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사무라이 소니, 육본창(六本槍)으로 전장에 서다
하드웨어 제국의 몰락과 부활, IP로 재무장한 소니의 끝나지 않는 여정
일본의 소니가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 2월 일본 도쿄 증시에서 소니 주가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가운데 16일 현재도 3520엔을 유지하며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중이다. 일부 스마트폰 전략 차질이 벌어지며 최근 주가가 변동성을 보이기는 하지만, 시장에서는 깨어난 사무라이 소니가 더욱 날카롭게 비상할 수 있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전 세계 가정의 거실과 젊은이들의 귀를 지배했던 워크맨과 트리니트론 TV의 소니는 이제 옛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소니는 게임, 음악, 영화, 그리고 이 모든 창작 활동의 근간을 이루는 첨단 반도체 기술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창의력과 기술에 기반한 엔터테인먼트 거함'으로 자신을 완벽하게 재정의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제조 대국의 상징이었던 이 거인이 디지털 시대의 격랑 속에서 침몰 직전까지 내몰렸다가, 이제는 지적 재산(IP)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정유(精油)를 중심으로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하며 화려한 부활을 선포하고 있다.
단순한 사업 전환이 아닌 뼈를 깎는 자기부정과 과감한 미래 투자를 통해 이뤄낸 정체성의 재창조라는 평가다.
영광의 역사와 치명적 실수
소니의 역사는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한다'는 혁신의 DNA로 시작되었다. 실제로 1946년 전쟁의 상흔이 남은 도쿄의 한 백화점 건물에서 이부카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가 세운 '도쿄통신공업'의 창업 취지서에는 "진지한 기술자가 자신의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는 자유롭고 활기찬 이상 공장을 건설한다"는 비전이 담겨 있었다.
이 정신은 일본 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 세계에서 가장 작은 포켓 라디오로 이어지며 'Made in Japan'을 싸구려에서 고품질 혁신의 상징으로 바꾼 원동력이 되었다.
그 정점에는 두 개의 아이콘이 있었다. 당장 1968년 출시된 트리니트론 TV는 경쟁사를 압도하는 선명한 화질로 기술적 우위의 상징이 되었고, 1979년 등장한 워크맨은 '음악을 소유하고, 걸어 다니며 혼자 듣는다'는 개인화된 엔터테인먼트 시대를 열며 단순한 제품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다.
나만의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두 손이 해방됐다. 단언하건데 워크맨은 엔터테인먼트 시대의 변곡점이자 기술의 시대적 흐름을 결정한 충격적인 일대 사건이다. 나아가 기술이 어떻게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새로운 시장을 창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소니의 가장 빛나는 성취다.
하지만 영광의 그림자는 길었다. 특히 1975년 출시한 가정용 VCR '베타맥스'의 실패는 소니의 미래에 우울한 복선이나 다름이 없다. 기술적 우월성에 대한 자만심으로 독자 노선을 고집했던 소니는 더 긴 녹화 시간을 제공하고 적극적인 기술 개방으로 다수의 제조사와 영화사를 우군으로 확보한 JVC의 VHS 진영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모든 것을 장악할 것이라는 자부심이 컸으며 그 전략적 방향성도 옳았지만, 아직 시대는 소니의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술 생태계가 강하니 모두 우리에게 올거야"는 현재 애플은 물론 그 어떤 기업도 해내지 못한 미완의 도전이다. 그리고 소니는 이를 너무 가볍게 봤다. 자만한 셈이다. 이 사건이 소니에게 "최고의 하드웨어(그릇)라도 그 안을 채울 매력적인 소프트웨어(콘텐츠)가 없다면 시장에서 외면받는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긴 이유다.
소니는 그러나 그 교훈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했다. 2000년대에 들어 이 교훈을 망각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워크맨의 창조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음원(MP3) 시대를 맞이해 내부에서조차 길을 잃어버렸다. 소니 뮤직은 저작권 보호에 집착했고 전자 사업부는 복잡한 기술 규격에 얽매여 사용자 편의성을 외면했다. 이러한 내부 불협화음 속에서 애플은 2001년 '아이팟'과 '아이튠즈'라는 직관적이고 매끄러운 생태계를 선보이며 휴대용 음악 시장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TV 사업 역시 위기의 연속이었다. 브라운관 시대의 영광에 취해 LCD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늦어지면서 삼성, LG 등 한국 기업들의 속도와 가격 경쟁력에 밀려 적자의 늪에 빠졌다. 소니라는 제국은 그렇게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깊고 어두운 터널로 들어서고 있었다.
도박의 계절
소니는 끝없이 추락했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승부수를 던졌다. 베타맥스의 교훈을 되새긴 소니 경영진은 1980년대 후반 일본 제조업 역사상 가장 이질적이고 거대한 도박에 나선다. 1988년 세계 최대 음반사 CBS 레코드, 이듬해인 1989년 할리우드의 상징적 영화사 콜롬비아 픽처스를 천문학적인 금액에 인수하며 '전자제품 기업'에서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의 대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일본이 미국의 영혼을 사들인다"는 격렬한 문화적 저항과 일본 버블 경제 붕괴가 맞물리며 그룹 전체를 재정적 위기로 내몰았던 위험천만한 승부수였다.
이 거대한 도박이 표류하던 소니를 구원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사의 '배신'에서 태어난 예상 밖의 구원투수였다.
우선 당대 게임 시장의 절대 강자 닌텐도와 CD-ROM 게임기 주변기기를 공동 개발하던 소니가 프로젝트 막바지 닌텐도로부터 일방적인 계약 파기 통보를 받은 것은 치명적인 배신이었다. 그러나 소니 불굴의 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참을 수 없는 굴욕감 속에서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만든다"고 결심한 기술자들의 오기가 1994년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 전략은 과거의 실패에 대한 완벽한 복수였다. 베타맥스의 폐쇄성과 정반대로 저렴한 CD-ROM을 매체로 채택하고 개방적인 개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전 세계의 유능한 게임 개발사들을 끌어모았기 때문이다.
개발 비용에 허덕이던 서드파티들에게 가뭄의 단비와 같았고, '파이널 판타지 7'과 같은 블록버스터 타이틀이 닌텐도를 떠나 플레이스테이션 독점으로 출시되면서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압도적인 성공은 소니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기술과 엔터테인먼트를 융합하는 소니의 잠재력을 가장 극적으로 증명하며 기나긴 부활의 서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6개의 기둥, 혹은 육본창
소니는 2012년 히라이 가즈오(소니의 7대 CEO이자 6대 회장. 현재 비상근 고문)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전임 하워드 스트링거 CEO에 의해 무너진 소니의 자존심을 되살리기 위해 냉정한 상황판단을 우선했다. 당장 자그마치 5조원이라는 엄청난 손실과 국제투자등급 Ba-라는 처참한 굴욕을 곱씹었다. 소니의 자회사인 소니 생명보험, 부동산에게 자사의 사옥까지 매각당하며 거대한 벽이 울리는 새장 속 공포도 떠올렸다.
즉시 지지부진했던 브라비아 TV 분야의 사업을 70% 가까이 대폭 축소시키고 소니 비주얼 프로덕트로 분사시켰다. 자사의 컴퓨터 사업을 VAIO 까지 상표권을 제외한 모든 사업 분야에서 철수시키는 한편 워크맨마저도 상표와 Hi-Res 분야를 제외하고 모조리 분사했다.
그 혹독한 구조조정과 포트폴리오 재편을 거친 오늘날의 소니는 6개의 핵심 사업부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강력한 복합기업으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각 부문은 그룹의 성장과 안정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여하며 시너지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첫째, 게임 & 네트워크 서비스(G&NS) 부문은 명실상부한 그룹의 심장이자 가장 강력한 성장 엔진이다. '스파이더맨', '갓 오브 워', '더 라스트 오브 어스'와 같이 평단의 극찬을 받는 고품질 독점작으로 하드웨어 판매를 견인하는 동시에, '데스티니' 개발사 번지(Bungie) 인수를 통해 일회성 패키지 판매를 넘어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라이브 서비스 게임 역량을 강화하며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 패스' 모델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있다.
둘째, 음악(Music) 부문은 스트리밍 시대의 숨은 강자다. 아티스트의 음반을 제작하는 '녹음 음악'과 작곡가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음악 출판'으로 나뉘는데, 특히 세계 최대 규모의 음악 카탈로그를 보유한 음악 출판 사업은 스포티파이와 같은 플랫폼이 성장할수록 안정적인 저작권 수익이 발생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셋째, 영화(Pictures) 부문은 '스트리밍 전쟁' 시대에 영리한 포지셔닝을 택했다. 디즈니나 넷플릭스처럼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자체 OTT 플랫폼을 운영하는 대신, 넷플릭스, 아마존, 애플 TV+ 등 모든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콘텐츠 군수업자(arms dealer)' 역할을 자처하며 위험 부담 없이 안정적인 라이선스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넷째, 엔터테인먼트 및 기술 & 서비스(ET&S) 부문은 과거의 유산을 성공적으로 재설계했다. TV와 같은 치열한 대중 시장 제품의 비중을 줄이고, 영화감독, 사진작가,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위한 전문가용 고부가가치 장비 시장에 집중하는 '창작으로의 전환(Creation Shift)'을 이뤄냈다. 할리우드에서 각광받는 시네마 카메라 'VENICE'와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의 강자 'Alpha(α)' 시리즈가 그 증거다.
다섯째, 이미징 & 센싱 솔루션(I&SS) 부문은 소니의 가장 강력한 기술적 해자(垓子)이자 그룹 전체의 수익성을 견인하는 '알짜' 사업이다. 아이폰을 비롯한 전 세계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눈' 역할을 하는 CMOS 이미지 센서 시장에서 약 50% 이상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한다. 이제는 스마트폰을 넘어, 수십 개의 센서를 필요로 하는 자율주행 자동차와 산업용 로봇 시장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정조준하고 있다.
여섯째, 금융(Financial Services) 부문은 그룹의 안정적인 '밸러스트(ballast, 배의 균형을 잡는 바닥짐)'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이 금융 자회사의 부분적 분사 및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금융 사업의 전문성을 높이는 동시에 확보된 자원을 엔터테인먼트와 기술이라는 핵심 정체성에 더욱 집중 투자하려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다.
현대 소니의 모든 전략은 사실 하나의 개념으로 수렴한다. 바로 'IP 플라이휠(Flywheel)' 전략이다. 게임,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등 각 사업부가 보유한 IP를 상호 교차 활용하여 가치를 눈덩이처럼 불려 나가는 선순환 구조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소니 산하 애니플렉스가 제작한 '귀멸의 칼날'이 크런치롤을 통해 전 세계적 히트를 기록하면, 그 인기를 바탕으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출시하고, 소니 픽처스가 극장판 영화를 배급하며, 소니 뮤직이 사운드트랙 앨범을 판매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수익은 다시 새로운 IP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재투자된다.
이러한 비전의 최종적인 시험대는 일본의 자동차 명가 혼다(Honda)와 손잡고 개발 중인 전기차 '아필라(AFEELA)'가 될 전망이다.
아필라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소니의 이미지 센서, 파노라믹 스크린, 몰입형 오디오 시스템 위에 플레이스테이션의 게임 엔진과 방대한 영화, 음악 콘텐츠를 얹어 '움직이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창조하려는 담대한 도전이다.
소니가 보유한 모든 핵심 역량을 집대성한 궁극의 쇼케이스이자, 모빌리티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자사의 모든 IP를 소비하게 만들려는 야심 찬 프로젝트라는 평가다.
물론 소니의 앞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자금력을 앞세운 게임 시장 공세, 넷플릭스와 디즈니가 주도하는 치열한 콘텐츠 확보 경쟁, 미중 갈등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 등 수많은 도전이 도사리고 있다.
다만 소니는 지난 70여 년의 역사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파괴하고 재창조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왔다. 하드웨어 제조업체라는 낡은 허물을 벗고, 강력한 IP와 콘텐츠, 그리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술력을 중심으로 재탄생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이 기업의 존재 이유로 내세우는 '창의력과 기술의 힘으로 세상을 칸도(Kando, 감동)로 채운다'는 목표를 향한 위대하고도 험난한 여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