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4사 ‘각양각색’ 위기 돌파 전략은?

중동 산유국, COTC 시설 가동 총력…‘원유→화학제품’ 석화 사업 확대 ‘에쓰오일’·배터리 시장 주력 ‘SK이노’ GS칼텍스·HD현대오일, 친환경 에너지 기조 발맞춰

2025-08-13     장지현 기자

국내 정유업계가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과 중동·중국발 공급 과잉, 탄소중립 시대 본격 도래 등 복합적인 위기 속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GS칼텍스·S-OIL·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4사는 각자의 방식으로 위기 돌파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에쓰오일 공장 전경. 사진=에쓰오일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내 정유사들은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과 같은 석유 제품을 생산하고 이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납사를 만들어 석유화학 공정에 투입하고 있다. 에너지 빈국인 한국의 정유산업 특성상 원유를 해외에서 수입해 오고, 이를 정유공장에서 처리해 국내외에 판매·수출하는 구조다. 

국내에 원유를 들여오는 주요 국가 중 중동은 평균 60%대를 유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중동 산유국들이 단순 원유 수출을 넘어 산업 구조 변신에 나서며 국내 정유사에 위협이 가해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사우디아람코, 카타르 등 중동 산유국들은 ‘COTC(Crude Oil TO Chemicals)’ 공법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COTC 공법은 원유를 정제하지 않고 곧바로 에틸렌 등 화학제품으로 생산할 수 있어 기존 방식보다 생산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게 된다. 기존 방식 대비 석유화학 제품 생산 비중을 대폭 높일 수 있어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도 유리하다.

특히 산유국은 원유 수입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글로벌 경제적 파급력도 커질 전망이다. 이들은 2027년까지 8개의 COTC 시설을 본격 가동하겠다는 계획이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탄소 중립 목표가 확산되면서 석유와 같은 화석 연료 대신 수소, 바이오 연료, 전기 등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기차 보급 확대는 휘발유, 경유 등 기존 정유 제품에 대한 수요 감축을 불러오는 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인도의 증설, 글로벌 공급과잉이 심화되며 이미 국내 정유 업계의 수익성은 타격을 입고 있다. 이제는 기존 정유·정제사업 중심 구조로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단 분석이다.

‘非정유’ 사업으로 고개 돌리는 정유업계

위기 상황 속에서 국내 정유 4사는 화학, 친환경 에너지, 소재 등 각사의 강점을 살린 비(非)정유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 내 SBM(Solid Bed Merox) 공정. 사진=SK이노베이션

S-OIL은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사업에 집중한다. 특히 모회사인 사우디 아람코와의 협력을 통해 국내 석유화학 역사상 최대 규모인 샤힌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석유화학 사업 비중을 내년까지 25%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온산국가산업단지 내 에쓰오일 울산 콤플렉스에 인접한 약 48만 평방미터 부지에 스팀 크래커, TC2C(원유를 석유화학 연료로 전환하는 기술) 시설을 비롯한 에틸렌 생산 및 저장 설비가 건설되고 있다. 본격 가동되면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벤젠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게 된다.

에쓰오일은 생산한 에틸렌을 원료로 플라스틱을 비롯한 다양한 합성 소재 생산에 사용되는 폴리에틸렌을 자체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25일 기준 프로젝트 진행률은 77.7% 수준이며 내년 상반기 기계적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석유부터 전기까지 전체 에너지 벨류체인을 통합하는 ‘넷제로(Net Zero)’ 로드맵을 추진 중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SK E&S와 합병, 올해 자회사 SK온은 SK엔무브와 합병하는 등 대대적인 리밸런싱을 단행했다.

특히 최근 주력하고 있는 부분은 SK온을 통한 배터리 사업 진출이다. 석유화학 산업의 불확실성 및 전기화 시대로의 진입이 가속화되고 있어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서야 한다는 게 SK이노의 입장이다.

장용호 SK이노 사장은 지난 기업가치 제고 전략 설명회에서 “에너지 기업들에게 새로운 혁신이 요구되고 있다”며 “환경 변화에 따라 지난해부터 전반적인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속가능항공유(SAF)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폐플라스틱 재활용, 배터리 소재 개발 등 순환경제 사업 구조에 총력을 가하는 중이다.

에쓰오일 공장 전경. 사진=에쓰오일

GS칼텍스는 ‘지속가능하고 수익성 있는 성장’이라는 로드맵을 바탕으로 친환경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저탄소 전유&화학 산업단지로 거듭나고자 전국 주요 사업장엔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 재생에너지 직접 도입을 계획해 탄소 감축 행보를 이어갔다. 핀란드 네스테로부터 SAF(지속가능항공유)를 공급받아 상업 수출을 하고, 수소 생산 및 유통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미래형 에너지 솔루션 제공 기업으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또 인공지능(AI) 산업 발전에 발맞춰 데이터센터 액침냉각 사업에도 나서고 있다.

2023년 국내 최초로 액침냉각유 ‘Kixx Immersion Fluid S’를 출시한 이후 액침냉각유 제품 실증 및 시장 확대를 위해 삼성SDS, LG유플러스, 데이터빈, SDT 등 국내외 데이터센터 산업 생태계 내 기업들과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액침냉각유 제품을 총 4종으로 세분화해 데이터센터 뿐만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에도 적용 가능하도록 제품 라인업을 확대했다.

HD현대오일뱅크도 친환경 에너지 기조에 맞춘 '화이트 바이오'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폐식용유와 같은 식물성 원료를 활용해 바이오 항공유와 바이오 디젤을 생산하는 공정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 최초로 항공사에 바이오 항공유를 수출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충남 서산 대산항 일원에는 그린수소와 암모니아 등 신재생에너지 생산시설을 갖춘 친환경에너지 복합단지를 조성한다.

총 8000억원을 투자해 오는 2032년까지 대산항 인근에 바이오 연료관련 시설(1단계), 폐플라스틱 열분해 정제유 생산시설(2단계), 청정 암모니아 활용수소 생산시설(3단계) 등을 순차적으로 구축한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