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은 생존자가 될 수 있을까? [IT큐레이션]
유튜브 프리미엄 라이트 구원투수? '찻잔 속 태풍'일까, 국내 음원 시장의 '마지막 경고'일까
유튜브가 공정거래위원회의 '끼워팔기' 지적에 대한 시정 조치로 동영상 광고만 제거한 '유튜브 프리미엄 라이트' 요금제를 조만간 출시한다. 700만 명이 넘는 유튜브 뮤직 이용자를 시장에 풀어놓는 빅뱅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지각 변동의 기회를 틈타 국내 음원 플랫폼들이 빼앗긴 왕좌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감돈다. 무엇보다 국내 시장 최강자 멜론의 기대감이 크다. 그러나 이들이 공정위 찬스에만 매몰되어 변화를 거부한다면 일은 복잡해진다. 판은 분명 흔들리겠지만 거대한 흐름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공정위 찬스는 토종 플랫폼들에게 주어진 기회가 아닌 근본적인 혁신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마지막 경고'에 가깝다.
제국의 몰락
한때 '음악'의 동의어였던 멜론의 추락은 단순한 2위로의 전락이 아닌 한 시대의 종언을 상징한다.
숫자부터 처참할 정도로 명확하다. 2024년 유튜브 뮤직이 750만 명을 돌파하며 690만 명대로 내려앉은 멜론을 추월하는 '골든 크로스'가 발생한 후 현재 유튜브 뮤직은 1000만 이용자를 바라보는 압도적 1위가 되었고, 멜론은 600만 명대로 주저앉았다.
멜론의 몰락 배경은 여러가지로 점쳐진다. 먼저 브랜드 신뢰의 문제다. 당장 10년 넘게 제값을 내고 충성해 온 자신과 달리 신규 가입자나 통신사 제휴 이용자는 반값에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박탈감은 한때 커뮤니티를 크게 들썩이게 만들었다.
성의 없는 고객 응대도 문제였다. 문제 제기를 위해 1:1 문의를 하면 이용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복사-붙여넣기식의 무성의한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여기에 2019년 SKT 자회사 시절 유령음반사를 통해 저작권료 수십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신뢰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금은 많은 문제가 해결되거나 지나갔지만, 이는 단순한 운영 미숙이 아닌 플랫폼의 근간을 뒤흔드는 도덕성 문제였다는 점에서 타격이 컸다. 여기에 해지를 시도해야만 마지못해 할인 쿠폰을 던져주는 '해지 방어' 정책은 "이들은 나를 존중하는 고객이 아닌, 돈줄로만 본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이건 플랫폼 신뢰의 문제였다.
음악 앱의 심장인 '음악 추천'과 '차트'가 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점도 논란이다. '톱 100' 차트는 특정 아이돌 팬덤의 스트리밍 총공(총공격)으로 점령당하며 대중성을 잃은 지 오래였고, 일반 이용자들에게는 그들만의 리그로 비쳐지며 균열은 더욱 심해졌다. 심지어 음원 사재기 논란이 불거진 닐로, 숀 같은 사례는 이러한 불신을 증폭시켰다. 결국 멜론은 2020년 실시간 차트를 폐지하는 극약처방을 내렸지만 이미 떠나간 대중의 신뢰를 되돌리기엔 늦은 뒤였다.
잦은 기술적 결함도 이용자들의 피로감을 가중시켰다. 2019년 방탄소년단 신곡 공개 직후 두 차례나 서버가 다운되는가 하면 특정 앨범의 스트리밍이 갑자기 중단되고, 안드로이드 오토와의 호환성 문제로 재생이 끊기는 등 기본적인 안정성마저 흔들렸다. 음원계의 유튜브 댓글이라 불릴 만큼 방치된 악성 댓글과 팬 코스프레, 과도한 친목질은 음악 감상의 경험 자체를 심각하게 훼손하기도 했다.
여기에 '공식 음원'의 경계를 무너뜨린 유튜브 뮤직의 판 흔들기는 일종의 치명타였다. 유튜브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내 플레이리스트에 담을 수 있는 무한한 확장성 앞에서 멜론의 한정된 라이브러리는 초라할 뿐이었다.
심지어 앱은 무겁고 산만했으며, 글로벌 K팝 시대가 열렸으나 해외 팬들이 이용하기 너무나 어려운 '국내용 서비스'에 머물렀다. 여기에 월 1만4900원이라는 작지 않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이 광고 없는 쾌적한 영상 시청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자 멜론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유튜브 프리미엄을 쓰는데, 내가 굳이 멜론에 매달 만 원씩 추가로 낼 이유가 뭐지?" 국내 플랫폼들이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구조적인 '체크메이트'다.
새로운 포식자에 무릎 꿇다
거인 멜론이 흔들리자 다른 토종 플랫폼들은 말 그대로 전멸 수준의 피해를 보았다. 한때 통신사 KT를 등에 업고 멜론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혔던 지니뮤직은 380만 명대에서 200만 명대로 추락했으며 SK스퀘어의 플로(FLO)와 오랜 역사의 벅스 역시 처참한 이용자 수 감소를 겪으며 군소 플랫폼으로 전락했다.
특히 플로의 경우 멜론을 놓아준 SK스퀘어의 또다른 음원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며 최근 ‘1억 곡 라이브러리’ 등의 성과를 냈으나 큰 힘을 쓰지는 못하는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글로벌 거인 '스포티파이'까지 각성했다. 세계 1위의 명성이 무색하게 한국 시장에서 제대로 헛발질했던 스포티파이는 2024년 10월 자신들의 오만과 실수를 인정하고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이라는 초강수로 순식간에 시장을 흔들었다.
e스포츠 기업 T1의 행사 'LCK 로드쇼 2025 T1 Home Ground (T1 홈그라운드)’에 메인 파트너사로 참여하며 한국 시장 이해도를 키워가는 중이다.
'프리미엄 라이트'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는가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프리미엄 라이트'가 출시된다. 유튜브 프리미엄에서 뮤직 기능을 빼고 가격을 낮춘 이 상품이 국내 업체들에게 숨통을 틔워줄 수 있을까?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선 시장의 기대는 '라이트'로 갈아탄 이용자들이 새로운 음원 앱을 탐색할 것이라는 데 있다. 그러나 이는 두 가지 현실을 간과한 것이다. 먼저 사용자의 강력한 '관성'이다. 이미 수년간 유튜브 뮤직을 사용하며 쌓아온 플레이리스트, 청취 이력으로 정교하게 훈련된 나만의 알고리즘은 강력한 자물쇠 효과(Lock-in)를 가진다.
고작 몇천 원의 할인을 위해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앱에 적응하는 수고를 감수할 이용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더 근본적으로 라이트 요금제는 사람들이 멜론을 떠났던 진짜 이유들을 단 하나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실제로 라이트가 출시된다고 해서 멜론의 차트가 공정해지거나 추천 알고리즘이 갑자기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고객들의 상처받은 신뢰가 회복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유튜브라는 '족쇄'가 풀린 사용자가 돌아갈 곳이 과연 매력을 잃어버린 옛 서비스일까? 오히려 스포티파이라는, 이미 검증된 또 다른 강력한 대안이 버티고 있다. 절망이다.
결국 '프리미엄 라이트'의 출시는 국내 음원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이 아니라, 그 문제를 수면 위로 완전히 드러내는 '현상'에 가깝다.
냉정하게 말해 유튜브의 '끼워팔기'는 분명 불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했지만, 그것이 몰락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다. 그것은 토종 플랫폼들이 안일함과 낡은 전략에 머무는 동안, 그들의 약점을 파고든 결정적인 한 방이었을 뿐이다.
넷플릭스에 고전하는 토종 OTT의 모습에서 보았듯, 이제 소비자들은 국적을 보고 플랫폼을 선택하지 않는다. 최고의 가치와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선택할 뿐이다. 토종 플랫폼들이 생존을 넘어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격 할인이나 통신사 제휴 같은 미봉책이 아닌, 뼈를 깎는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음원 업계 관계자는 "불투명하고 차별적인 가격 정책을 완전히 폐기하고, 모든 고객에게 공정하고 투명한 가치를 제공하는 한편 세계 최고 수준의 추천 알고리즘과 사용자 경험(UI/UX)에 사활을 건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면서 "글로벌 플랫폼이 따라올 수 없는, 한국적 맥락에 깊이 파고든 큐레이션이나 강력한 팬덤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 기능 강화 등 '우리만 할 수 있는 것'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멜론도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대규모 앱 재편을 기점으로 다양한 가능성 타진에 나서는 한편, 기술적 인터페이스까지 모두 고려한 전략적 판단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멜로너 연구소의 데이터를 중심으로 철저한 쇄신도 약속했다.
이용자가 음악 트렌드와 개인 취향을 보다 직관적으로 탐색할 수 있도록, ‘트렌드’와 ‘추천’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서비스 개편을 약속하기도 했다.
누적된 역사, 나아가 데이터와 추천으로 판을 흔들며 공정위 찬스를 300% 활용한다는 각오다. 멜론 관계자는 “멜론의 핵심 이용자층은 플랫폼 내 다양한 기능들을 활용해 감상문화를 발전시키며 국내 음악산업 전체의 성장을 이끌어왔다”며 “20년 이상 누적된 빅데이터를 객관적으로 분석 및 활용하여 대대적인 플랫폼 혁신과 함께 멜론만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