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NCC '동상이몽' 한화·DL, 원료 공급 갈등 점입가경

에틸렌 등 구매 가격 차이 발생해 한화 “차이 없애야” DL“기존대로 거래해야”

2025-08-14     박상준 기자
여천NCC 공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여수지역 최대 석유화학업체 ‘여천NCC’를 둘러싼 양대주주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대립이 격해지고 있다. 여천NCC가 장기 적자에 빠지면서, 추가 자금 지원과 빠른 엑시트 사이서 양사 의견이 갈리고 있다.

양사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하는 문제도 불거졌다. 바로 원료 공급 계약 관련 문제다. 특히 DL은 한화가 여천NCC와의 원료가 갱신계약에서 가격 하한을 없애자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불공정 거래가 발생한다고 주장 중이다. 다만 한화는 “DL이 본인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원료를 거래하려고 하면서 협상이 고착됐다”고 반박했다.

DL “한화, 에틸렌 저가에 가져가려 해…여천NCC 손해 유발”

여천NCC는 1999년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각자의 나프타분해설비를 통합해 공동 출자한 회사다. 양사가 지분을 50%씩 보유하고 있다. 한때 1조원대 영업이익을 내기도 했지만, 2022년부터 적자 전환했다. 2022년 3477억원, 2023년 2402억원, 지난해 236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경영이 악화되면서 그간 양사가 여천NCC를 통해 구매하던 에틸렌·C4R1 등의 석유화학제품의 적정 구매가를 두고서 이견이 발생하고 있다.

DL은 “우리는 여천NCC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단가로 에틸렌을 거래하며, 여천NCC의 자생력을 키우고자 했다”며 “반면 한화는 여천NCC가 손해볼 수 밖에 없는 가격만을 고수하는 등 자사에게 유리한 조건만 고집했다”고 주장한다.

한화가 제시했다는 조건대로 원료가 공급 가격 계약이 체결된다면 여천NCC의 부실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적정 가격 경쟁력이 보장되지 않는 가격정책이 현금흐름과 수익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DL로 하여금 여천NCC에 대한 단기적 자본 지원을 꺼리게 만들고, 근본적 원인 개선(원료가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조성했다는 설명이다.

DL은 추가로 “한화는 올 초부터 대주주로서의 의무를 망각하고 여천NCC 외 다른 석유화학회사로부터 에틸렌을 구매하기 위해서 접촉하는 등 여천NCC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화 “25년간 DL이 한화보다 에틸렌 더 저렴하게 가져가…국세청 철퇴”

한화도 강수를 꺼내들었다. 민간기업으로서는 드물게도 자회사 세무조사 결과를 선공개한 것이다. 통상 기업 입장에선 과세당국의 세무조사 사실이 공개될 경우, 악재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은 만큼 상당한 리스크를 짊어진 것이다.

한화는 입장문을 통해 “DL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여천NCC는 올해 초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DL케미칼에 판매하는 제품에 대해 ‘저가공급’으로 법인세 등 추징액을 1006억원을 부과 받았다”고 밝혔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국세청은 DL과 여천NCC의 거래가 시장가보다 저렴하게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이를 통해 DL이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보고 법인세를 추징한 것이다.

과세 대상 물품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개년 동안 이뤄진 여천NCC와 양대주주간 내부거래 물품 전체다. 에틸렌, C4R1, 이소부탄 등이다. 추징 세액 1006억원 가운데 DL과의 거래로 발생한 추징액이 962억(96%)원이었고, 한화와의 거래에선 44억(4%)원에 머물렀다.

국세청에서 문제삼은 거래는 1999년 합작 당시 체결된 이후 2024년 12월 종료됐다. 이후 양사가 새로운 원료공급계약을 갱신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발생한 것이다.

한화는 “국세청 과세와 현재 석유화학 시장 상황을 반영해 새로운 시가 계약 체결을 주장했다”며 “DL의 반대로 원료공급계약이 체결되지 않고,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임시 가격 형태로밖에 거래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DL 측의 ‘한화가 낮은 가격으로 에틸렌을 구매하길 원하면서 여천NCC의 손해를 누적시켰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낮춘 가격이야말로 DL이 그간 거래하던 가격과 같으며, 2025년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과 같은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애초에 거래 가격이 이전 계약과 같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거래가 한창이던 2006년은 에틸렌 시장이 호황기였고, 2025년은 유례없는 공급 과잉으로 불황이 닥쳤기 때문이다. 현시점에 따라 시가를 산정한다면 에틸렌 가격은 저렴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화는 “에틸렌 거래량은 한화가 연간 100만톤, DL은 40만톤 수준으로 한화가 2배 이상 많이 사용함에도, 대량 거래에 따른 물량 할인도 받지 못해왔다”며 “한화는 그간 하락한 시장가격에 따라 새로 계약하자는 주장이고, DL로서는 시장 가격으로 계약하면 본인들이 전년 대비 손해를 보게 되니 반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화가 많이 가져가는 에틸렌은 시장 가격보다 높게 가져가고, DL이 많이 가져가는 C4R1 등은 시장 가격 대비 할인된 가격조건으로 계약하고자 하는 심산이라는 설명이다.

국세청 역시 세무조사 과정에서 한화의 거래가를 시장 표준가로 인지하고 조사했다. 한화는 “국세청 가이드라인에 따라 시장가격으로 계약이 새롭게 체결돼야 한다”며 “국세청이 불공정거래 행위로 판단해 과세 처분을 내렸다면 수범자인 민간 기업은 이에 따라 거래 조건을 변경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DL측 주장대로 거래 조건을 유지한다면 또다시 국세청으로부터 불공정거래를 지적받고, 세금 추징도 당하리라는 우려다.

추가 자금 지원 놓고도 대립…근본 원인에 원료 공급 갈등

한편 양사는 앞서 여천NCC의 워크아웃 대처 방안에 대해서도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여천NCC는 경영상황 악화로 이달 말까지 3100억원의 운영 자금이 부족할 전망이었다. 이에 한화는 지난달 30일 이사회 승인을 거쳐 15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으나, DL이 추가 자금 지원을 거부하고 워크아웃 신청을 주장했다.

한화는 “주주사가 지원을 하지 않으며 여천NCC는 당장 디폴트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자구책을 실행한다면 속도가 느릴 수는 있으나 개선의 여지가 충분하고 적자를 탈피할 수 있다”며 주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이어 “여천NCC가 단기 자금 부족을 이유로 디폴트할 경우, 지역사회, 근로자, 정부의 화학업계 구조조정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명확하다”며 “한화와 DL은 25년간 여천NCC 공동 경영을 해온 터라 여천NCC 경영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양사가 1500억원씩 지원할 경우 정상화되는데 문제 없다”고 강조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여천NCC지회 조합원이 12일 서울 중구 한화빌딩 앞에서 '한화그룹의 여천NCC에 대한 신뢰와 지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반면 DL은 “부실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이에 따른 해결방안 마련이 가장 급한 문제”라고 반박했다.

“아무런 설명과 원인 분석 없이 증자만 남발하는 것은 여천NCC의 정상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다”며 “무작정 자금만 투입하는 것이야 말로 책임경영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한화를 비판했다.

결국 갈등 끝에 DL이 한발 물러서며 지난 11일 유상증자로 2000억원 규모 자금 지원을 결정했으나, 양사의 불만은 여전히 남았다.

특히 DL이 주장한 여천NCC 부진의 ‘근본적 원인’에 양사의 원료공급계약 동상이몽이 있는 만큼 향후에도 치열한 법리 다툼이 발생하리란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