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건전성 감독권 강화" 한은 제안 타당할까?...주요국 살펴보니
전문가 “특정 기관에 단독검사권 주지 말고 관련 협의체 세워야”
새 정부의 금융당국 조직개편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한국은행이 금융기관 단독검사권 등을 요구하며 감독권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 중앙은행과 달리 건전성 관리 수단을 갖지 못해 금융시스템 불안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서다.
이런 논의는 거시건전성정책 전반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단 주장으로 확산하고 있다. 거시건전성정책은 금융부문의 위험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는 정책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각 금융기관의 안정성 관리를 넘어 시스템 전체 차원의 건전성을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도입됐다. 대표적수단은 금융위원회가 권한을 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6일 한은이 아시아개발은행 등과 연 콘퍼런스(회의) 기조연설에서 중앙은행의 감독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 국정위에 단독검사권 골자로 한 개편안 제시
그는 “한은이 (금융위가 가진) 거시건전성정책 수단과 (금융위 산하 금융감독원이 보유한) 미시 감독 권한을 갖지 않아 정책 대응의 신속성과 유효성이 떨어진다”며 “한은이 목소리를 높여 거시건전성정책을 강하게 집행할 수 있는 지배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한은은 이런 의견에 기반해 지난달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금융기관 단독검사권과 거시건전성 관리 정책수단 확보를 골자로 한 ‘금융안정 정책 체계 개편안’을 제시했다.
일각에서도 중앙은행에 LTV 등 규제 권한이 없으면 금융감독 당국과 중앙은행 간 정책 조정이 원활하지 않아 일관성 있는 정책집행이 어려울 가능성이 있단 지적이 나온다. 한은의 화폐정책 목표와 금융위의 DTI를 비롯한 규제 목표가 충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령 한은이 금리인하로 화폐의 양을 조절해 경기를 부양하려 할 때 금융위가 DTI보다 강한 규제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강화하면 대출이 줄어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이에 금융기관 건전성에 대한 통합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현재는 한은, 금융위가 거시건전성정책에 대해 협력하면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 금융위는 DSR 등 건전성 관리 수단을 가진 반면 한은은 시스템 위험 평가, 금융 안정성 강화에 집중한다. 금융기관에 대한 미시건전성 정책인 단독검사는 한은이 아니라 금융위(정책 수립)와 금감원(집행 기관)이 맡는다.
日·加, 감독기관이 검사권 가장 강해…美∙英∙EU는 반대
다만 이란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중앙은행에서 단독검사권을 가진 나라는 거의 없다. 국가별로 일본∙캐나다 등은 한국의 금감원과 같은 기관이 가장 강한 검사권을 갖고 있다. 미국∙유럽연합(EU)∙영국은 중앙은행의 검사권이 더 강하다. 영국은 감독기관(FCA∙FPC∙PRA)이 중앙은행 산하기관이라는 점에선 미국∙EU와 다르지만 중앙은행이 감독권을 독점하지 않고 각 기관과 협력한단 측면에선 공통점을 갖는다.
전문가들은 감독권을 특정 기관에 줄 게 아니라 관련 협의체를 만들어 금융감독 유관기구 간 정보 공유와 업무 협조를 활성화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24일 전성인 전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이 문제는 특정 기관이 단독감사권을 갖는 게 아니라 미국처럼 감독유관기구 협의회를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며 “한은에 사무국을 두고 기획재정부 장관은 의장, 한은∙금감원∙예금보험공사 등 금융감독 유관기관의 장과 민간 전문가가 구성원으로 참여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하면 개별 감독기구가 자기 조직의 감독 권한을 확장하거나 사수하려는 욕구를 통제해 감독권한 확대와 재배분을 둘러싼 감독기구 간 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며 “유관기구간 정보공유와 업무 협조가 원활화고 투명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