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AI는 K넷플릭스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IT큐레이션]
완벽하게 독립된 AI 존재할 수 없어 플랫폼 다각화 대비해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4일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 참여한 15개 팀을 대상으로 서면 및 발표 평가를 진행한 결과 네이버클라우드, 업스테이지, SK텔레콤, NC AI, LG AI연구원을 선택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형 소버린 AI 전략도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다만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소버린 AI는 정말 가능한 것일까?
이완용 보듯이 할 필요는 없다. "어찌 그런 생각을!" 이라며 선비처럼 장탄식을 내뱉을 필요도 없다. 대한민국은 몇몇 기업들이 공공기관에 기생하며 한국의 소프트웨어 시장을 쭉쭉 말아먹고 있는 유구한 과거와 현재를 가진 나라가 아닌가. 또 거하게 뒤통수를 맞는 것 아닌가라는 공포를 떠올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천하의 샘 올트먼도 GPT-5를 박사에 비유했다가 마케팅 천재 소리를 듣는 마당에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천천히 짚어볼 필요는 충분하다.
소도버린 AI? 21세기 한글 창제
소버린AI는 한 국가가 자체 인프라, 데이터, 인력을 활용해 AI 시스템을 개발, 통제, 배포하고 이를 자국의 가치, 문화, 전략적 이해관계에 부합하도록 조정하는 '역량'을 의미한다.
그 핵심 요소에 대해서는 누군가 깔끔하게 정리한 것은 없다.
다만 업계에서는 대체적으로 국가의 경계 내에서 데이터의 수집, 저장, 처리, 공유 방식을 통제하는 능력인 데이터 주권 (Data Sovereignty), 데이터센터 및 슈퍼컴퓨터와 같은 물리적 인프라와 소버린 클라우드와 같은 가상 인프라에 대한 소유권과 통제권을 확보하는 개념인 인프라 주권 (Infrastructure Sovereignty), 독자적인 AI 모델을 개발하면서 하드웨어(반도체 등)와 인재 같은 핵심 구성요소를 국내 또는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 네트워크 내에서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인 알고리즘 및 공급망 자율성 (Algorithmic and Supply Chain Autonomy)을 핵심 요소로 본다.
소버린 AI를 단순히 LLM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면 수원 밑 오산인 이유다. 단순히 기술적 우위를 점하는 것을 넘어 디지털 시대에 국가의 전략적 자율성, 안보,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한 필수적인 개념으로 봐야 한다. 연료(데이터)와 공장(인프라)은 물론 숙련된 인부(알고리즘 및 공급망)까지 모두 필요한 종합예술이다.
현재 소버린AI에 가장 가까운 나라는 역시 천조국 미국이다. 여러모로 시끄러운 구석이 많지만 우선은 민간 부문이 주도하는 시장 중심적 접근 방식을 바탕으로 글로벌 AI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에 성공하고 있다.
당장 최근 발표된 미국의 AI 행동 계획(America's AI Action Plan) 을 보면 규제 완화를 통한 혁신 가속화, 인프라 확충, 하드웨어, 모델, 소프트웨어를 포함하는 '풀스택 AI 수출 패키지'를 마련하는 큰 그림이 마치 군사작전처럼 나열되어 있다. 연료(데이터)와 공장(인프라)은 물론 숙련된 인부(알고리즘 및 공급망)를 모두 가진 AI 팍스 아메리카나다. 그리고 중국은 중국답게 국가가 주도하는 중앙집권적 모델을 추구한다. '디지털 실크로드'와 '글로벌 AI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통해 자국의 기술 스택과 거버넌스 모델을 키우는 중이다.
유럽연합은 흥미롭게도 '삐딱'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의 대서양 동맹을 맺은 유럽은 프로젝트 프리즘으로 각 국 정상들의 휴대폰이 '털리고' 있다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절규도 외면한 체 미국과의 정보공조를 신의 계시로 삼아왔다. "너희들 정보 다 새고 있다고!" "모, 모, 몰라. 계속 모를거야" 그러나 아쉽게도 구글이나 메타 및 아마존과 같은 미국 기업들에게 자국의 디지털 영토가 '털리는' 것에는 민감한 편이다. 코로나와 홍콩 시위만 아니었으면 중국과 동맹까지 맺을 기세였다.
지금은 규제 권한을 활용하는 AI 거버넌스 카드를 전면에 걸었다. 잊혀질 권리부터 시작해 AI법까지 이어지는 "실리콘밸리 나가라" 감성으로 소버린AI를 키우는 중이다. 쉽게 말하면 "너, 규제!"를 외치며 자국 AI 영토를 지키는 신박한 전략이다.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의 방식을 소버린AI로 부를 수 있을지는 모호한 구석이 있다. 다만 큰 틀에서 소버린AI가 LLM 하나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는 점과, AI라는 작동 역량을 말하는 것이라면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모든 행위가 소버린AI라는 해석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 측면에서 지역 강국(regional dynamos) 한국의 상황을 바라보면 슬픈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패권국가의 힘을 보유하지는 못한 상태에서, 심지어 유럽처럼 삐딱하게 나갈 수 있는 여지까지 없는 말 그대로 애매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캐나다처럼 같은 처지의 국가들이 많으니 위안이라도 삼아야 할까?
소버린AI가 중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소버린AI는 AI를 키우는 역량이며, 그 역량이 없으면 우리는 AI가 관련된 모든 로컬 산업에서 주도권을 외부에 넘겨주게 된다. 이건 디지털 식민지를 넘어 우리 영혼을 도매가로 넘기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딜레마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바로 '연결'이다. 무슨 뜻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충격적이게도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은 물론 한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모든 국가의 소버린AI는, 최소한 "완전무결하게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미국 모델은 한국의 HBM과 같은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고 유럽은 혁신을 위해 미국의 거대 기술 기업에 의존하며, 심지어 중국조차 글로벌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의존한다. 순수한 기술적 고립주의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글로벌 경제의 블록화가 진행되며 여전히 투닥투닥 패권전쟁중이라지만, 지구촌은 어려워도 글로벌 공급망 자체가 교란될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다.
반도체 공장 자국에 지으라 압박하는 미국도 최종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다. 즉 완전한 고립은 없고 완전한 독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정치의 주권이라는 개념도 상황에 따라 국제정치의 일부로 소모되는 상황인데 AI라는 기술이 예외일까? 애초에 완전한 소버린AI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소버린AI가 수출 역군이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 미국의 AI 행동 계획을 봐도 자국의 강력한 AI소버린 구축 포맷을 "동맹국에 잘 수출하겠다"가 핵심이다. 물론 자연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소버린AI는 거대한 최종 시장인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로컬 시장 공략이다. 당연히 시장의 크기는 정해져 있고 성장의 여백이 좁다. 거칠게 말하면 투자받을 매력이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지킬게요"라고 문을 닫아 버리면 그건 스스로의 비즈니스 한계를 미리 설정하는 꼴에 불과하다.
"지키는 방법 알려드려요"라고 판매하는 것이 낫다. 네이버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열심히 소버린AI 판매하겠다는 것도 당연히 비슷한 맥락이다.
결론적으로, 소버린AI는 아이러니하게도 단절과 독립이 아닌 철저한 연결 위에 세워진 연결의 성이다. 소버린AI의 구성도 연결, 비즈니스 방식도 결국은 연결이다. 'AI 풀스택'을 가지고 있으니 소버린AI에 강하다는 자부심을 부리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도 잘 보여준다.
그건 천조국도 못한 것이다. 참고로 풀스택을 가지고 있다며 자신하는 것은, 팹리스에게 묘한 의심을 받아 파운드리 수주에 간혹 미끌어지는 삼성전자 상황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하기를 권고하는 바이다. 풀스택 가졌다고 말하면 멋있어 보이지만 그것 의외로 헛점이 많다.
연결의 게임 소버린AI, 그래서?
당연하지만 국내 대부분의 기업들은 소버린AI가 연결의 성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 소버린AI가 역량의 영역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진짜 결론을 내야 할 순간이다. 그래서, 어떻게?
옛 상황을 하나 짚어보며 하나하나 풀어보자.
2000년대 포털의 시대가 열렸을 당시 전 세계는 구글에게 정복당했으나 한국은 네이버가 막아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말한다. AI 시대도 똑같이 하면 된다고. 그런데 이 주장은 나이브하다. 포털의 시대는 텍스트의 시대지만 지금은 AI라는 역량과 사용자 경험의 시대기 때문이다. 판이 다르다. 한글의 뒤에 숨어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구글의 공습을 막아내기 어렵다.
글로벌 운영체제의 AI가 작동하는 순간, 그 시장에서의 한 영역을 맡아 성과를 내는 것이 유일한 활로라는 주장이 나온 이유다. 모바일 시대를 맞아 안드로이드와 iOS가 세상을 장악했지만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이를 바탕으로 성과를 낸 것처럼, 현실의 국경선을 초월하는 콘텐츠의 분야에서 일부 역할을 맡아 성과를 내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비록 흥미롭기는 해도 최근에는 설득력을 잃는 중이다. 계속 강조하지만 AI는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용자 경험이며 소프트웨어가 보여주던 생태계 그 이상의 생태계다. 역량이다. 포털은 물론 운영체제를 넘어서는 밑그림인데다 흥미롭게도 각 로컬의 세부 산업 영역을 작동시키는 명령어로 봐야 한다. 아무리 거인들이 만들어 놓은 놀이터에서 재미있게 놀며 단물을 빨았다지만, 이제는 우리가 놀이터를 만들 수 있어야 뭐라도 비벼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여기에 소버린AI가 연결이라는 점이 더해지면서 외부에서 안으로 오는 충격에 대한 방어는 물론 우리가 외부로 달려나가는 충격과, 혹은 동맹 및 연대의 전략이 더 촘촘해진다. 소버린AI가 비즈니스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우리가 지금 소버린AI를 말하는 이유다.
물론 결이 다른 시각도 있다. 특히 여러 주장중에서도 "가능하겠어?"라는 질문이다. 미국과 중국도 '소버린AI' 하는 중 아닌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결국은 기업들이 소버린AI를 빌미로 정부 돈 털어먹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 아닌가? 방어할 역량은 되고? 그리고 갑자기 수출? 너무 급조한 티가 나는데? 이런 질문들도 여전히 무성하다.
결론적으로 무엇이 옳은지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각자의 주장이 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소버린AI가 정말 AI에 대한 역량의 문제라면 피할 수는 없다. 이후 수출까지 한다면 연결의 관점에서 독립과 고립에 대한 세밀한 입장차이를 재정립하거나,나아가 수출의 성과에 대한 지속가능한 역량 정도는 입증해야 한다. 이러한 확신은 있어야 정부의 돈이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여기서 즐거운 상상을 한다. 만약 소버린AI가 성공하고, 미국과 중국은 아니겠지만 제3지대에 수출까지 가능하다면 어떨까? 우리 손으로 글로벌 시장에 깔린 많은 안드로이드와 iOS 하나 정도는 쥘 수 있다. 수 백개의 안드로이드와 iOS 중 하나를 만들어 수출해 그 판까지 넓히면 당연히 그와 비례해 한국의 디지털 영토도 늘어난다.
"K안드로이드를 만들자" "K넷플릭스를 만들자"는 말은 공허하지만 AI 시대를 맞아 "소버린AI를 제대로 만들어 보자"는 약간 가능성이 있다. AI 시장으로 보면 거대 플랫폼이 아직 경쟁중이고, AI는 도구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산업에 스며들어 작동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산술적으로는 소버린AI가 UN 가입국만큼 존재할 수 있고, 또 AI는 산업 패러다임 그 자체다. 빠르고 실력있게 튀어 나가면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증명해야 할 것들이 많다. 다만 우선은 이 단계에서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고 전후좌우를 살피는 것이 옳은 이유다. 물론 그 개념과 작동 원리는 제대로 읽힌다는 전제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