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배우의 임신, 제도가 답하지 못한 경계선 [김진오의 처방전 없는 이야기]
얼마 전 한 배우의 임신 소식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 혼인이 끝난 뒤, 과거 시험관 시술로 보관해 두었던 냉동 배아를 사용해 임신을 선택했다는 이야기였죠. 이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은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배우자의 동의 없이도 가능한 일인가?”, “출산 후 친권과 양육권은 어떻게 되는가?” 같은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전 배우자의 동의 없이 전 배우자의 정자가 포함된 배아를 이용해 임신하는 것이 법적·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가 입니다. 현행 생명윤리법은 배아를 새로 생성할 때는 난자와 정자 제공자의 동의를 요구하지만, 이미 보관된 배아를 이식할 때는 명확한 규정이 없습니다. 이 공백이 논란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법적 문제가 없더라도, 한 사람의 유전적 기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 없는지, 그런 윤리적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기술은 사람들의 삶을 빠르게 바꾸어 놓았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전통적인 가족 모델에 묶여 있습니다. 혼인 여부가 지원과 혜택을 가르는 경계선이 되고, 비혼 출산은 제도 밖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난자 동결이나 시험관 시술은 더 이상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며, 혼인 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습니다. 그럼에도 제도는 한 걸음 느린 채 머물러, 출산휴가나 지원금 앞에서 비혼 여성은 머뭇거리고, 사회적 낙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을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는 시민연대계약(PACS)이라는 제도를 통해 다양한 가족을 제도권 안에 품었습니다. 네덜란드도 혼인 여부에 상관없이 동일한 혜택을 제공합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한 가지였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리고 그 자유를 제도가 뒷받침해야 한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결혼을 해야만 부모가 될 수 있는가?’, ‘가족은 반드시 전통적인 틀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가?’, 그리고 ‘생명을 잉태하는 과정에서 유전적 기여자의 동의는 어디까지 필요한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한 사람의 선택에서 시작했지만, 사람들의 삶을 더 넓고 더 따뜻하게 품는 법과 제도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 김진오 뉴헤어모발성형 외과 원장은 진료와 연구를 병행한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매일 만나며, 국내외 학술지에 연구 논문을 꾸준히 발표한다. 진료실 밖에서는 35만 구독자의 유튜브 채널 ‘뉴헤어 프로젝트’, 블로그 ‘대머리블로그’, 저서 ‘참을 수 없는 모발의 가벼움’ · ‘모발학-Hairology’ 등으로 대중과 소통한다. 현재 성형외과의사회 공보이사 및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학술이사로 활동 중이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처방전 없는 이야기’에서는 진료실 안팎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의학·의료 정책·사람에 관한 생각을 담백하게 풀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