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을 것인가, 남게 할 것인가” [김진오의 처방전 없는 이야기]

지역의사제, 갈등이 아닌 해법으로

2025-09-23     김진오 성형외과 전문의
※김진오 전문의는 현재 성형외과의사회 공보이사 및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학술이사로 활동 중이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처방전 없는 이야기’에서는 진료실 안팎에서 마주한 순간들을 바탕으로, 의료와 사람, 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간다.

지역의사제는 의대 입학 단계에서 학생을 선발해 일정 기간 의료 인력이 부족한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대신 장학금이나 학비를 지원합니다.

취지는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된 의사 인력을 지역으로 분산시켜 필수 의료의 공백을 메우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제도 설계와 시행 과정에서는 여러 우려와 논란이 함께 제기됩니다.

현재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 심사가 한창이고, 보건복지부는 제도의 취지에 공감한다면서 세부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기획재정부와 교육부는 각각 재정 부담과 대학 자율성 침해를 우려하며 고개를 젓고 있습니다. 여기에 “10년 의무복무는 직업 선택과 거주 이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헌법적 논란까지 겹쳐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방 의료 공백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기에, 제도 논의 자체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설계하느냐입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지역 쿼터’ 제도를 운용했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설립한 자치 의과대학을 통해 지역 근무를 조건으로 학생을 선발해 왔습니다. 졸업 후 농촌에서 근무하는 비율은 여전히 높습니다. 다만 제도가 지나치게 경직될 때 나타나는 부작용도 존재합니다.

미국은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국가보건서비스단(NHSC)은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 탕감을 제공하며 의료 취약지 근무를 유도하는데, 의무 기간이 끝난 뒤에도 상당수가 남아 있습니다. 강제가 아니라 ‘머물고 싶게 만드는 장치’가 효과를 발휘한 셈입니다. 캐나다의 노던온타리오 의과대학처럼 애초에 교육과정을 지역에 분산시켜 아예 의사 양성의 기반을 그곳에 두는 방식도 있습니다.

이 사례들의 교훈은 뚜렷합니다. 의료 인력을 ‘억지로’ 붙잡아 두는 방식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지역에서 배우고, 일하고, 살아가는 경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에야 비로소 잔류율이 높아집니다. 보조금이나 명령이 아니라, 주거와 교육, 배우자의 일자리 같은 생활 조건이 함께 맞춰질 때, 한 사람의 삶은 지역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역의사제도 그 방향을 따라야 합니다. 의무복무 기간을 합리적인 수준에서 줄이고, 중도 이탈 시 환수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재정은 국가와 지자체, 의료기관이 역할을 나누어 분담해야 예산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가 또 하나의 갈등을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지역 의료 공백을 메우는 해법’으로 자리 잡도록 설계하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제도의 설계가 강제와 불신의 방향으로 흐른다면 제2, 제3의 의정 갈등이 반복될 것입니다. 해외의 경험에서 배운 대로, 유연한 인센티브·생활 정착 지원·교육에서 근무로 이어지는 연속성을 담아낸다면, 지역의사제는 갈등이 아닌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의료 불균형이라는 오래된 난제를 풀어내는 길, 결국 사람을 남게 만드는 조건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Microsoft Copilot 생성 이미지

 

※ 김진오 뉴헤어모발성형 외과 원장은 진료와 연구를 병행한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매일 만나며, 국내외 학술지에 연구 논문을 꾸준히 발표한다. 진료실 밖에서는 35만 구독자의 유튜브 채널 ‘뉴헤어 프로젝트’, 블로그 ‘대머리블로그’, 저서 ‘참을 수 없는 모발의 가벼움’ · ‘모발학-Hairology’ 등으로 대중과 소통한다. 현재 성형외과의사회 공보이사 및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학술이사로 활동 중이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처방전 없는 이야기’에서는 진료실 안팎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의학·의료 정책·사람에 관한 생각을 담백하게 풀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