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 박현주, 李대통령 앞에서 쏟아낸 '금융시장 자성론'..."부동산 대출 중심 성장 고쳐야"
"창업자에 황금주 도입 검토 필요"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모처럼 공개석상에 나와 정부의 벤처·창업 정책에 대한 견해와 금융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쏟아냈다.
해외 사업에 주력하며 좀처럼 국내에서 발언하지 않았던 박 회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행사에서 직접 발언하며 금융권과 산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10일 서울 마포 프론트원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서 박 회장은 정부가 150조원 규모로 확대 조성하겠다고 밝힌 국민성장펀드 계획을 듣고 "마음이 뭉클했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어젠다는 금융을 하는 사람으로서 보면 거의 완벽하다"며 "특히 대통령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증권업계 인사로는 유일하게 행사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금융, 잘못된 성장 경로 걸어왔다"
박 회장은 국내 금융산업이 부동산 대출에 치중해 성장해 온 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작년 벤처투자 규모가 11조원 정도, 올해 상반기 2조5000억원 정도인데 우리나라 예금은 2300조원이 넘어간다"며 "한국은 그동안 부동산 대출 중심으로 대체로 성장했다. 금융기관들이 대출에 익숙해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이건 고쳐야 할 것 같고 저도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기관의 수익 구조를 자성하는 동시에 젊은 창업가를 위한 제도적 보완을 제안했다. 박 회장은 "좋은 인재를 친구로 끌어들이고 싶은데 그럼 지분율이 떨어지고 회사 컨트롤이 어렵다"며 "저희는 필요없지만 젊은 친구들에게는 '골든 셰어'같은 것을 주는 것도 괜찮지 않나 생각한다"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창업자 경영권 보호 장치인 황금주(골든 셰어)는 소수 지분만으로도 중요한 의사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박 회장은 "회사지분 컨트롤이 어렵다"며 "일부 회사에 한해 젊은 창업자들에게 골든셰어 같은 것도 주는 게 좋지 않겠나"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8시간만 일해서 성공한 창업자는 없다"
박 회장은 청년 창업자들에게 현실적인 조언도 쏟아냈다.
그는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창업은 더욱 그렇다"며 "창업한 이후 직원들 월급날이 그렇게 빨리 왔다. 회사도 적자인데 지금도 그걸 잊어버릴 수가 없다"고 회상했다.
이어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8시간 일해야 하지만, 창업자는 12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고 말하며 "8시간만 일해서 성공할 창업자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오피스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객기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젊은 창업자는 불가능한 상상을 해볼 필요가 있다"며 외환위기 당시 미래에셋을 세운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한국이 IMF로 무너지는 걸 보며 '저축에서 투자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미래에셋의 슬로건도 저축에서 투자로다"라고 말했다.
그는 "창업자의 앞에는 여러 선택지가 있지만 하지 않는 것도 용기"라며 "하지 않아야 할 건 선택하지 않아야 하고, 방향이 옳으면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학생 머리 앞에 '나는 혁신하면서 산다. 내가 하는 일은 혁신이다'라고 적어놨으면 좋겠다"며 "혁신하는 사업가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랜만에 외부 발언 나선 '은둔의 창업자'
박 회장의 이번 행보는 단순한 행사 참석을 넘어 업계의 시선을 끌었다.
1997년 외환위기 속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세워 고객자산 1000조 규모 그룹으로 키운 그는 국내보다 해외 사업에 무게를 두며 외부 발언을 자제해왔다.
공식 기자간담회는 2015년 KDB대우증권 인수 발표가 마지막이었고, 최근 활동도 사내 유튜브 출연이나 해외 학회 연설에 그쳤다.
특히 이번 발언은 금융당국 권고에 따라 이달 그룹 책무구조도에 '미래에셋증권 글로벌 전략가(GSO)'로 이름을 올린 직후라 더욱 주목받았다.
박 회장은 수년간 비상근 회장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았으나, 책임 경영을 강조하는 업계의 변화에 동참했다. 글로벌전략가(GSO)로서 미래에셋의 해외 사업을 진두지휘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 내부통제의 권한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책무구조도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을 비상근 미등기 임원으로 남겨뒀다. 경영 전면에는 나서지 않지만, 책임에서는 물러서지 않는다는 의중이 엿보인다.
박 회장이 이 대통령 앞에서 금융 구조를 비판하고 창업 제도를 건의한 것 역시 다음세대 창업자들에 대한 창업가 선배로서의 애정 담은 책임감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앞으로 그의 행보에도 업계의 관심이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