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10년의 족쇄, 검찰 칼날은 왜 기업에만 향하는가

이재용 회장 무죄 후폭풍

2025-07-18     최진홍 기자

"이런, 이제 망했네. 팔지도 못하잖아(Well, now I'm screwed. I can't sell)"

미국프로농구(NBA) 경기장에서 심판에게 거침없이 항의하는 구단주, TV 프로그램에서 창업가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냉철한 투자자, 그리고 거대 제약사들의 약값 거품에 반기를 든 사회 혁신가. 마이크로솔루션즈 설립자이자 억만장자인 마크 큐반은 2004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바뀌고 만다. 

캐나다 인터넷 검색엔진 회사 '마마닷컴(Mamma.com)' 지분 6.3%를 보유한 그가 회사의 기밀사항을 확보한 후 소위 내부자 거래를 했다는 의혹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마마닷컴 CEO가 유상증자의 일종인 '사모투자(PIPE)' 계획을 큐반에게 알리자 큐반이 "팔지도 못하잖아"라고 말했고, 이후 몇 시간 뒤 보유 주식 전량을 매각한 것이 미 SEC의 레이더에 걸렸다.

무려 5년간 막대한 노력과 자금이 소모될 치열한 법정 공방의 막이 올라가는 순간이다.

사진=연합뉴스

사법 리스크 털어낸 이재용, 그리고 삼성전자의 불행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년에 걸친 기나긴 사법 리스크의 터널을 벗어났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시작된 논란은 2020년 검찰의 기소로 정점을 찍었고, 마침내 17일 대법원의 최종 무죄 판결로 종지부를 찍었다. 

사법 리스크는 끝났지만 아직 계산해야 할 것들이 남았다. 무엇보다 무려 10년의 시간이 흘러 한 기업 총수의 결백이 증명되었다는 사실을 넘어 이번 판결을 두고 우리 사회의 사법 시스템, 특히 검찰권의 오남용에 대한 준엄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아무런 실체도 없었던 의혹을 두고 대한민국 최고의 글로벌 기업이 10년의 세월을 허비했다는 것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총수는 100번 넘게 법정에 서야 했고 경영진은 미래를 향한 담대한 도전 대신 법정 방어 논리를 짜는 데 골몰했다. 그사이 글로벌 시장은 격변했다. AI 혁명의 파고가 산업 지형을 바꾸는 동안 삼성은 ‘총수 부재’와 ‘경영 불확실성’이라는 거대한 족쇄에 묶여 있었으며 반도체 초격차 신화는 빛이 바랬고, 수십 년간 지켜온 아성도 흔들렸다. 

비단 삼성만의 불행이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짊어져야 할 ‘잃어버린 10년’의 상흔이다.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칼날은 왜 유독 기업을 향할 때 이토록 집요하고 무딘가. 살아있는 권력인 정치인들을 향해서는 온갖 의혹에도 굼뜨거나 좌고우면하던 검찰이 왜 유독 대기업 총수는 손쉬운 사냥감처럼 다루는가. 

그 저변에는 비겁한 계산이 깔려있다. 대기업을 겨냥한 수사와 기소는 대중의 이목을 끌기 좋고, 여론의 흐름에 편승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노조와 일부 좌파 정치세력은 언제든 ‘재벌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지지를 보내주며 보수 정치인들조차 반기업 정서에 편승한 여론의 눈치를 보며 침묵하기 일쑤다. 당연히 기업은 그야말로 동네북 신세며, 역사의 한켠에서 칼날을 휘두르며 대중을 홀린 무당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19세기 말 벌어진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이 아직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개탄스럽다. 당시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반역자로 낙인찍은 프랑스 군부의 논리는 그가 유대인이라는 것 뿐이었으며, 당시 만연했던 유대인 혐오에 편승해 눈을 가린 정의와 무분별한 선동으로만 일관해 파국을 맞았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무대도 바뀌었지만, 지금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이제 ‘보여주기식’ 사법 정의가 그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억울한 수사와 기소, 그리고 기약 없는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기업의 혁신 동력은 꺼져가며 단기 실적 유지에 급급한 ‘관리형 경영’이 혁신과 도전을 몰아내는 끔찍한 장면을 그만 볼 때가 됐다. 

당장 눈앞의 재판에 불려 다니는 총수에게 어느 경영진이 과감한 M&A와 미래 투자를 보고할 수 있겠는가. 이는 해당 기업과 임직원, 수많은 협력업체의 고통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라는 국가적 피해로 직결된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이 “CEO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이 한국 투자를 막는 비관세 장벽”이라고 지적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여기에 1,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어도 ‘기계적 상고’를 남발하는 검찰의 관행도 끊어내야 한다. 사법 자원의 낭비일 뿐 아니라 피고인의 인권을 짓밟고 기업의 정상적 경영 활동을 옥죄는 악습이다.

절제와 성찰

마크 큐반은 미 SEC의 전화를 받은 후 법정 공방을 벌이기 시작했다.

SEC의 주장은 명확했다. CEO로부터 정보의 비밀유지 동의를 얻은 순간 큐반에게는 해당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거래하지 않을 의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SEC는 큐반이 "팔지도 못하잖아"라고 말한 것을 그 의무를 인지했다는 증거로 제시했다. 다만 큐반 측의 논리는 달랐다. 그는 "정보를 외부에 누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을 뿐, 그 정보로 주식을 거래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다"고 맞섰다. 그의 변호인단은 내부자 거래가 성립하려면 '신임 관계(fiduciary duty)'에 기반한 배신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단순히 기밀유지에 동의했다는 사실만으로 투자자와 회사 간에 그런 고도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피고인이 천문학적인 소송 비용과 심리적 압박감에 SEC와의 합의를 택하는 것과 달리, 큐반은 타협을 거부했다. 그는 이 싸움을 '원칙'의 문제로 규정하고, SEC가 주장하는 손실 회피액(75만 달러)의 15배가 넘는 1200만 달러(약 130억 원)를 변호사 비용으로 쏟아부으며 정면 대결을 선택했다.

1심 법원은 큐반의 손을 들어주며 소송을 기각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히며 사건은 정식 재판으로 이어졌으며  3주간의 치열한 공방 끝에 배심원단은 5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숙의 끝에 만장일치로 큐반이 책임이 없다고 평결했다.

큐반은 승소 후 "나는 내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원칙을 위해 싸웠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SEC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사실마저 왜곡하는 '불량배(bully)' 집단이다. 그들은 자금력이 부족한 일반인들을 상대로 겁을 줘서 거짓 합의를 받아낸다"고 맹비난했다.

씁쓸한 일이다. 승리했지만, 과연 누가 진정한 승리자라고 볼 수 있을까? 대법원 판결로 이 회장은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우리 사회에 남겨진 과제는 여전히 무거운 이유다. 

검찰은 ‘정의의 파수꾼’이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여론에 영합하거나 정치적 계산에 따라 칼을 휘두르는 조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업 활동에 대한 사법적 개입은 최소화해야 하며, ‘경영상의 판단’을 무리하게 형사처벌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검찰 스스로 절제하고 성찰하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삼성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것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모두의 몫으로 돌아올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