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정국 돌파한 '해결사' 정의선, 트럼프 난관 추가 돌파할까?

독일3사 '로비 구애' 견주는 활약…車 15% 관세 따냈다 철강 부품 향후 고민… 정 회장 임무·책임 더 커질 듯

2025-07-31     양정민 기자

4개월간의 관세 카운트 싸움이 결국 트럼프의 힘 자랑으로 끝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미국이 한국과 전면적이고 완전한 무역 합의에 동의했음을 기쁜 마음으로 발표합니다"고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주요 내용은 ▲한국에 15% 상호 관세 부과 ▲한국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투자처는 美 대통령이 선정) ▲한국의 1000억 달러 규모 미국산 에너지 구매 ▲자동차·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에 대한 완전 개방이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방미가 자동차 업계 입장에선 주요했다는 평가다. 물론 관세 자체가 발생한건 아쉽지만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을 독대해 독일 3사가 수 개월간 펼쳐온 로비에 견주는 활약을 보였다는 평가다. 

정부-기업 합심했던 독일… 적극적인 로비 구애 

2023년 실적을 발표하는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 사진=BMW그룹

유럽 연합(EU)의 대표 얼굴마담인 BMW,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독일 3사는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미국에 직접적인 로비를 나선 바 있다.

미국은 로비가 합법인 만큼 3사 대표가 직접 지난 4월 말 백악관을 찾아 미국 투자를 늘리고 수출·수입액을 상계 처리해 관세를 낮추는 방안을 협상했다.

구체적으로 독일 업계는 미국에서 생산해 외국에 수출하는 차량(BMW, 벤츠의 미국산 SUV 등)의 수출액과 유럽에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차량 수입액을 상계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폭스바겐코리아가 8세대 부분변경 모델 '신형 골프'를 한국 시장에 공식 출시했다고 16일 밝혔다. 사진=폭스바겐코리아

폭스바겐은 아우디 미국공장 신설, 전기차 협력업체인 리비안 등에 수십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미국 정부에 제안해 투자 실현과 관세 인하를 연계하는 전략을 구사했고 벤츠와 BMW도 미국 현지 생산공장을 증설하고자 했다. 상시 로비 조직과 전문 인력을 배치하여 정부, 의회, 주 정부와 긴밀한 소통 네트워크를 운영해 오기도 했다. 필사적인 로비의 이유는 독일3사의 매출·영업이익 급감 때문이었다. 유럽 시장이 북미의 도피처라고 불리지만 미국 판매량을 유럽 완성차업계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올라 켈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CEO. 사진=메르세데스-벤츠

올라 켈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최고경영자(CEO)는 "세상이 극적으로 변했다. 지금으로서는 글로벌 협정이 전부"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더 이상 양보를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앞서 메르세데스-벤츠는 올해 자동차 부분 조정 이익률을 기존 6~8%에서 4~6%로 내린 뒤 6월 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절반까지 감소한 20억 유로(약 3조1781억6000만원)밖에 조정 영업이익을 거두지 못했다. 매출도 9.8% 감소한 330억 유로(약 52조4396억4000만원)에 그쳤다.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CEO. 사진=폭스바겐코리아

폭스바겐그룹도 2025년 매출 운영 수익률을 5.5~6.5%에서 4~5%로 낮춘다고 발표한 바 있다. 폭스바겐그룹의 2분기 매출은 808억 유로(-3%), 영업이익은 38억 유로(-30%)로 영업이익률은 4.7%였다. 아우디는 64%, 포르쉐는 91%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상반기 매출은 1584억 유로(약 251조6294억8800만원), 영업이익은 67억 유로(-33%, 약 10조 6434억1900만원), 영업이익률은 4.2%를 기록했다.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CEO도 "미국에 막대한 투자를 약속한다"며 "미국과 자동차 회사 간에 회사 수준에서 구체적인 거래를 추가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큰불 껐지만 '부품 잔불' 언제 커질지 모른다

공동성명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급한 불은 껐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도 관세 인하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기아 김승준 재경본부장은 지난 25일 기아 2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일본처럼 15%가 될지, 영국처럼 10%가 될지, 현재 25%가 될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현 상황 속에서 예상 전망치 수정을 밝히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더 큰 혼란을 줄 것"이라며 "8/1 이후 최대한 빠르게 2025 수정 연간 가이던스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당장 관세 인하가 되지 않으면 유럽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상황, 그러나 유럽은 기아와 현대차에게 구미가 당기는 노선이 아니었다. 기아 2분기 실적 자료에 따르면 서유럽에서 지난해 2분기 13만9000대를 팔았던 기아는 올해 13만3000대 밖에 팔지 못했다. 1분기에도 14만3000대에서 13만8000대로 도매 판매량이 줄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HMGMA 준공식에 참가했다. 사진=연합뉴스

현대차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1분기 15만7000대에서 15만1000대로 줄었지만 2분기에는 15만7000대에서 16만1000대로 실적을 조금 회복했다. 그럼에도 상반기에만 현대차·기아 도합 100만대를 넘게 판매한 미국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는 것은 경영진 입장에선 제정신이 아닌 행위였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워싱턴 D.C. 행 비행기를 탄 이유다.

다만 문제는 철강과 부품이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관세에 대응해 부품 현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내 부품업계는 아사 위기에 직면했다.

현대차 이승조 재경본부장은 지난 24일 올해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단기적으로 부품 조달 변경을 추진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전사 협업 체계 구축을 통한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전략적인 부품 현지화를 추진하고자 한다"며 "태스크포스팀(TFT)이 총 200여개 부품을 두고 최적의 조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 전동화부품 전문연구시설 의왕연구소. 사진=현대모비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현대차·기아가 미국에서 생산하는 차량의 현지 부품 조달률은 48.6%이다. 테슬라(68.9%), 혼다(62.3%), 도요타(53.7%) 순으로 미국 부품 조달률이 높았고 현대차·기아를 비롯해 닛산(41.4%), 포드(40.1%), GM(31.1%)으로 낮다.

현재 국내 부품업계는 영세 업체가 대부분이라 매출, 비용 등의 이유로 미국에 공장을 세우길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부품 수출액은 82억2000만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정 회장이 미국으로 향했지만 복잡한 고민거리가 날로 늘어나고 있는 이유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김영훈 실장은 "자동차 부품 기업들은 원가 부담 증가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매우 우려스러워하고 있고 수출 물량이 감소하는 것을 그 다음으로 우려하고 있다"며 "현지 진출도 매우 어려워하고 있고 그에 대한 이유로는 초기 투자 비용 부담을 제일 어려운 부분으로 꼽았다"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 부품 산업계의 영업이익은 3%가 채 안 된다"며 "철강, 알루미늄 관세는 현재 50%인 만큼 통상 환경이 날로 안 좋아지고 있어 부품 기업에 대한 정부와 대기업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불리할 땐 때리고 필요할 땐 '해줘' 멈춰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이재명 대통령이 독대했다. 사진=대통령실

신 정부의 외교 수싸움도 험난하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당당하게 협상하라'라고 으름장을 놨으나 협상 결과는 패전을 면치 못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31일 현재 민생회복 소비쿠폰으로 8조2371억원이 국고로 소비된 상황에서 무리한 기업 총수 때리기를 멈춰야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지난 18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14일에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을 독대했다.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배석자 없이 독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회동에서 각 그룹의 대미 투자 계획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총수들에게 지방 활성화, 연구개발(R&D) 투자 의견도 물어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제조업 분야 등 국내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한 기업 역할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고를 무리하게 써오던 프랑스는 결국 2년 연속 예산 동결 조치를 하게 됐다"며 "대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법안들이 통과되는 상황들 속에서 '기업 줄 세우기' 우려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자동차 업계가 관세라는 급한 불을 껐으니 다음으로 큰 위기인 부품을 해결해야 할 것이고 그러면 정의선 회장의 입지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측은 "대미 관세 문제 해결을 위해 온 힘을 다해주신 정부 각 부처와 국회의 헌신적 노력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현대차그룹은 관세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 방안을 추진하는 동시에 품질 및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기술 혁신 등을 통해 내실을 더욱 다져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