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닭 신화 이끈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관세 리스크도 정면 돌파 [CEO파일]
명동 한 그릇에서 시작된 불닭볶음면 신화 관세 리스크에도 TF 구성 등 해법 찾는다
국내를 넘어 전 세계가 떠올리는 K라면의 대명사는 단연 ‘불닭볶음면’이다. ‘매운맛 도전’이라는 이색 문화와 맞물리며 글로벌 시장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었고, 그 덕분에 삼양식품은 지난해 연매출 1조원을 넘기는 대표적인 K푸드 수출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흥행 신화는 우연이 아니라 철저한 기획과 집념의 결과에서 비롯됐다. 그 중심에는 불닭볶음면을 기획하고 브랜드로 키워낸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이 있다.
불닭볶음면의 탄생, 한 그릇의 매운맛서 시작
김정수 부회장은 삼양식품 창업주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의 며느리이자 전인장 전 회장의 부인이다. 1998년 삼양식품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로 화의에 들어가면서 경영난을 겪던 시기에 삼양식품 영업본부장으로 입사했다. 뒤이어 2002년 삼양식품 부사장에 선임된 이후 삼양식품 사장, 삼양식품 총괄사장 등을 차례로 역임했다. 2021년에는 삼양식품 부회장에 선임됐으며, 지난해 삼양라운드스퀘어 대표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김 부회장의 또 다른 이름은 ‘불닭볶음면의 어머니’이다. 2011년 우연히 방문한 서울 명동의 한 찜닭집에서 젊은이들이 매운 찜닭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모습을 보게 됐고, 김 부회장은 “이 강렬한 매운맛을 볶음면으로 만들어보자”는 발상을 떠올리게 됐다.
이후 마케팅팀·연구소 직원들은 본격적으로 찜닭, 불곱창, 닭발 맛집을 찾아다니며 매운맛 연구에 돌입했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매운맛을 찾기 위해 청양고추, 하바네로고추, 베트남고추, 타바스코, 졸로키아 등 세계 모든 지역 고추를 혼합하며 최적의 소스 비율 실험에도 나섰다. 이 과정에서만 매운 소스 2톤(t)과 닭 1200마리가 투입됐을 정도다.
그렇게 1년간의 연구 끝에 스코빌 지수 4404SHU에 달하는 불닭볶음면이 완성됐다. 단순히 매운 것을 넘어 ‘빠져드는 중독성’까지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불닭 신드롬, 삼양식품 매출·주가를 끌어올리다
스코빌 지수 4404SHU의 매운맛은 출시 초기만 해도 “도저히 먹기 힘들다”는 반응을 불러왔다. 그러나 곧 ‘도전 먹방’ 문화와 맞물리며 글로벌 화제성을 키웠고, ‘중독성 있다’는 입소문마저 퍼지면서 출시 1년 만에 불닭볶음면의 월 매출은 30억원을 달성했다.
이후 ‘핵불닭’, ‘까르보불닭’ 등 시리즈 제품까지 연이어 성공을 거두며 ‘매운 라면’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열었다. 삼양식품 매출은 2021년 6420억원에서 2022년 9090억원, 2023년 1조1929억원, 2024년 1조7280억원까지 가파르게 뛰었다. 특히 해외 매출은 같은 기간 3886억원에서 6057억원, 8093억원을 거쳐 지난해 1조3359억원까지 치솟았다. 해외 매출 중 80% 이상이 불닭 브랜드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닭 브랜드 하나가 사실상 삼양식품의 체질을 바꾸고 K라면을 대표하는 수출 품목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자연스레 주가도 따라왔다. 김 부회장이 취임했던 2021년 9만원대에 머물던 삼양식품 주가는 15일 기준 159만원대로 약 17배 올랐다. 시가총액은 12조원을 돌파하며 식품업계 1위에 올랐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폭발적인 상승세에 빗대어 ‘면비디아’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해외 외신에서도 삼양식품 주가가 폭등한 사실을 집중 조명하는 분위기다.
관세 장벽에도 끄떡없는 불닭…김정수의 해법은
이제 김 부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미국발 관세 리스크에 대응하며 불닭볶음면의 글로벌 열풍을 지켜내기 위한 준비에 착수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정부는 상호관세 정책에 따라 이달 7일부터 미국으로 수출되는 우리나라 농식품에 15%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에 해외에 자체 생산공장이 없는 삼양식품은 그동안 수출 물량 전량을 국내에서 조달해온 만큼, 가격 인상과 그에 따른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업계 안팎에서 제기돼 왔었다.
그러나 김 부회장은 이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난 4월 사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응에 나섰다. 최근에는 수출 물량 확대를 위해 경남 밀양 2공장을 준공해 가동을 시작했으며, 수출 다변화를 위해 해외 첫 생산기지로 미국이 아닌 중국을 낙점했다.
미국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가격 인상도 검토 중이다. 이 같은 대응의 배경에는 불닭볶음면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김 부회장의 긴 기간 노력으로 완성된 대체 불가능한 중독성 있는 매운맛이 소비자 충성도를 지탱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실제 불닭볶음면 가격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자 미국 소비자들은 이탈하기보다 오히려 대량 구매에 나섰다.
증권가 역시 불닭의 성장세가 흔들리긴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미 대체 불가능한 매운맛으로 충성 고객층을 확보한 만큼 수요가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주영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상호 관세 시행과 관련해 “가격 인상을 통한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높은 고객 충성도를 볼 때 수요 감소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앞으로도 글로벌 수출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올해 6월 열린 밀양 제2공장 준공식에서 “불닭이라는 별은 이제 막 타오르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더 뜨겁게 타오르고, 더 밝게 빛날 것”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앞으로도 더 오래 타오르기 위한 준비와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