간을 아우르는 '안전한 일터 특별위원회'를 신설한다.

1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지원도 대폭 확대한다. 안전·보건관리자 선임 대상 사업장을 단계적으로 늘릴 계획이며, 안전 의식 생활화를 위한 안전보건 교육도 확대 지원한다. 중대재해 발생 사업주에 대한 외국인 고용 제한 요건도 강화한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가 사망한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사업장은 3년간 고용이 제한된다. 또 중대재해에 해당하는 질병·부상이 발생한 경우에는 1년간 고용 제한이 적용된다. 건설업에서는 고용 제한 단위를 현장 단위에서 사업주 단위로 변경해, 산재 발생이나 불법체류자 고용 시 제재의 실효성을 높인다.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이 참여하는 예방 시스템도 구축한다. 중앙정부는 산업안전감독관 증원과 고위험 사업장 점검을 연계해 감독 대상을 2028년까지 7만 개소로 대폭 늘리고, 단순 점검보다 감독 비중을 확대해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즉시 법적 조치가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다.

지자체는 감독 권한 위임과 산업안전감독관 증원에 맞춰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점검·감독을 강화해 2028년까지 3만 개소를 목표로 한다. 또한 중앙-지방 안전 네트워크를 통해 발주 공사와 취약 사업장의 위험 작업 정보를 공유하고, 유관기관 합동 점검을 실시해 개별 관리의 실효성을 높인다.

민간 부문에도 같은 네트워크 체계를 적용해 공사 현장 위험 정보를 공유하고, 안전 확보를 위한 협력 관리 체계를 강화한다. 아울러 충분한 공사 기간이 보장되도록 법령을 정비해 민간 공사 설계서에 공사 기간 산정 기준을 포함하고, 계약 단계에서부터 적정 공기를 확보하도록 유도한다. 이를 위해 건설안전특별법을 제정해 발주자가 산정한 공기를 전문기관과 인·허가기관의 장이 심의·검토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정부는 공공기관과 수급업체까지 포괄하는 안전 관리 평가를 강화한다.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기관장의 안전경영 책임을 주요 항목으로 반영하고, 산재 예방 분야 배점을 현행 0.5점에서 대폭 상향한다. 특히 공공기관 사고 사망자 비중이 가장 높은 건설 현장에 대한 안전관리등급제 심사 대상을 현재 28개에서 40개 이상으로 확대한다.

불법 하도급 근절…적발시 벌점 부과 및 형사처벌 

건설 현장의 불법 하도급에 대해서는 국토교통부·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가 합동 단속을 정례화하고, 적발 시 벌점 부과와 형사처벌 등 엄정 조치를 취한다. 또 불법 하도급에 따른 제재 수준과 사유를 확대해 인명사고가 발생할 경우 등록 말소 기준을 현행 '5년 내 3회 이상'에서 더욱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원수급인과 하수급인 모두에게 책무를 부과하고, 위반 시 행정처분과 벌칙 수준도 상향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발전·에너지·공항 등 6개 분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도급 실태조사를 실시해, 공공기관 차원의 하도급 개선 방안도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다.

아울러 노동부 장관이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긴급 작업중지 명령을 할 수 있도록 제도도 신설된다. 중대재해 발생기업은 신속히 수사해 송치·기소하고, 양형위원회와 협의해 산업안전보건법 양형기준을 상향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양형기준은 신설해 나갈 계획이다.

건설업계 "현장상황 무시하고 원청기업 책임만 강조"

건설업계는 정부의 이같은 대책에 대해 "현장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원청기업의 책임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사망 사고를 줄이자는 정책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건설업계 사망 사고는 원청뿐 아니라 발주처와 하청업체, 노동자 개인의 부주의 등이 얽혀 발생한다"면서 "이번 종합대책은 원청 책임만 강화하고 있다"고 볼멘 소리를 냈다.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는 외국인 사망 사고 발생 시 기존 1년이었던 고용 제한을 3년으로 늘리는 조항에 “토목이나 터널 공정에는 국내 노동자들이 없어 불법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쓰는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건설안전특별법에서 3%를 정해 놓고 과징금을 5%까지 올린 건 너무 과하다"라며 "특히 등록 말소 처분은 사실상 회사 문을 닫으라는 것인데, 남은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 보장 등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입찰 시 최저가를 규정했던 공사비를 발주자가 산정하고 공사 기간 산정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방안에는 “건설업계가 그동안 요구했던 것들이 그나마 반영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