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DX 실적으로 '실탄' 채워 반도체 미래에 올인"

반기보고서 심층분석 상반기 매출 153.7조 원, DX 선전 속 DS에 20.7조 원 집중 투자 'AI 시대' 겨냥한 초격차 승부수

2025-08-17     최진홍 기자

삼성전자의 상반기는 '현재의 안정'과 '미래를 향한 담대한 투자'라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로 요약된다. 스마트폰과 가전을 아우르는 DX(디바이스 경험) 부문이 견조한 실적을 내며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는 동안 회사는 확보한 '실탄'을 인공지능(AI) 시대의 패권을 좌우할 반도체(DS) 부문에 집중적으로 쏟아붓는 전략적 행보를 명확히 했다. 

14일 공개된 반기보고서에 담긴 숫자들은 단순한 실적 발표를 넘어, 삼성전자가 구상하는 미래 기술 지형도와 생존 전략을 잘 보여준다.

사진=삼성전자

굳건한 버팀목 DX, 프리미엄 전략 통했다
올 상반기 삼성전자의 매출을 견인한 일등 공신은 단연 DX 부문이다. TV, 스마트폰, 생활가전 등을 포함하는 DX 부문은 상반기에만 95조 2,874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6.6% 성장했다. 

전체 매출의 62%에 달하는 압도적인 비중이다.

실제로 16일(현지시간) CNBC 등 외신은 시장조사업체 캐널리스를 인용해 올해 2분기 미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출하량 기준 점유율이 31%로, 전 분기 23%에서 8%포인트 급등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기간 1위인 애플의 점유율은 56%에서 49%로 하락하며 양사 간 격차가 좁혀졌다.

11년 전인 2014년, 삼성이 대화면 갤럭시 스마트폰으로 아이폰을 눌렀던 상황을 재연하는 모양새다. 당시 애플은 뒤늦게 대화면을 적용한 아이폰6를 출시하고서야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었다. 업계에서는 올해 폴더블폰과 AI폰이 과거 대화면폰과 같은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의 약진은 지난달 출시한 갤럭시 Z폴드7과 Z플립7, 얇고 가벼운 디자인의 갤럭시 S25 엣지 등 신제품 라인업이 이끌고 있다. 특히 폴더블폰의 내구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면서 판매량이 급증했다. 한 사용자가 Z폴드7을 20만 번 이상 접는 내구성 실험을 생중계한 영상은 유튜브에서 15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소셜미디어 분석업체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삼성 프리미엄폰 관련 언급의 83%가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이었다.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군도 삼성의 강점으로 꼽힌다. 캐널리스의 애널리스트 루나르 뵈르호브데는 "삼성 스마트폰은 650달러 저가형부터 2400달러 최고급형까지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모든 소비자를 공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애플 아이폰의 가격대는 829달러에서 1599달러 사이다.

중동 시장에서도 2분기 점유율 34%로 1위를 차지하며 2위 샤오미(17%)와의 격차를 지난해보다 두 배로 벌렸다. 중저가 갤럭시 A시리즈와 갤럭시 S25 시리즈의 판매 호조가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반면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밀려 3위(17%)에 그쳤다. 샤오미(19%)와 아프리카 시장의 강자 트랜션(18%)이 각각 1, 2위를 차지하며 삼성을 앞질렀다. 저가 스마트폰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이 동남아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국내 시장에서만큼은 적수가 없음을 증명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1~7월 국내 스마트폰 누적 판매량 점유율은 82%에 달했다. AI 기능을 대폭 강화한 갤럭시 S25 시리즈의 꾸준한 인기와 S펜을 과감히 포기하며 내구성과 디자인을 개선한 Z폴드7의 초기 흥행이 시너지를 낸 결과다. 

여기에 비스포크(BESPOKE) 가전도 고객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며 브랜드 가치를 높인 것이 주효했다. 특히 하만(Harman) 부문 역시 디지털 콕핏, 카오디오 등 전장 사업 호조에 힘입어 6.3%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DX 부문의 실적에 힘을 보탰다.

DX 부문 전체가 삼성전자의 안정적인 '캐시카우'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다.

사진=삼성전자

반도체에 21조 원을 쏟아부은 이유
반도체는 미래 비전 전략으로 채워진 분위기다. 실제로 이번 보고서의 핵심은 단연 DS(반도체) 부문의 투자 현황이다. DS 부문의 상반기 매출은 53조 61억 원으로 전년 대비 2.5% 성장에 그쳤지만, 그 자체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음을 잘 보여줬다.

삼성전자는 상반기 시설투자에 총 23조 964억 원을 집행했다. 그리고 이 중 무려 89.7%에 달하는 20조 7,261억 원을 DS 부문에 쏟아부었다. 투자 목적은 '메모리 차세대 기술 경쟁력 강화'와 '시스템 반도체 Advanced 노드 CAPA 확보'라고 명시했다.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AI 시대의 폭발적인 수요가 예상되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등 차세대 메모리 시장의 주도권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리고 둘째, 글로벌 팹리스 기업들의 AI 칩 생산 주문을 수주하기 위한 파운드리 초미세 공정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최근 애플 및 테슬라 물량 확보로 기세를 올리는 중이기도 하다.

실제로 애플은 차세대 아이폰에 들어갈 핵심 칩 생산을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 공장에 맡기기로 했다. 업계는 이 칩이 '스마트폰의 눈'으로 불리는 이미지센서 '아이소셀'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이어져 온 애플과 일본 소니의 독점적 협력 관계를 깨는 일대 사건이다. 테슬라와 약 23조 원에 달하는 차세대 인공지능(AI) 칩 'AI6' 생산 계약도 체결했다.. 내년부터 삼성의 최첨단 2나노 공정을 통해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서 양산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가 투자 비율을 올리는 것은 당장의 이익보다 3~5년 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를 대비해 미리 생산 능력(CAPA)과 기술 격차를 벌려놓겠다는 '초격차' 승부수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유형자산 장부금액이 전년 말 대비 소폭(9,195억 원) 감소한 점은, 이러한 천문학적 투자 속에서도 기존 자산에 대한 감가상각과 효율적 관리를 병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과제도 있다. 스마트폰용 OLED 패널이 주력인 SDC(디스플레이) 부문은 상반기 매출이 12조 2,469억 원으로 전년 대비 6% 감소하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둔화와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거센 추격에 따른 경쟁 심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삼성디스플레이 사옥. 사진=삼성디스플레이

글로벌 시장 지배력은?
삼성전자의 글로벌 시장 지배력은 여전히 막강했다. 

상반기 수출액은 110조 원을 넘어서며 내수의 10배에 육박했다. 특히 미주(33.4조 원)와 중국(28.7조 원)이 전체 수출의 56%를 차지하는 핵심 시장임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희비는 갈린다. 반도체 기준 올해 상반기 중국 수출액은 28조 7,91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2조 3,452억 원)보다 약 11% 감소했으나 같은 기간 미국 수출액은 33조 4,759억 원을 기록하며 중국을 앞질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시장인 북미와 중국에서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판매망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그만큼 크게 노출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삼성전자가 수원, 화성, 평택 등 국내 핵심 생산기지 외에도 전 세계에 촘촘하게 생산 및 판매 거점을 운영하는 것은 이러한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한 전략적 포석인 이유다.

주요 5대 매출처(애플, 도이치텔레콤 등)의 비중이 13% 수준이라는 점도 긍정적이다. 이는 특정 고객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아 안정적인 사업 운영이 가능함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