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발 '야근 8시간' 제한…식품업계 관행 바뀔까 ‘촉각’

근무체계 개편 압박으로 번질 수도

2025-07-29     서예림 기자
이재명 대통령(왼쪽)이 25일 경기 시흥시 SPC 삼립 시흥 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허영인 SPC그룹 회장에게 근로자 노동 환경 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SPC그룹이 야간근무 시간을 8시간으로 단축하고 생산체계를 전면 개편하기로 하면서 식품 제조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오랜 기간 관행처럼 이어져 온 ‘12시간 맞교대’ 체제를 뒤흔드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업계는 장시간 노동에 따른 산업재해 문제를 일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인건비와 생산성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 조치가 단순히 한 기업의 변화에 그칠지, 아니면 업계 전반의 ‘근무문화 대전환’으로 번질지 관심이 쏠린다.

대통령 질책 이틀 만에…SPC ‘8시간 근무제’ 선언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PC그룹은 지난 27일 그룹 대표이사 협의체인 ‘SPC 커미티’를 개최하고 생산 시스템을 정면 재편하겠다고 발표했다. 야간근무 시간을 8시간으로 제한하기 위해 ▲인력 확충 ▲생산품목·생산량 조정 ▲라인 재편 등 전반적인 생산 구조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와 함께 2027년까지 2조 2교대를 현행 50%에서 20%로 줄이고, 안전설비 확충과 자동화 시설 도입 등에 624억원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SPC그룹의 생산직 근무 체계는 ‘2조 2교대’ 또는 ‘3조 2교대’로, 주간과 야간 12시간 맞교대 방식이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경기도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을 방문해 ‘야간근무’와 ‘노동강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데 따른 조치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일주일에 4일을 밤 7시부터 새벽 7시까지 풀로 12시간씩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가 만약 경영자라면 12시간을 일하게 하느니 8시간씩 3교대를 시킬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에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12시간 맞교대 근무 형태를 바꿔보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SPC그룹에서는 지난 3년간 자사 생산공상에서 3건의 사망 사고가 있었다. 2022년 10월에는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근로자가 소스 교반기에 끼여 사망했으며, 불과 1년이 채 안 된 2023년 8월 샤니 제빵공장에서 50대 근로자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졌다. 올해 5월에는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여성 근로자가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같은 사망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는 ‘12시간 맞교대 방식’이 지목돼 왔다. 장시간 근무하는 맞교대 근무제는 피로 누적, 야간 집중도 저하, 안전사고 가능성 증가 등 구조적 문제를 동반한다. 특히 새벽 시간대에는 현장 인력 밀집도가 낮아 사고 대응도 어렵다. SPC그룹 사망사고 3건 역시 전부 12시간 맞교대 방식 아래 발생했으며, 그중 2건은 새벽 시간에 집중됐다.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SPC삼립 시화공장 전경. 사진=SPC그룹

변곡점 맞은 식품 제조업계…타사로 확산될까

업계에서는 SPC의 이번 결정이 산업 전반에 근무체계 개편 압박으로 번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2시간 맞교대 근무제가 비단 SPC그룹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 12시간씩 돌아가는 생산체계는 식품 제조업계 내에서 오랜 관행이다. 실제 2012년 고용노동부가 500인 이상 식료품 제조업체 사업장 29곳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감독을 한 결과, 93.1%인 27곳이 법에 정해진 연장근로 한도(주 12시간)를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시간 근로의 원인으로는 주야 2교대제가 꼽혔다. 29곳 중 16곳이 주야 2교대로 운영되고 있었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12시간 맞교대 근무제는 식품 제조업계에서 널리 운영되고 있는 실상이다. 이날 구인구직 사이트 사람인에 따르면, 농심은 생산직 사원을 2조 2교대 형태로 모집 중이다. 주간 근무는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 야간 근무는 오후 6시부터 오전 6시까지다. 롯데웰푸드 역시 생산직 채용 공고에서 하루 12시간씩 2교대 근무를 명시하고 있다. 중견·중소 제조업체도 마찬가지다. ‘2교대’를 검색하면 6000건이 넘는 채용 공고가 확인된다.

이처럼 12시간 맞교대 근무제가 자리잡은 배경에는 ‘인력 최소화’와 ‘생산 효율 극대화’가 있다. 특히 빵, 라면, 유지류 등 24시간 연속 생산이 필요한 품목의 경우, 8시간제는 오히려 설비 가동률을 낮추고 비용을 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낮은 영업이익률(평균 3~5%) 구조를 가진 식품업계 특성상, 근로시간 단축은 수익성에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산업 전반에 근무체계 개편 압박이 가해질 경우, 인건비 부담과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하루 8시간 근무의 3교대 체제로 전환 시 인건비는 최대 1.5배 이상 증가하고, 야간 수당도 추가로 발생하게 된다. 특히 중소·중소 제조업계의 경우 인력 충원과 설비 재편에 필요한 여력이 부족해 대응이 쉽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은 AI나 자동화 투자, 신규 채용 등 통해 3교대 전환이 가능하겠지만, 인력과 비용이 부족한 중소업체는 사실상 따라가기 어려운 구조”라며 “SPC의 결정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면 중소 제조업체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8시간 근무제 전환의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히려 인건비와 고정비 부담 증가가 가격 인상 요인으로 번질 수 있다는 문제점도 제기된다. 결국 근무체계 전환보다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물론 시스템을 바꾸면 좋지만,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언제 어떻게 발생할 지 모르는 사고를 대비한다는 건 낭비적인 요소가 많아 보인다”라며 “12시간 맞교대 근무제가 사고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진짜 원인이 뭔가를 면밀하게 조사해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며 “노동자를 해고하기 어려우니 기업이 채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근본적인 노동 구조의 문제도 해결해 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